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들이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당면하는 현실적 숙제는 어떤 집을 구할 것인가,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 편입학시킬 것인가에 이어 어떤 차를 장만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다. 국산차를 탈 것인가 외제차를 한번 타볼 것인가, 새 차를 면세 가격으로 살 것인가, 낯선 곳에서의 고장 가능성을 감수하고 중고차를 살 것인가, 좀 무리가 되더라도 폼 나는 비싼 차를 살 것인가, 국내에서 급매한 차 값으로 싼 차를 살 것인가.......
사실 새 차를 사서 2~3년 동안 타고 다니다가 귀임할 때 적정한 가격에 처분할 수만 있다면 차에 대한 고민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국산차 여부나 차종에 따라 중고 차간 가격차이가 상당하다. 면세로 구입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3년을 타고 새 차 구입 당시 가격으로 되팔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선택의 결과가 금전적 손익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평범한 생활인에게는 국산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인도에는 도요타(TOYOTA)에서 생산한 이노바(INOVA)라는 7인승 밴 모델이 4인 가족용으로는 가성비가 높고 중고차 가격도 잘 쳐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의 열악한 도로 사정과 중저가 수요에 맞춤형으로 내놓았다는 점에서 3년 타고 처분하기에는 제격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난번 유럽에서 근무할 때 국산 브랜드를 샀다가 중고차로 정리할 때 유럽차 대비 상당한 가격차이를 감수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 알아본 국산차 가격이 호주머니 사정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는 점도 ‘쿨 하게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을 부추겼다.
외교관이, 그것도 우리 문화와 국가 홍보를 담당하는 외교관이 다른 나라 차를, 그것도 일본차를 탄다는 것은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글로벌 시대에 웬 국수주의적 발상인가. 우리는 자동차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만큼, 외교관들이 앞장서서 우리의 개방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사관 주차장에는 국산차와 이노바가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만큼 후자와 같은 젊고 대범한 발상도 상당한 모양이다.
변수가 발생했다. 지난해 우리 외교관 한 명이 이노바를 타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인도에 굴러다니는 대부분의 중저가 차량이 그렇듯 그 차에는 에어백이 없었는데 불행히도 운전자는 사망하고 뒤에 탔던 우리 직원은 큰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에어백을 갖춘 이노바 고급 모델 가격을 알아보았더니 측면 에어백까지 갖춘 기본 사양의 현대 산타페보다 3백만 원 정도 저렴한 수준이었다.
결국 무리가 좀 됐지만 산타페를 선택하면서 "안전을 위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라고 자위했다.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던 시절에 태어났던 구세대의 ‘국산품 애용’ 관념이 이번에도 먹혀든 셈이다. 무엇보다 3백만 원 때문에 일본에 대한 경쟁심을 접은 채 편안한 마음으로 일본차를 타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3천만 원 차이라면 또 몰라도....... 국산차를 타는 것 여부가 애국심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애국심을 상기시키는 옵션이 약간의 손해를 동반하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도를 떠날 때쯤 산타페 중고차 가격이 잘 나가주기를 바랄 수밖에...... (201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