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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진 Mar 06. 2022

흰개미가 지은 거대한 건축물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대륙: 리치필드(Litchfield)국립공원

온천으로 이름난 마타랑카(Mataranga)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온천욕을 하며 지낸다. 하지만 온천이 좋다고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다. 최종 목적지 다윈(Darwin)으로 떠나야 한다. 이곳에서 다윈까지 거리는 400km가 조금 넘는다. 하루에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러나 중간에 있는 리치필드 국립공원(Litchfield National Park)을 지나칠 수 없다. 리치필드 국립공원은 카카두 국립공원(Kakadu National Park)과 함께 유명한 관광지로 뽑히기 때문이다.


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고속도로를 다시 달린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도로변에 있는 공원이 시선을 끈다. 작은 강을 끼고 있는 그림 같은 공원이다. 길 건너에는 큼지막한 건물이 있다. 식당을 겸한 술집이다. 야외에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통나무 식탁에는 쉬어가는 여행객으로 북적인다. 여행객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휴게소(Mary River Road House)에 도착한 것이다.

 

아담한 공원에서는 장이 열리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각종 물건을 팔고 있다. 장을 둘러본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와 과일 등이 대부분이다. 그중에 관심을 끄는 가게가 있다. 할머니가 직접 만든 잼을 파는 가게다. 잼을 하나 집어 들었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 그러나 잼을 건네주는 할머니 인상이 좋다. 좋은 사람이 만들었으니 잼도 좋을 것이다. 


통나무로 만든 식탁에 앉아 공원을 바라보며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길을 떠난다. 조금 더 북쪽으로 운전하니 리치필드 국립공원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왼쪽으로 뻗은 국도를 타고 한참 운전해 야영장에 도착했다. 큰 야영장이다. 리셉션을 겸한 식당도 규모가 크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폭포(Wangi Falls)를 찾아 나섰다. 서너 개의 유명한 폭포 중에 가장 먼 곳에 있는 폭포다. 산속을 헤집으며 건설한 좁은 2차선 도로를 달린다. 도로변에 대형 개미집이 유난히 많다. 비바람이 조각한 기묘한 바위들도 시선을 유혹한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즐기며 운전한다.


폭포에 도착했다. 이곳은 관광객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폭포다. 그래서일까, 주차장이 크다. 서너 대의 관광버스가 주차할 수 있는 장소도 마련해 놓았다. 폭포 입구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청춘남녀들이 대부분이지만, 가족 단위로 온 그룹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멀리 폭포가 보인다. 많은 양의 물은 아니지만 높은 곳에서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호수를 방불케 하는 넓은 수영장(?)에서는 남녀노소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물에 들어가 몸을 담근다. 큼지막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수영 잘하는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폭포까지 가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몸을 적신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물놀이와 함께 산책도 즐길 수 있다. 산길을 따라 폭포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영을 잘하지 못해 물놀이는 남들처럼 즐기지 못해도 걷는 것은 자신 있다. 


산책로에 들어선다. 폭포 물줄기가 시작되는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숲이 울창하다. 밀림 속을 걷는 기분이다. 급할 것 없다. 나만의 속도로 주위를 즐기며 천천히 걷는다. 경사가 심한 계단을 만났다. 힘들게 높은 계단을 오르니 자그마한 정자가 있다. 주위 풍경에 시선을 쏟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안내판에는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 사진과 함께 설명이 쓰여있다. 


정자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할머니 혼자서 작은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온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다른 산책로를 걸었다고 한다. 두 번째 산책이라고 한다. 관광보다는 걷기 위해 국립공원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자를 떠나 정상에 오르니 시냇물이 흐른다. 이곳에서 흐르는 시냇물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폭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걸으니 또 다른 폭포를 만드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이름 모를 들꽃들과 경치를 즐기며 산책을 끝냈다. 땀이 난다. 물에 들어가 더위를 식힌다. 빼어난 풍경 속에 들어가 자연과 하나가 된다.


다음 날에는 또 다른 관광지(Buley Rockhole)를 찾았다. 이곳은 상류와 하류 두 곳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상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으니 맑은 양의 물이 바위를 타고 흐른다. 사람들은 바위 곳곳에 파여있는 웅덩이에 들어가 시원한 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영장 크기의 넓은 웅덩이도 있다. 젊은이들은 바위에 흐르는 물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한다.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깊은 웅덩이에 고인 물에서는 푸른 색이 감돌고 있다. 

이곳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하류에 있는 관광지를 향해 걸어본다. 관광객 대부분은 자동차로 가지만 걷기로 했다. 흐르는 물을 따라 걷는 맛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물소리와 함께 산책로를 걷는다.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기도 한다. 들꽃에 시선을 빼앗겨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급할 것 없는, 혼자서 하는 여행자의 특권을 마음껏 누린다.  


산책로를 혼자 걷는 할머니를 만났다. 어제 만났던 할머니다. 뙤약볕을 아랑곳하지 않고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어제는 3시간을 걸었는데 오늘은 그 이상 걸을 것이라며 건강함을 자랑한다. 이곳저곳에서 찍은 사진들도 보여준다. 사진을 보여주는 핸드폰 유리가 깨져 있다. 걷다가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쉬운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는 할머니다. 


리치필드 국립공원에는 폭포수와 함께 수영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매일 다른 곳을 찾아 폭포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지낸다. 그중에 마음에 가장 드는 폭포(Florence Falls)가 있다. 두 개의 폭포가 적당한 높이에서 많은 양의 물을 쏟아내는 관광 사진에서 본 폭포다. 젊은이들은 물이 떨어지는 바위를 타고 올라가 점프하기도 한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이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늑한 수영장이다. 

오늘은 폭포를 포기하고 흰개미 집들이 모여 있는 관광지(The Termite Mounds)를 찾았다. 이곳도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개미집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들어선다. 개미집들이 줄지어 있다. 묘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개미집들의 방향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개미집 양 끝은 북쪽과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 안내판을 읽어 보니 이렇게 지어야 태양열을 24시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고 한다. 나름대로 뜨거운 열대 지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지은 개미집이다.    

주차장 입구에는 유난히 큰 흰개미 집에 울타리를 쳐 놓았다. 안내판을 보니 개미집 높이가 5m라고 한다. 이렇게 거대한 집을 지은 흰개미의 크기는 고작 5mm라고 적혀있다. 작은 흰개미들이 지은 거대한 건축물을 바라본다. 이렇게 큰 건물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흙 부스러기 하나로 시작했을 것이다. 


흔히 들어왔던 속담들이 떠오른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라고 한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된다고 한다. 천리마가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자랑하지만, 조랑말도 열흘이면 천리를 간다고 한다. 

개미집을 보며 나의 나태함을 되돌아본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삶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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