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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룽이 Jun 16. 2024

응? 네덜란드 대신 한국에 간다고?

한국 정착은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나에게는 20대 초중반 남동생이 있다. 나처럼 연길 변두리 시골에서 태어났고, 나와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중국 대학입시(Gaokao)를 마친 뒤에도 당연하다는 듯 나와 같은 선택을 했다. 대학교 공부는 북경에서 하기로 (아쉽게도 북경대 청화대는 아니다).


굳이 내 모교를 고른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내 모교만큼이나 북경 중심지역과 동떨어진 곳에서 꼬박 4년을 보내야 하는 결정을 동생은 참 쉽게도 내렸었다. "누나의 선택은 항상 옳다" 이러루한 최면에 걸렸나 보다. 2018년 가을, 그때까지만 해도 난 북경에서 별 탈 없이 잘 지내며 가끔 주말이면 동생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반년도 안 지나 내가 갑자기 북경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럽과 태국을 거쳐 어느 순간 상해에 정착을 해버린 나에게 아주 조금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내 동생이 나중에 실토했다. 내가 북경을 떠날 줄 알았더라면 북경이 아니라 상해 항주 쪽으로 골랐어야 되는데, 복단대는 몰라도 절강대는 충분히 가능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쉬워하던 동생, 그러면 대학원 선택은 꼭 혼자 고민하고 잘 선택하라고, 프랑스나 독일은 절대 선택하지 말라고 농담 섞인 엄포를 놓았다.


졸업은 2년 전에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본의 아니게(?) 2년 Gap year이 생겨버린 동생. 올해 가을 입학을 또 놓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오래간만에 동생은 열심히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와 내 남편의 “뒷바라지” 덕분에 올해 3월 안으로 학교 신청을 할 준비를 다 끝냈다. 아, 갑자기 뒷바라지 얘기가 나온 이유는 바로 동생이 막바지 돌진을 한답시고 2월 말부터 상해에 와서 우리 집에 5주 정도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GMAT, IELTS 성적은 차수와 상관없이 제일 높은 성적으로 제출하면 되기에 동생은 실제로 열심히 재시험 준비를 했고, 결국 기대 이상으로 높은 GMAT 및 살짝 어중간하지만 앞가림은 할만한 IELTS 성적을 얻게 되었다.


동생의 target school 암스테르담 대학교 신청 데드라인은 4월 1일이라 이제 신청만 마무리하면 된다. 네덜란드 쪽으로 고른 이유는, 대학교 1학년부터 쭉 사귄 여자친구가 작년에 네덜란드 모 대학교에 입학했고 나중에도 쭉 유럽 살고 싶다고 했단다. 그래서 동생은 여자친구와 함께 네덜란드에서 석사과정을 끝내고 거기에서 직장을 구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영어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닌 동생이 이런 계획을 한다니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데드라인을 며칠 앞두고 충분히 잘 된 준비에 남편이나 나나 시름을 놓았던 3월 말의 어느 화창한 오후,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내 눈에 동생의 이상행위가 포착되었다. 급히 점심을 먹고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방문도 닫아버렸다. 아니 이 시간에 누구랑 통화를 하지? 통화를 끝내고는 내내 불가마에 든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하더니 저녁 밥상에서는 투명인간 코스플레이를 하는 게 아닌가,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 “너 설마… 여자친구랑 헤어졌니?” 물었더니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알았냐고 하던 동생. 결국 그날 저녁 수다 내용은 동생의 상황정리 그리고 next step에 대한 토론으로 꽉 채워졌다.


