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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다 Aug 04. 2021

오죽하면

잊을 수 없는 여행

“2008년 9월 18일.” 들산이 대답했다. 들산은 함양으로 홀로 귀농하여 수년째 잘 살고 있는 내 절친이다. 들산에게 전화해서 내가 물은 것은 우리가 처음 만난 그 여행이 몇 년도였느냐는 것이었다. 들산은 금세 자기 일기장을 꺼냈고 그걸 보고 2008년이라고 했다. “2008년? 2005년이 아니고?” 내 기억은 들산의 기록에서 3년을 내려갔다. 기억과 기록의 싸움에서 기억이 이길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들산은 내가 뭘 잘못 기억하거나 아예 기억하지 못할 때면 “니 치매 아이가?” 하면서 조롱 반 걱정 반을 해오던 터였다. 얼른 2008년도에 동의한 뒤 장소로 점수를 올려 보려 했다. 여행지에 먼저 가 있던 무리들과 합류하기 위해 내가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청주시외버스 터미널이었으렷다. “청주 어디였더라?” “야!” 하고 들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차, 아닌가 보다. “거기서 내가 버스를 타고 무슨 선착장 같은 데서 내렸는데......” 소리는 작아지고 말끝은 흐려졌다. “으이그.” 들산의 목소리엔 아예 연민이 담겼다. “일기에 이렇게 적혀있거든. 새벽이 월악나루터에 도착했다고 해서 생강하고 이완이 새벽을 데리러 월악나루터에 갔다.”


  월악나루터라. 이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도착하여 난간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생강’을 기다리던 그 곳이 충주였군. 또 말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설마 이번 기억도 잘못된 기억은 아니겠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데서 잘 수 있었나 몰라. 여자들끼리 산에서.....” “야아. 산이 아니라 나무들로 둘러싸인 평지거든.” 아. 나는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지. 넘겨짚기 그만. 차라리 묻자. “내 첫인상이 어땠어?” “어두워서 안 뵀다. 목소리만 들렸다.” 들산은 내 목소리를 듣고, 어? 201호 여자가 와 여기 왔노, 했단다. 사분사분 나긋나긋 내 서울 말씨가 좋았단다. 휴. 이번엔 안 혼났다. 귀지 살살 파내듯 여행으로 또 들어가 보자. “다음 날 목적지가 어디였더라?” 들산의 정사(正史)에 따르면 그 날 밤 동침자는 모두 열 명이었다. 나, 반사, 나리, 공룡, 이완, 은델레, 길날, 달군, 생강, 들산. 각지에서 모인 열 명은 배낭에서 꺼낸 밑반찬으로 저녁밥을 먹고 신문지와 담요를 깔고 얼기설기 누워서 잤고 다음 날 아침 위풍당당히 도보 여행을 시작했으니 가는 곳은 오티길이었단다.

 

  2박 3일의 도보 여행. 여정을 정한 배경이 생각났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에 나오는 충청도 길을 걷자고 누군가가 제안하고 누군가가 호응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여행지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내가 그 여행에서 노린 건 ‘도보’였지 ‘죽기 전에 가 봐서 여귀 되는 걸 면하리라.’는 류의 포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귀농· 생태· 퀴어’를 정체성으로 하는 그 모임원이 된 건 친구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서였다. 그 해 초,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펄펄펄 새 힘을 내고 있었다. 놀란 내가 그 힘의 원천을 묻자 ‘정착과 유목 사이’라는 단체라고 했고 자신은 거기에서 ‘생강’으로 불린다고 했다. 나도 그 기운 좀 받아 보자 해서 온라인 카페에 새벽이라는 별칭으로 가입하고 오프라인 모임에 두 번 나갔는데 모임원들이 특이했다. 별칭 외에는 나이나 이름, 하는 일을 묻지 않았고 반말하는 게 원칙이었다. 몇몇은 동성애자라고 했고 몇몇은 곧 무주나 강진으로 귀농할 거라고 했다. 나누는 음식은 막걸리와 날두부가 다였고 주된 화제는 자본주의와 기존의 성 문화를 거스르며 청빈한 농부로 사는 방법이었다. 먹을 걸 짊어지고 한뎃잠을 자 가며 하겠다는 도보 여행도 그 맥락이었고 나는 그게 신선해서 동참하기로 했건만 어쩌면 그리도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던지 놀라웠다.

