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으로 둘러보는 호주 대륙(12): 마운트 서프라이즈
오래 머물렀던 케언즈(Cairns)를 떠나 내륙으로 들어간다. 마운트 서프라이즈(Mount Surprise)라는 동네에 있는 야영장을 예약했다. 인구 200여 명도 되지 않는 퀸즐랜드(Queensland) 내륙에 있는 작은 동네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정했을 뿐이다.
케인즈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많이 내려와서야 내륙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만났다. 도로 이름이 케네디 고속도로(Kennedy Hwy)다. 고속도로 이름을 케네디로 지은 이유가 있을까. 궁금증을 뒤로하고 내륙으로 들어간다. 서부 광야를 달린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예상했으나 최근에 포장한 도로가 잘 깔려 있다.
황량한 들판이다. 강을 건너는 짧은 다리를 자주 지나친다. 그러나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강이다. 차창밖에 보이는 나무도 빈약하다. 목재로 쓸만한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가뭄에 간신히 삶을 유지하는 작고 비틀어진 나무만 보일 뿐이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싱싱한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자라던 케이프 트리뷸레이션(Cape Tribulation)과 상반되는 풍경이 계속된다. 그러나 이렇게 메마른 곳임에도 소 떼가 보이기도 한다.
두어 시간 운전하니 차창 밖으로 개미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많은 개미집을 만날 것이다. 들판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개미집이 흡사 공동묘지처럼 보인다. 개미들이 작은 입으로 흙덩이를 날러 지은 집이다. 오랜 기간 걸렸을 것이다. ‘백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마운트 서프라이즈라는 표지판을 크게 세워 놓은 동네에 도착했다. 포장된 도로 덕분에 생각보다 편하게 일찍 도착했다. 주위에 산은 보이지 않는다. 지평선만 보이는, 작은 동산하나 보이지 않는 동네다. 그러나 이름이 마운트 서브라이즈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야영장에 들어가 보니 시설은 좋다. 그러나 허허벌판에 있는 야영장이라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날린다. 주위에 볼거리가 없을 것 같은 황량한 들판이지만 두 개의 관광 코스가 있다. 용암이 흘러 만들어 놓은 동굴(Undara Volcanic National Park) 그리고 기차를 타고 주위를 둘러보는 관광상품이다.
이곳에서 8일 동안 지내기로 했다. 일주일 지내면 하루는 무료로 지낼 수 있다기에 하루 더 지내기로 한 것이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전화는 불통이다. 인터넷도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야 어렵게 연결할 수 있다. 나만의 시간을 갖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야영장 옆으로 기찻길이 있다. 케언즈까지 연결되는 기차다. 일주일에 한 번 기차가 다닌다고 한다. 기찻길을 따라 잠깐 걸으면 강이 나온다. 강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냇가라고 하는 편이 맞는다. 그래도 삭막한 지역에 물이 흐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우기에는 많은 양의 물이 흘러 강다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아침마다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몸을 풀며 하루를 시작한다. 예상하지 못한 보너스다.
가까운 곳에 온천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고 싶다. 유난히 온천욕을 즐기는 한국 사람의 피는 속일 수 없다. 온천을 찾아 나섰다. 온천을 향해 곧게 뻗은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온천 입구부터는 비포장도로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10여 분 운전하여 온천장에 도착했다.
온천욕을 하며 하루를 보내려고 계획했는데 온천장은 그룹으로만 들어가게 되어 있다. 나이 지긋한 원주민이 지팡이 하나 들고 10여 명 되는 관광객을 인솔해 들어간다. 온천장 주위를 돌면서 이런저런 설명이 장황하다. 온천장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원주민들이 천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지혜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설명이 끝난 후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호주 각지에서 캐러밴을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행선지를 묻고, 사는 곳을 묻기도 하면서 여행담을 나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잘 나눈다. 여행객이어서일까, 아니면 호주 사람 특유의 문화일까.
이곳에 있는 동안 단체 관광을 하기로 했다. 기차를 타고 주위를 돌아보는 관광이다. 용암이 흘러 만든 동굴 관광도 있지만, 기차를 타고 주위를 돌아보는 관광에 호감이 더 간다. 작은 버스로 동네 한복판에 있는 기차 정거장에 도착했다. 무거운 여행 가방을 가지고 기차에 오르는 사람도 많다. 케언즈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다.
기차를 타고 풍경을 즐긴다. 운전하지 않아 좋다. 지금까지 달렸던 도로가 아닌 기차에서 보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에서는 직원이 관광 안내를 계속한다. 호주에서 운행하는 모든 기차는 적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의 적자 폭이 가장 적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정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강(Junction River)에 도착해서는 기차가 서서히 움직인다. 악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디어 왼쪽에 악어가 있다는 방송을 한다. 유심히 살피니 악어가 보인다. 그러나 바다악어처럼 사람에게 위협이 될 만큼 크지는 않다. 강물에 사는 악어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기차에서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른다.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악어였지만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기차는 1시간 30여 분 걸려 목적지 에나슬레이(Einasleigh)라는 동네에 도착했다. 황량한 들판이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그러나 오래된 술집(Pub)이 있다. 이 동네를 상징하는, 1909년 건축했다는 술집이다. 숙소도 있는 큰 술집이다. 맥주 한잔하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잠시 후 버스로 갈아타고 동네를 돌아본다. 경마장이 있다. 제대로 시설을 갖춘 큰 경마장이다. 경마장 근처에는 비행장도 있다. 비행장에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보인다. 의사(Flying Doctor)가 왔을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격주로 의사가 방문한다고 한다. 인구 2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동네에 있을 것은 다 있다.
동네를 둘러본 후에 버스가 주차한 곳은 용암이 흘러 만든 계곡이다. 주위는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시커먼 바위뿐이다. 계곡 아래를 보니 용암이 흘러간 자국이 선명하다. 계곡에는 제법 많은 물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려고 자주 찾는 장소라고 한다.
관광을 끝내고 돌아가기 전에 강가에 잠시 쉬면서 다과를 즐긴다. 황량한 들판, 이곳에서 채취했다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특이한 경험을 한 좋은 하루였다.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오전에는 책과 함께 지냈다. 오후에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동네를 둘러본다. 작은 동네다. 그러나 학교도 있다. 초등학교다. 전교생이 15명이라고 한다. 병원 건물이 있긴 하지만 문이 닫혀있다. 의사가 격주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근무하는 병원이다.
도로변에는 캐러밴들이 주차해 있다. 장거리 여행 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사륜구동차에 쓰인 문구가 눈길을 끈다. 치매 걸리기 전에 도전하라; Adventure Before Dementia.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지금 실행에 옮기라는 말로 들린다.
나의 삶을 보아도 미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많다. 혹은 되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붙잡혀 있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