실은 이 일이 발생하기 2주 전에 셋이서 소주로 주말여행을 갔었다. 운전 중 무심코 했던 얘기가 있었는데, 동생은 아마 여자친구가 없었더라면 네덜란드보다는 한국이나 일본을 선택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추측에 공감했었다. 영어권 친구가 없고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동생의 영어 말하기 수준은 상당히 애매했고, 성격도 내성적인 편이라 유럽 생활에 쉽게 적응할 것 같지 못하거니와 중국 국적을 가진 (혹은 유럽 나라 시민권자가 아닌) 네덜란드어 벙어리 사회 초년생이 네덜란드에서 직장을 찾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정도라고 전해지는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순 없으니 암스테르담 대학교는 그대로 신청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올해 안으로 유학은 가야겠다고 결심한 동생이기에 늦게나마 다른 나라 다른 대학교에도 지원서를 넣기로 결정하고 열심히 정보를 뒤적인 뒤, 가을학기 신청이 마감되지 않은 한국 SKY 모 대학교를 발견하고 급하게 신청서를 넣었다. 동생의 새로운 결정에 엄마 아빠 모두 많이 기뻐하셨다. 네덜란드는 너무 멀다는 둥, 유럽이 지금 위험하다는 둥… 몇 번의 가족 토론을 거쳐 시세는 이미 완전히 한국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벌써 5월, 동생은 암스테르담 대학교 offer과 한국 대학교 신청 자료합격/면접안내 이메일 모두 받았다고 했다. 그나마 암스테르담 대학교 offer을 받게 되어 마음 편히 면접을 준비할 수 있게 된 동생, 물론 그 offer을 당장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 진행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프로세스 때문에 내 visa카드는 자꾸 긁히고…


그리고 6월, 한국 대학교 면접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동생은 예상에 전혀 없던 질문들을 너무 많이 받았기에 합격하기가 어려울 거라 짐작하며 아쉬워했다. 또 몇 번의 가족 토론을 거쳐 엄마 아빠도 다시 네덜란드로 결정해야 하나, 학비는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나 고민을 한 지 겨우 일주일도 안 됐는데 동생이 한국 대학교 합격 소식을 전했다. 그것도 장학생으로 첫 학기 등록금 학비를 모두 면제한다는 의외의 소식과 함께.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장학금 덕분에 우리 마음은 다시 한번 흔들렸고 동생은 합격의 희열을 제대로 누리기 바쁘게 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네덜란드냐 한국이냐.




Offer 2개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동생에게 했던 조언은 간단했다. 갑자기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동생이 굳이 네덜란드로 가야 할 이유가 없어진 4월에는 한국을 강력 추천했었다. 암스테르담 대학교 신청 합격 결과가 아무리 기다려도 무소식이기에 불합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도 있지만, 마침 나도 몇 년 뒤의 한국 정착을 고민하며 브런치에 첫 글로 "2030년에는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겠지?" 를 발표했었기에.


암스테르담 대학교 offer를 받은 5월에는 나도 동생도 조금 흔들렸었다, 아무리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해도 필경 거의 2년 가까이 준비를 했던 학교인지라 쉽게 포기하기에는 아깝고, 고생고생해서 얻은 GMAT 고득점으로는 기왕이면 일상생활에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곳으로 가서 세계 여러 나라 친구들도 많이 만들고 영어 말하기 연습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얼마 안 지나 한국 대학교 면접을 망쳤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는 어쩌면 진짜 선택이 아예 없이 네덜란드로 가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또 한 번 엄마 아빠에게 유럽의 좋은 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주, 둘 다 합격했다는 동생의 소식에, 장학금 받으며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감탄하며 또 한 번 더 생각을 바꿨다. 아, 내 유학은 참 간단했는데 동생은 신청부터 왜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스펙터클 할까… 잠도 제대로 못 이루며 고민을 한다는 동생 때문에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여 중국 SNS 샤오훙수에 콘텐츠를 올려 조언을 구했다.


댓글이 많이 달린 건 아니지만 대부분 성의가 담긴, 동생 입장을 충분히 배려한 조언들이라 마음이 따뜻했다.


댓글 중 암스테르담을 추천하는 비중이 80% 정도로 많이 높긴 했지만 한국을 추천하는 댓글도 꽤 보였다. 네덜란드와 한국 두 나라에 대해 다 잘 아는 사람들은 좋은 점 나쁜 점을 충분히 나열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동생이 미래의 진로를 충분히 고민한 뒤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댓글을 읽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은 한국 쪽으로 지우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동생도 비슷한 생각을 얘기하며 나의 의견을 더 물어왔다. 물론 단순히 나라 혹은 학교 랭킹 차이뿐만 아니라 수업방식 난이도 등 디테일까지 언급하며.


아니, 이것은 함정이 아닌가? 2018년 나 때문에 북경 대학교를 선택했는데 내가 도망쳤다고 구시렁거리던 모습이 얼른거렸다. 에라 난 모르겠다 알아서 결정하라고 더 이상의 토론을 멈췄다.


아마 동생은 내일까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암스테르담 대학교 기숙사 신청 비용 495유로를 환불받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러면 나의 바가지 긁음을 감당해야 될 테니까.


마지막 결정은 한국일 거라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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