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옷 Jun 23. 2021

아이돌을 좋아하는 직장인에 대해 쓰다

-해바라기-를 듣다

찬란하게 빛! 나는 눈빛
Only look at me
나를 바라봐 줘
Oh. Hey. Hi. Like it
내 눈 속에 사랑 가득 담아
I just look at you
너만 바라볼게
Oh. Hey. Bae. Like it


상큼한 도입부를 한 번 들은 순간 이 곡에 빠져들었다. 내일 출근하려면 이제 자야 하는데... 한 번 더, 십 분만 더, 하며 영상의 재생버튼을 계속 눌러대고 있다.


만 삼세 아이의 엄마, 우리과 주무팀의 팀장인 나의 약간은 비밀스런 취미의 정체는 바로 아이돌 영상 보기이다. 지난 출장 때 유튜브로 주로 뭘 보냐는 팀원의 질문에 아이돌 영상이요,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동방신기 보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오는 그런 나이의 나-이긴 하다. 나는 요즘 BTS, 아이즈원, 에스파의 영상을 본다. 각 팀의 최애는 지민, 채원, 윈터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아니예요,라고 말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그런 나이의 나-이다. 흑.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돌 영상 보기를 좋아하는 것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론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던 그 시절의 나는  H.O.T와 S.E.S, 티티마, BSB 등등등 많은 아이돌을 국내, 국외 구분 않고 좋아했다. 그리고 그 때와 굉장히 유사한 마음가짐으로 지금은 BTS, 아이즈원, 에스파를 좋아하고 있다. 물론 그 사이의 기간에도 나열하기 곤란할 만큼의 아이돌과 노래를 좋아해 왔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동방신기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아들에게 너 원래 콩순이 좋아했는데 왜 요즘 안봐?하고 묻는 것과 같다. 내 아들은 요즘 허팝을 본다. 그렇지만 콩순이를 재밌게 보던 것과 굉장히 유사한 마음으로 허팝을 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던 그 때, 프로듀스 48이 방영되었다. 이전의 프로듀스 시리즈 2개를 모두 보았던 터라 별 고민없이 보기 시작했다. 젖먹이 아기를 키우는 일이란 정말 기쁘면서도 힘들고 답답한 그런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프로듀스 48에 나오는 아이들을 응원하면서 나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기에 틈만 나면 시청했지만 남편의 취향은 아니어서 금요일밤 본방사수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방 또는 방송보다 더 다양한 직캠영상을 보며 아이즈원의 탄생을 함께 했다. 물론 투표조작으로 얼룩진 사건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 개인적으로는 아의 한가운데에 프로듀스 48을 통해 크고 작은 위로를 수도 없이 받았기에 아이즈원이라는 그룹을 애틋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복직 후 한껏 낯설어진 회사생활에 적응하고, 엄마이면서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느라 지칠 때 나는 잠들기 전 자주 아이돌 영상을 찾았다.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하는 그들의 노력, 또래끼리 쉴새 없이 맑은 웃음을 나누는 시간, 보기만 해도 엄마미소 지어지는 매력적인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라는 것은 어느새 머릿 속에서 사라지고 그들의 좋은 기운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그들은 나를 모를지라도 그들에 대한 나의 내적 친밀감은 소꿉친구 출신의 절친과도 같다. 회사에서 치이느라 인류에 대한 적대감이 맥스로 치달을 때도, 그들을 보면 인간이란 원래 선한 존재라는 확신을 다시갖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침대에 누워 쌈무 영상을 찾아 유튜브를 헤매인다. 내일은 본부장 지시사항 검토 보고서를 써야할 지라도, 오늘 밤의 나는 쌈무 직캠을 한 개라도 더 보아야겠다. 누가 내 나이를 논하는가. 누가 뭐래도 카푸아의 오솔레미오 보다는 아이즈원의 오솔레미오가 내 귀에 맴돌고, 차이코프스키의 꽃의 왈츠 보다는 아이즈원의 해바라기가 내 마음을 울린다. 한 번 들어 보세요. 당신의 귀도 마음도 활짝 열릴지 모릅니다. 우리 쌈무가 그런 아이예요. :)


회사 선배님의 퇴사보다 아이즈원의 해체가 훨씬 슬픈 저 입니다. 성과급 대신 아이돌 콘서트 티켓과 콘서트날 포상휴가를 주신다면 더 많은 성과를 내겠습니다.


Oh my goodness
너의 숨결이 가득해
꿈꾸던 우리 이 순간이 더
자꾸 날 놀라게 해
물든 하늘에
너의 손길이 닿을 때
서로 섞인 모든 색이 번져
우리만의 기적을 만들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