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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금평 May 05. 2023

세상이 이상한 게 맞아?

서울 산책

세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해안초소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졸병생활을 겨우 벗어난 시점에 초소 주변에 꽃밭을 가꾸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다. 1983년 봄이었을 것이다. 우선 해바라기 씨 몇 알을 구해 취사장 주변에 곱게 심어주었다. 그런데 열흘 남짓이나 기다렸지만 싹은 터올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때는 해바라기 씨를 삶아 간식으로 즐겨 먹던 시절이라, 혹시 삶은 씨를 잘못 심었나 싶어 흙을 살짝 걷어내 보았다. 


싹은 나고 있었는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싹이 하늘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땅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거꾸로 자라고 있는 싹을 조심스럽게 고쳐심으며 '아무리 인간 세상이 말세라지만 자연 현상까지 정말 이래도 되는가'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다른 씨앗들을 들추어 봤더니 이들의 싹도 땅속을 향하고 있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집단으로 반항을 하고 있구나......'생각하며 반항아들을 하나하나 고쳐 심어 주었다. 문득 기이한 자연현상을 세계 최초로 마주하고 있는 생물학자가 된 느낌이었다. "이 풍진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살아낼 거야. 그러니 너희들도 힘을 내서 살아내야 한다"라고 당부하며 털고 일어섰다. 


뭔가 내가 잘못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 현장에서 했는지, 돌아서 몇 걸음을 뗀 후에야 깨달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농촌에서 자랐으면서도 농사일에 얼마나 무관심했으면 씨앗에서 싹보다 뿌리가 먼저 나온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을까. 뿌리를 보고 싹이라고 확신한 채 거꾸로 고쳐 심어 준 인간을 그 해바라기씨앗들은 과연 얼마나 어처구니없어했을까 싶어 아직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 해바라기 씨앗들이 그 후 어떻게 자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가 다른 부대로 옮겼던 시점이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세상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내가 이상한 거야 바보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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