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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WERTY Nov 20. 2024

시골 한달살기를 결정하다.

15개월 아기과 함께

1. 작년, 남편이 무너졌다.


임신 중이었던 작년 봄에 있었던 회사의 인수/합병의 영향으로 남편은 계획했던 미래를 잃었다. 다음 커리어 패스를 구두 약속하며 남편을 스카우트 했던 대표는 하루아침에 다른 회사와의 인수/합병을 결정해버렸고, 남편이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새로운 회사 대표와 사이가 틀어지며 본인은 이 사업체에서 빠져 버렸다. 게다가 새로운 회사는 기존의 업종과도 크게 상관없는 업종이었다. '어어?'하는 사이에 그간 쌓아왔던 커리어와, 꿈꿨던 장밋빛 미래가 사라졌다.


남편은 무너졌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방이 막힌 방에 갇힌 느낌이다' 라고 말하며 슬퍼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의미없이 누워있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전혀 숨길 수 없어했다. 하루하루 그의 감정기복을 눈치봐야 하는 날이 늘어갔다.


이제 막 결혼을 하고 배가 부른 아내 앞에서 누구보다 막막한 마음이었겠지만, 그런 그를 보면서 건강하게 아기를 품어야 하는 나의 마음도 매일같이 암흑이었다.


어플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엄마의 슬픔이 혹여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까, 인터넷에 검색해보고는 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나의 감정을 최대한 꾹꾹 눌러 담으며, 양가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도록 씩씩한 척 하는 것 뿐이었다.


지금 이렇게 회고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먹구름이 드리울만큼, 나의 임신기간은 우리 둘 다 늪에 빠진 시간이었다.


 

 


2. 아기를 낳았고, 남편은 일단 새로운 회사를 다니기로 했다.


새로운 회사는 그야말로 '새회사'라 체계랄게 없었다. 새 대표는 우왕좌왕했고, 새 동료들은 미숙했다. 남편은 그 과정에서 절망했다. 일을 하면서 '내가 왜 이 곳에 있어야 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어 힘들어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났으니 일단 더 다니기로 했다.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질 수 있도록 주어진 환경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잘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 회사의 분위기에 따라 내 남편의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내 불안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를 낳지 말걸, 이라는 생각까지 이르니 이제는 그가 멈추기를 바랐다.



 


3. '오빠, 우리 너무 이 회사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만의 시간을 갖는게 어때?'


막 아이를 재우고 나오는 남편에게 물었다. 마침 나 또한 회사의 조직 변화로 자리를 잃을 뻔한 위기를 겪고난 참이었다. 일개 월급쟁이가 아무리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는다 한들, 조직 자체가 사라지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n번째 겪고나니 그야말로 '현타'가 왔다.


나는 낯선 곳에서의 한달살기를 제안했다.


'나도 재택 근무가 언제까지 허용될지 모르고, 애가 아직 교육에 얽메이지 않을 시기에, 오빠도 마음에 들지도 않는 회사에 굳이 잘 보일 필요도 없으니 그만둔다 생각하고 가보는거 어때?'


남편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흔쾌히 '좋아'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이 회사가 아닌 밖에서 '불행하지 않은' 일을 하길 바란다.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아닌, 의미있는 삶을 살며 아이에게도 멋진 아빠로 보여지길 바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그는 (미안하지만) 내가 평생을 약속하고, 좋은 아빠가 될거라 생각했던 그의 모습이 아니다.


일 년 사이에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무서워서 버틴다 한 들, 이대로는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결정이 어떤 시련과 아픔이나 즐거움을 가져다줄진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는 떠나보기로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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