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랭 May 03. 2024

블랙홀

짜장면 3화


철퍼덕!!


구멍 앞에 다다르자마자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얼마 안 되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

쓸 에너지를  몇 걸음에  모두 소진해 버린 듯했다.

최근 들어 급격히 쇠약해진 탓도 있지만,

눈뜨고 여태껏 목구멍으로 넘어간 음식물이라고는

없다 보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길고 가느다란 뼈에 거머리처럼 철썩 붙어있는 살가죽 덕분에 그나마 해골이 아닌 사람 같아 보이긴 했지만, 미라 같아 보이는 다리로는 걷는 것도, 서  있는 것도 무척 힘에 부쳤다.


다가가 눈앞에서 직접 마주한 구멍은 예상보다

훨씬 더 컸다. 분명 멀리서 봤을 때는 오십 원짜리

동전 크기만 해 보였는데,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  컸다. 하루 사이에 10배나 커졌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안쪽을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최대한 낮춘 후 시력이 조금 더 좋은 오른쪽 눈을 구멍

가까이 바짝 붙였다.

그렇게 한참을 자세도 바꾸지 않은 채 이미 뚫어져 있는 구멍을 더욱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한 듯 넋 놓고 몇 시간을 쳐다보았다. 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따금 안쪽  저 깊숙한 곳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이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이번엔 귀를 가까이 대 보았다.

처음 들어 보는 알 수 없는 신기한 소리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귀를 간지럽혔다.


구멍은 작았지만  마치 끝없이 광활한  우주의

블랙홀 같았다.



오랜만에 그렇게 한참 동안 무언가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아부었더니 배가 고파왔다. 지금껏 나에게 음식이란 하루 한번 억지로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는 수준에 불과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배고픔이다. 내 몸이 내 정신에게 정신 차리라고

하나씩 신호를 보내주는 것만 같다.


관찰을 잠시 멈춘 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뭐든 가능한

세상이다. 반대로 말하면 휴대폰 없이는 못 사는

세상이 돼버렸다.

여유로운 통장 잔고와 휴대폰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각종 음식과 생필품 그 밖의 필요한 모든 물건들이 총알같이 배송되는 세상이다. 사람과 대면할 필요도 대화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나는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그 덕에 외부출입 없이도 몇 년을 버티고 있는 중이다.(내 통장엔 앞으로도 100년 이상 쓰고도 남을 돈이 들어있다. 현재로서는 무용지물이긴 하지만)

코로나는 나 같은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최적화된 세상을 선물해 줬다.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자 제일 먼저 짜장면이 떠올랐다. 몇 번의 터치로 30초도 안 되는 시간에

비대면으로 주문하기를 완료했다.

짜장면은 유독 가족들과의 추억이 많은 음식이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18평 단칸방에서 24평 아파트로 이사 갔던 날,  최우수졸업생으로 대학 졸업하던 날, 그리고  그날...... 기쁨과 슬픔이 소용치 던

그날 역시도 함께했다.


부단히 도 잊으려고 노력했던 그날에 대한 기억이

짜장면과 함께 불현듯 떠올랐다.


“제길! “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성이 생길 대로 생겨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을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죽음만이 유일한 치료제인걸 알지만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란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그랬으니까 여태껏 버티며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중이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말이다.


많은 음식 중 왜 하필 짜장면이 먹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검은색 구멍을 계속 들여다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족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인데 배달의 민족답게

음식이 벌써 도착했다.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이 몸으로 들어가니,

온몸에 죽어있는 세포들이 하나하나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많은 양의 음식 섭취에  

놀란 위가 급하게 공장을 가동한 듯 연신 꺼억 꺼억 트림을 토해내고 있었다.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잭슨 5세가 떨어진 짜장면을

주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 내가 너처럼 작았다면  직접 구멍으로 내려가

 볼 텐데 잭슨 하하“


순간 정말로 잭슨을 구멍에 내려 보내 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