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에 있는 오세브리오 알베르게는 아무래도 산장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것 같다. 비록 건물의 모양새나 건축재료는 이국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설악산 꼭대기나 지리산 꼭대기에 있는 산장과 어딘지 모르게 분위가 흡사했다. 분주한 산장의 아침, 화장실이나 주방은 출발 준비로 바쁜 순례객들로 북적이고 늦잠을 자고 싶은 이들도 어쩔 수 없이 눈을 비비며 비꺽 거리는 이층 침대를 조심스레 내려온다. 바깥 기온은 빙점으로 떨어져 침낭 밖은 쌀쌀한 기운이 날카롭다.
간밤을 같이 지냈던 한국 순례자들과 서로 사진도 찍어 주고 남은 여정 무사히 마치라는 덕담도 주고받았다.
예의 가톨릭 단체 여행객들이 산장 앞에서 간단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산장에서 내려다본 아침 풍경>
11월 5일, 토요일의 상쾌한 아침, 한 30분쯤 산등성이를 따라 달렸을까? 드디어 가파른 내리막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길은 마차 한대가 지날 정도의 너비이며 지면에는 일부러 깔아 놓은 듯이 작은 자갈이 느슨하게 덮여있다.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중력이 당기는 대로 푸디와 나는 밑으로 밑으로, 계곡이라는 심연으로 계속 침잠하듯 다운힐을 시작한다. 뒤로한 산봉우리 위에 아침해가 떠 오르고 아침의 눈부신 햇살은 마치 무대 위의 스포트 라이트처럼 푸디와 나의 모습을 뒤에서 앞쪽으로 길게 비춘다.
바람도 없는 산중의 아침은 사방이 고요한데 지표면 자갈 위를 구르는 자전거 타이어가 내는 단조로운 허밍소리가 마치 관중이 나에게 보내는 갈채 소리처럼 들린다. 그리고 예서제서 우짖는 새소리는 마치 열성적인 관객이 보내는 휘파람 소리처럼 들린다.
오, 아름다운 이국의 11월 아침 솔로 다운힐의 즐거움이여!!!
스페인은 유럽에서 스위스 다음으로 산이 많은 나라이다.
북쪽에는 칸타브리안 산맥이 북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으려는 듯 서에서 동쪽으로 마치 병풍처럼 길게(600-700km) 펼쳐져 있고 곧이어 프랑스와 스페인을 장벽처럼 가르는 피레네 산맥이 역시 서에서 동쪽으로 길게 흐른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도 이베리아 산맥과 중앙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고지대(해발 650여 미터)에 위치해 있고 반도의 남쪽 Betic산맥도 3500여 미터의 높이로 지중해를 굽어 보고 있다.(지도 참조)
지금 푸디와 나는 칸타브리안 산맥의 서쪽 끝단 지류 레온 산맥을 넘어가고 가고 있다. 이 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내려가면 그곳은 기후가 몰라볼 정도로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은 갈라시안 지방이 이베리아 반도 끝까지 펼쳐진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 야고보가 누워 있다는 "별이 흐르는 평야" Compostella de Santiago는 대략 150km 정도 떨어져 있다.
오늘의 여정은 정말로 여유롭다. 높은 산맥들을 이제 다 넘었다는 안도감이랄까? 아님 문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순례자의 여유로움이랄까? 어쨌든 홀가분 한 마음에 이제껏 바닥만 쳐다보고 달리던 나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감상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 곳에 이르니 길가에 한 두 그루씩 서 있는 사과나무가 눈에 띄고 나무밑엔 멀쩡한 사과들이 수없이 떨어져 있다. 그중 깨끗한 놈 두어 개 집어 들어 하나는 입에 베어 물고 하나는 주머니에 넣는다. 그뿐인가? 어느 한적한 작은 동산을 낑낑 거리며 올라 가는데 글쎄 그 동산이 밤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산길 양편은 잘 익은 밤들로 수북이 덮여 있었는데 일부는 벌써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농부들이 수확을 포기했거나 아님 일부러 재배를 하는 나무들 같지는 않다고 판단을 했다. 그리곤 주머니가 꽉 차게 주워 넣었다.
<밤나무 숲길. 길에 밤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고 주위에 익은 밤들이 널려 있다>
도중에 위스콘신에서 왔다는 노부부, 70대는 훌쩍 넘은 것 같은 부부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고, 자신과 함께 걸어가는 늙은 반려견을 위해 1마일마다 쉬어야 하는 마음이 따듯한 어떤 스페인 사람도 만났다. 우리 푸디도 살아 있을 적 왔었더라면....
길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깊은 숲에 둘러 싸인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완만하게 구릉진 초원에는 소떼나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떼가 좁은 길을 점령해 잠시동안 기다려야 하기도 했고, 구름이 간간히 떠 있는 파란 하늘에 비행운이 사방으로 길게 드리울 땐 잠시나마 떠 나온 집을 생각하기도 했다.
오늘의 목적지 Portomarin는 잔잔히 흐르는 "Rio Mino" 강 저편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도시로 입성을 하려면 긴 다리를 가로질러 미노강을 건너야 한다.
미노(Mino) 강(Rio)은 조용히 흐르지만 이곳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넓고 긴 강이 그러하듯, Mino강도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10세기 무렵 알만수르가 이끄는 이슬람 군대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기도 했고 중세에는 스페인 여러 왕들 간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단다. 게다가 현대에 이르러 수력 발전을 위한 댐의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기도 했다니 참 여러모로 사연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이 내려다 보이는 도시의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는 몰골이 참 힘들어 보이는 예수의 조형물이 못 박혀 있고, 그나마 그 조형물도 부자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리석이나 금박을 두른 값비싼 재료가 아닌 그냥 주철로 만들어진 듯 표면이 온통 녹으로 벌겋게 변해 있어 쳐다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실로 말하자면 이런 적나라한 모습이야 말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모습 아닐까? 오 주여, 왜 아니 그럴까?
다만 무릎을 꿇고 예수를 쳐다보는 여인(마리아?)의 모형은 우아하기도 할뿐더러 재료도 대리석쯤 으로 보이니 이런 명확한 대비를 통해 작가는 무엇인가 표현 하고자 하는 것 같다.....고 나는 해석 했다.
어떤 모퉁이에 꽤 여러 명의 한국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며 즐겁게 앉아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곤 혹시 묶고 계신 숙소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우린 그런 사람들 아니에요. 우린 가톨릭 단체 순례자들이에요" 하고 고개를 돌린다.
오케이!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의 숙소(알베르게)를 찾았고 그 숙소에서 "그런" 순례자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와인도 같이 하고 낮에 주어 넣은 밤을 삶아 같이 먹으며 그렇게 "그런" 밤을 보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