 

  들산은 별 걸 다 적어놨다. 신춘문예 소설에 응모한 국문학도답다. 내가 첫 날 맨땅에서 자고 나서 그랬단다. 땅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에 몸이 시려서 잠을 못 잤다고. “그런데 어쩌다가 너랑 내가 낙오자가 됐지?” 드디어 나도 기억나는 게 생겼다. 둘째 날, 들산과 나는 대열에서 처져서 둘이 되었다. 이 기억의 옷자락을 꽉 잡자. “니가 절뚝거렸잖아. 나는 무릎이 안 좋았고. 우리가 차량 팀하고 도보 팀으로 나눠서 내 차에 니랑 생강이랑 은델레 타고 그 날 잘 데를 물색해서 거기다 차를 두고 도보 팀하고 합류하기로 했는데 생강이랑 은델레는 먼저 걸어가고....” “맞다. 우리 둘이 걷다가 생강이랑 은델레를 만나서 옆길로 새서 절에 갔지. 거기 땡중이 우리한테 백팔배하면 송편 준대서 니는 안 하고 셋은 그거 얻어 먹을라고 끝까지 하고.....” “오호. 그건 잘 기억하네. 그 절은 정방사다.” 그럼 그렇지. 내가 그렇게 맹탕일 수는 없지. 나는 여 보란 듯 그 장면을 이어갔다. “땡중이 니한테 결혼하라 하고. 니는 기분 나빠하고. 송편 진짜 맛있었는데." 그나저나 들산과 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했던 말들이 뭐였더라? 들산이 내 맘을 알았던지 말했다. “니는 그런 발로 와 여길 왔노? 했더니......” 내가 뭐랬는지 생각이 안 났다. 나 원 참, 내가 한 말이 뭐였나를 알기 위해 귀를 세우는 꼴이라니. 들산은 말했다. “오죽하면 왔겠니, 하더라.”

 

 오죽하면. 그러게. 그런 위험한 발을 끌고 굳이 집을 나선 이유가 뭐였을까. 6년 전 접지른 뒤 속썩여 오던 오른쪽 발목이 출발 두 주 전부터 아파 왔고 의사가 여행을 만류했는데도 감행한 그 ‘오죽하면’의 사연은 뭐였을까. 이거다, 하고 짚이는 게 없었다. 사태가 이 정도면 여행 탐구는 여기서 끝낼 수밖에 없다. “들산 너는 그 여행에서 얻은 건 뭐고 잃은 건 뭐야?” 부산 사투리를 쓰고 술이 세고 첫 만남에도 직격탄을 날렸던 들산에게 그 여행은 뭐였을까, 그 여행에 대한 내 기억은 온통 오류인데. “잃은 건 뭐고 얻은 건 뭐냐꼬? 사람을 잃었고 사람을 얻었지.” “엥?” “그 때 만난 애들 중 지금은 안 만나는 애들이 많잖아. 너는 얻었고.” 맞다. 아무리 구멍투성이인 기억이라고 해도 그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 여행에서 나는 들산을 얻었다. 도시에서 이전투구하다가 지쳐 빠질 때면 들산 곁으로 가서 사는 꿈을 꿨다. 들산은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며 쯧쯧거리다가도 술에 취하면 이제 더는 안 기다린다고 역정을 냈다. 맞다. 농부로 낸 첫 수확물과 같이 보낸 편지에서, 나는 농부라는 꿈을 이뤘는데 너는 어떠냐는 질문을 해서 날 주저앉혀 울게 한 들산을 얻은 건 그 여행에서였다.


 나는 그 여행에서 어디를 갔는지 어디에서 잤는지, 왜 갔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 누구와 인연을 맺었는지는 또렷이 기억했다. 여행은,  그래서, ‘기억 나는 여행’이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여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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