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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룽이 Apr 29. 2024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가

느낌이 쌓이다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구나

작년 10월 제주도와 서울에 고작 열흘 정도 머물렀던 나와 남편이 갑자기 한국 정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를 글로 적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다. 따끈따끈한 기억 그대로 매일 일기라도 써뒀어야 했는데 결국 이렇게 6개월이 지나버린 지금, 뒤늦게 핸드폰 갤러리를 뒤적이며 순간순간 받았던 느낌을 되새기다 보니 (Better late than never!) 체계적으로 깔끔히 정리를 하는 게 나와 남편이 미래를 계획하는 과정에 중요한 준비자료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지난 6개월간 이곳저곳 여행 중이든, 일상생활 산책이나 밥을 먹을 때에도 부지런히 말로만 시작하고 말로 끝냈으니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중국 안 떠난다고 드러누우면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겠다. 물론 실제로 변덕은 내가 훨씬 많으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마 남편 말고 내가 딴소리를 하겠지.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설득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겠다 :)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지, 일단 생각나는 대로 글로 남기려고 한다.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가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가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가

* 룽룽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지극히 주관적인 저희 부부의 생각입니다. 공감/반박 댓글 모두 환영입니다."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가 - "왜"


정확히 10년 전 내가 유럽에 갔던 이유는 학위에 대한 집념이거나 가족이 준 압력이 아니라 단순히 중국을 떠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거였다. 분명히 유럽에서 직장을 찾아 정착하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제일 끌리는 직장이 북경에 있다 보니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잦은 유럽 출장 기회와 여행 덕분에 언젠가는 꼭 사직하고 유럽에 가겠다는 계획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다 또 한 번 직장 기회 때문에 유럽 대신 상해로 이사하게 되었고, 상해는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을 실감하며 어쩌면 평생 여기에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2020년부터 2022년 3년 내내 밑도 끝도 없이 무리수로 되어가는 방역 상황에 실망을 하면서 주변 회사 동료나 친구들이 하나 둘 이민 준비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나도 고민은 했지만 딱히 가고 싶은 나라도 없고 당장 쉽게 이민할 방법도 없고 하다 보니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간혹 인터넷 때문에 불편함을 겪긴 했지만 방법은 다 있다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앱들이 점차 단순히 아이피 주소가 아닌 실제 위치로 접속해야 하는 가능성을 검토하는 걸 느끼면서 '내가 언젠가는 설마 이 세상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져 살게 될까?'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상해는 정말 좋은 곳이지만 난 그래도 world citizen이 되고 싶은걸.


태어나서부터 쭉 상해 살고 있는 내 남편은 나의 world citizen blah blah에 직접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생각을 상당히 존중해 준다. 결혼을 앞두고 내가 만약 업무 때문에 외국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면 어쩔 거냐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이유가 충분하고 돈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면 어디로 가든 함께 가고 싶다고 답했다.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가 - "나중에"


브런치 첫 글 제목에서 2030년을 언급한 걸 보면 티가 나겠지만 우리의 한국 정착 계획은 아주 먼 미래에 있다. 5~10년을 감안해야 하는 장기적 목표.

여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건 당연하게도 돈 때문이다. 위에 썼던 남편이 나와 함께 어디든 가고 싶다고 했을 때의 전제는 1) 이유가 충분하고, 2) 돈 걱정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뻔하게 있으니. 우리말로 업무(통역 포함)를 하지 않은지 10년은 넘지만 그래도 tri-lingual 티는 어느 정도 나기에 직장은 찾을 수 있는 (있겠지?) 나와는 달리 내 남편은 덜 능숙한 영어와 빵점 한국어 때문에 한국 직장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하다.


나라도 열심히 일하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한국 회사 JD 및 패키지를 대충 검색했더니 지금의 우리가 한국에 가서 취직을 한다면 정말 입에 풀칠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의 현재 회사 스킬을 그대로 한국에 옮겨 비슷한 타이틀로 입사를 할 가능성은 0이라고 보면 되니까. 게다가 작년에 마음에 드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새 차도 뽑았으니 일단은 여기의 삶에 충실하면서 천천히, 하지만 짬짬이 미래 준비를 해야지.



왜 나중에 [한국]에 정착하려고 하는가 - "한국"


나와 남편이 함께 공감하는,  짧은 여행 중 발견했던 한국의 좋은 점을 적어봤다. 너무 뻔한 것들 말고 최대한 이색적으로 쓰려 노력을 했는데 티가 날지 모르겠다.


