헤매는 게 아니고
그래서 진로가 대체 뭔데.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진로’라는 것은, 담임 선생님과의 ‘진로 상담’ 시간이 전부였다.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에 맞춰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대학과 적당한 학과를 고르는 것. 그게 곧 ‘진로’였다. 운 좋게도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어봐 주셨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진로는 더 성적이 높은 대학을 고르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대학생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방법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과 비슷했다. 공기업과 공무원,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저울질하면서 토익과 학점,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또다시 운이 좋아서 대학교 3학년 때 만난 직업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어봐 주셨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또 ‘진로는 더 경쟁률이 높은 직장을 선택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진로에 대해 자발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더 경쟁률이 높은 직장’에 가는 걸 실패한 이후였다. 막막함과 답답함이 절로 고민을 일으켰다. 대학은 공부를 못해도 그냥 낮은 입시 결과에 맞춰 지원하면 그만이었는데. 어쩐지 취업은 다른 것만 같았다.
아니,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라며? 대학만 가라며? 졸업만 하라며? 그러면 만사 오케이라더니. 순 거짓말이었다. 졸업하고 나면 그제야 ‘시키는 대로’가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제 너 뭐 하고 싶은데?’를 물어보더라.
‘진로’와 ‘취업’이 다르다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한 건, 조금 늦은 직업상담사 3년 차 때였다.
회사에서 기획해 둔 대로, ‘진로 상담’과 ‘취업 상담’을 나눠 맡았는데, 종종 그 차이를 묻는 사람이 있었다. 명료한 답변을 위해 자꾸 정리를 하다 보니, 그즈음에 확신하게 됐다.
진로는 평생에 걸쳐 고민하는 것이고, 취업은 단 한 번의 입직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최근에는 진로 설계와 관련된 강의를 진행했는데, 강의 전후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의 진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강의 전에는 물음표와 안개, 표류 중인 배처럼 막막함과 어두움으로 묘사됐던 문장들이 강의 후에는 용기, 가로등 켜진 길, 방향을 찾은 배처럼 갈 길을 찾은 듯이 묘사가 되어있었다. 어찌 안 뿌듯할 수가.
그중 한 명은 자신의 진로를 첫걸음을 뗀 아기 뱁새라고 표현했다. 귀엽고, 응원하고 싶고, 반가운 표현이었다. 이 사람만은 자기 자신이 진로적 관점에서 아직 ‘어린’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린 존재에게 관대하다. 넘어져도, 실수해도, 괜찮다고 애정을 담아 격려한다. 그래서 청년이 자기 자신을 진로적 관점에서 어린 존재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따듯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정말 반가웠다.
그 강의에서 나는 ‘진로 고민을 계속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득, ‘진로 고민’이라는 말이 온갖 걱정덩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로라는 단어엔 막막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이 따라붙고, 고민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으면 좋겠다는 느낌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바꿨다. 진로는 그저 나아갈 길이니, 부담을 낮추라고. 고민은 모험이라고. 모험이란 건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때론 함정을, 때론 보물을 만나는 거니까. 진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함정 같은 직장을 만날 수도 있고, 보물 같은 직무를 만날 수도 있다.
진로는 그래서, 목표가 아닌 과정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취업을 해내고 나면, 진로 고민이라는 것이 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더라만.
나는 지금도 모험 중이다.
방향을 잃거나, 뜻밖의 퀘스트로 보상을 얻기도 하면서.
헤매는 게 아니라,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