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선생님이 계셨던 학교처럼 작은 학교를 갔다왔습니다. 전교생이 육십 명 남짓한 학교니 선생님이 계셨던 탄광 마을 학교보다는, 큰가요? 작은가요? 저 사진 속 아이요, 제가 자기 친구에게 말을 거니 자기 좀 보라며 쌩쌩이를 하던데, 저 아이가 선생님이 만나시고 품으셨던 아이와 비슷한가요?
저는 편견이 많은 사람이어서 같은 나이의 꼬맹이라도 도시와 시골 이편 저편을 가르고, 시골이라도 소읍과 벽촌을 가르고, 벽촌이라도 표정의 빈약함 부요함을 가르고, 부요함이라도 탁함과 맑음을 가르지요.
선생님은 단연코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믿었나 봐요. 책으로 선생님이 쓰신 교단 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그걸 읽고 그 믿음이 깨지는 한편 선생님을 한층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용은 이랬죠. 선생님이 부아가 나서 한 아이 뺨을 때리셨는데, 그 아이가 그 날 쓴 일기에 길택이 죽이고 싶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요. 선생님은 그 아이 마음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옮기시면서 자신의 자질 없음을 미안해하셨죠.
그 일기를 읽고 저는 우선 놀랐어요. 어떻게 이런 치부를 만천하에 알리셨나 해서요. 저라면 화를 못 이겨 학생 뺨을 때렸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었을 거 같거든요. 선생님이 그러지 않으셔서 저는 그때부터 선생님의 다른 고백들이 믿어졌습니다.
자신의 천박함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되, 결국은 성찰하는 능력을 과시하여 더 큰 인정을 받으려는 계책이 아닌, 뜨거이 부끄러워하시는 마음을 보게 된 뒤로 저는 선생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나 즐겁자고선생님을 내 맘대로 이상화하지 않으면서요.
선생님의 시집 '할아버지 요강' 안에 들어 있는 이 시. 이 시를 두어 번 옮겨 적고는 소리 내 읽어 보곤 했습니다. 냉장고 문에 붙여 놓기도 했고요.
오늘, 경기도 연천에 있는 백의초등학교에 어쩌다 두 주 새에 두 번째 가게 되었습니다.제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제게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거예요. 도시에선 볼 수 없던 환대라 저도 흥이 나서 말을 주고받았는데요
뒤따라 오던 지인이 저 모습을 찍었네요. 이 새벽에 사진을 들여다보노라니 냉장고에 붙여 놓고 문을 여닫으며 소리 내 읽었던 시가 생각납니다.
제가 만난 이 친구들이 선생님 시에 나오는 '민이'들일 가능성이 높을 거 같지 않은데 - 민이들이라고 보기엔 그들의 입성이나 표정이 남루하진 않았거든요. - 왜 그 시가 떠올랐을까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에 와서야 아무 소용없는 고백이지만, 선생님처럼 살고 싶었던 듯해요. 작은 학교에서 작은 애들을, 끝까지 팽창하지 않는 작은 마음 가지고 만나며 살아가고싶었나 봅니다. 그런 게 아니면 이 사진 하나로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제 마음을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제와선 다 부질없이 돼 버린 소망입니다. 도시에서 살아낸 이 마당에 한때 제게 그런 소망이 있었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