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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May 28. 2024

쑥버무리

기운을 북돋는 추억의 떡

앓고 난 뒤 쑥버무리 생각이 난다.


시골에서 살던 일곱여덟쯤 동네 친구와 주황색 바가지를 들고 다니며 쑥을 뜯었다. 봄날의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서로의 바가지에 차오르는 쑥의 양을 곁눈질하기도 했다. 모내기를 앞둔 논은 물로 채워져 있고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연두색 모가 줄을 맞춰 서 있었다. 밭두렁에서 한 무더기 쑥이 보이면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듯 뿌듯했다. 바가지에 얼추 쑥이 차오르면 친구와 나는 돌멩이로 쑥을 두드리며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긴 듯 역할놀이 했다. 어떨 때는 반찬 하느라 바쁘고 어떨 때는 누가 다쳐서 치료해줘야 한다며 바쁘곤 했다.

시계도 없고 부르는 사람이 없어도 어느 순간 우리는 놀이를 멈추고 쑥 뜯어 담아둔 바가지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들판에서 쑥을 뜯어 집으로 가져가면 어머니가 쑥버무리나 쑥개떡을 해준 기억이 난다. 내가 살던 동네는 가게가 하나도 없어서 쑥버무리는 특별한 간식이었다. 쑥떡의 기억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온화한 햇볕에 포근하게 안겨있는 느낌이다.  

  

쑥과 쌀은 궁합이 좋다.

쑥에는 비타민A가 있어서 몸의 저항력이 좋아지고, 비타민C가 있어서 감기 예방에 좋고, 칼슘이 있어서 쌀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준다고 한다.

쑥버무리를 기억에서 소환하는 이유가 내 몸이 살아내려는 무의식 속의 의지 표현일 수 있다. 쑥은 어디서나 잘 자란다. 시골의 논두렁 밭두렁뿐만 아니라 도심에서도 곧잘 눈에 띈다. 부인병 예방과 체내의 유해 세균 성장 억제, 해독 작용, 면역에 뛰어난 효과가 있어 음식의 재료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쓰인다. 쌉쌀한 맛은 봄날 떨어진 식욕을 돋우고, 특유의 향은 나른한 몸을 깨운다.

    

동네 떡집에서 쑥버무리를 사려고 했지만 판매하지 않는다.

슈퍼마켓에서 쑥을 사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다.

     

쑥버무리를 집에서 해 먹어야겠다.

들판에서 쑥쑥 자라는 쑥의 기운을 내 몸에 끌어오고 싶다. 나른한 내 몸을 깨워 기운을 추슬러야겠다.  

    

인터넷으로 쑥과 습식 쌀가루를 주문했다.

도착한 쑥이 억세서 쑥버무리용으로 적당치 않아 실망스럽다. 아이가 어렸을 때 방앗간에서 빻은 쌀가루로 떡을 해주곤 했는데 이번에 처음 구매한 습식 쌀가루에서 습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찜솥에 쑥과 버무려 찌면 떡이 되려는지 모르겠다.     


쑥버무리는 하고 싶고 배송된 쑥은 아쉽다.

공원에는 쑥이 지천이다. 공원에 있는 꽃이나 열매를 건드리지 않듯이 쑥을 채취하면 공원을 훼손하는 행위가 되려나. 풀 종류라 괜찮으려나.

쭈그리고 앉아 쑥을 채취하기가 골반뼈 수술 경력과 관절염 등으로 부담스럽고 어렸을 때 들판 어디서나 뜯어도 되던 쑥이지만 세상이 변해서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공원의 나무 그늘 쪽에 있는 쑥은 칼로 뜯어야 하지만 양지에는 내 발목 위로 자란 쑥이 많아서 손으로 뚝뚝 꺾는다. 다섯 살 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내가 하는 게 뭔지 묻는다. 쑥 뜯는 걸 처음 본 모양이다.


이제 성인이 된 내 아이가 다섯 살 쯤일 때 들판에서 플라스틱 칼을 들고 다니며 쑥을 뜯었다. 봄이 되면 우리는 연례행사처럼 쑥 뜯으러 다녔다. 소꿉장난하듯이 쑥이 연할 때는 쌀가루에 쑥을 버무리며 놀았다. 쌀가루가 날려서 청소하기 고되니까 쑥개떡 만들기를 더 많이 했다. 떡 반죽을 냉동실에 조금씩 나눠서 보관했다 아이가 심심해할 때 쑥개떡 만들기 하면 창의적인 모양의 떡이 만들어지곤 했다. 특별하게 밤이나 깻가루에 설탕을 넣어 송편을 빚으면 근사한 날이 되곤 했다. 떡이 쪄지는 동안 아이랑 쑥이 나오는 그림책을 읽기도 했다. 아이와 눈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며 좋은 기억으로 물들였다.

    

쑥버무리에는 쑥쑥 자라는 쑥의 기운에다 사랑으로 물든 기억이 더해져 있다. 소화를 돕기도 한다. 힘을 내야 할 때 이보다 좋은 조합이 있을까.

    

쑥버무리 만드는 방법

1. 쑥을 깨끗이 다듬어 씻는다.

2. 멥쌀가루를 고운 체에 내린다.

3. 멥쌀가루에 소금과 설탕을 넣어 고루 섞는다.

4. 쑥에 쌀가루가 묻도록 가볍게 섞는다

5. 김이 오른 찜솥에 면포를 깔고 쑥과 쌀가루를 얹어 25분 정도 찐다.

    

습기가 느껴지지 않는 쌀가루를 그냥 했더니 떡이 제대로 안 된다. 물을 조금 넣어서 뒤적인 후 다시 찐다. 불린 쌀을 방앗간에서 쪄서 떡을 할 때와 인터넷에서 파는 쌀가루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떡 맛은 건강이 묻어난다. 공원에서 공수한 쑥 향은 강렬하고 쌉쌀한 맛도 살아 있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쑥과 관련한 기억을 나눈다. 좋은 시간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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