1. 정갈함과 배려가 돋보이는 디자인

 

고작 디자인이 첫 순위로 꼽힌다고? 이해가 안 된다면 아마 한국에 너무 적응이 되어 곳곳에 숨겨진 디테일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나보다 내 남편이 정말 선호하는 한국이 좋은 이유 No.1이다. 영상 CF든 길거리에 있는 광고판 디자인이든 기본적으로 깔끔하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는 귀찮아했던 광고에 한국에서는 가끔은 몰입이 될 때가 있다. 게다가 대중교통에서나 정부 건물 근처 광고판에서 보이는 공익 영상, 슬로건, 로고 등을 눈여겨보면… 이게 디자인 회사 홍보가 아니라고?라는 생각이 제주도에서 상당히 자주 들었다.


남편이 감탄하는 또 하나는 부드러운 억양과 적극적인 뉘앙스가 담긴 표현법이다. 이건 내가 우연히 남편에게 번역을 해주다가 발견한 내용인데 중국에서 자주 보이는 “ㅁㅁ금지”, “ㅁㅁ 하지 마십시오” 이런 딱딱하고 명령적인 어투 대신 한국에서는 모든 “명령”이 순화되어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다고 생각된 적이 꽤 많았다. 이렇게 글을 쓸 줄 알았더라면 사진이라도 찍어뒀어야 하는 건데, 다음 한국 여행 때는 이런 디테일도 카메라에 많이 담아야겠다.


센스 있는 말장난으로 지은 가게 이름들도 꽤 보이고, Duolingo로 우리말 독학을 시작한 지 아직 반년도 안 된 남편에게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난 봤고 이해했고 웃었다. 그리고 상당히 이쁜 글자체들, 어디서든 조합이 잘 된 색채들… 일상생활에서 깔끔 떠는 (집 정리정돈은 알아서 다 하는) 남편도, PPT에 목숨을 거는(?) 나도, 제주도와 서울에서 눈이 즐거웠고 전체적으로 기분이 좋았다.



2. 친절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주변 사람들

 

아직 일본에 가본 적이 없지만 주변 지인들 일본 여행 및 생활 경험담을 듣다 보면 일본은 아마 90도 경례와 상당히 정식적인 인사용어 예의범절 등 이유로 여행 내내 감탄을 하게 되지만 오래 있다 보면 점차 지나친 격식 때문에 피곤해지고, 정작 일본 사회에 적응하거나 어울리기 어렵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느낌의 과장된 social 문화를 상당히 불편해하는 나의 상상 속에서도 지나친 친절함은 뭔가 영혼 없는 리액션이자 형식적인 습관이겠지 이렇게 느껴진다.


이와 반대로 중국에서는 눈이 마주치면 인사 대신 아예 피하거나, 우연히 부딪혀도 쓱 지나가버리는 사람들이 꽤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중국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인사를 하는 게 어렵다.


일본은 어디서나 다 지나치게 친절하고 중국은 가끔 낯선 사람들끼리 너무 차갑다 생각이 든다면, 나와 남편에게 있어서 한국은 알맞춤하게 가운데 느낌이다. 친절함은 있지만 지나치지 않아 가식적인 느낌이 없고, 서로 텔레파시가 있듯이 소통이나 대화 내용 조율이 상대적으로 쉽게 되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눈치가 있고 배려가 강하다고나 할까, 서로 어디까지가 편한 선인지 아는, 한국에 있는 내내 그런 편안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짧은 시간에 모든 걸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고, 모든 소통이 완벽했던 건 아니지만 (갑자기 반말을 하시는 택시운전기사님도 있고) MBTI E들 사이에서는 I 같고, I들 사이에서는 E 같은 나와 남편에게 한국은 정신적으로 편한 곳이었다. 언어가 안 통하는 남편마저 인정한 편한 곳 :)



3. 상해와 비슷한 환경 (음식, 물가 등)


작년 10월 제주도와 서울에서 체험한 물가는 전체적으로 상해와 비슷해서 카드 긁을 때 손이 떨리지는 않았다. 특히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제주도의 한식과 카페 가격은 감동 그 자체, "1 주말 1 제주도 여행"을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다. 한국에 다녀온 뒤 뉴질랜드와 베트남 여행도 각 2주일씩 다녀왔는데 물가와 음식은 그래도 한국이 제일 좋았다, 머무르는 기간이 길 수록. 뉴질랜드 여행 중 남편은 얘기했다. 스테이크, 해산물, 빵은 일주일 정도 먹으면 맛있는데 연속 한 달은 못 먹겠다고. 그래도 밥을 간간히 먹어줘야 하는 것 같다고. 베트남 여행 중에는 쌀국수와 밥 다 있긴 하지만 베트남 요리 반찬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유럽에 있을 때 감자와 고기를 주식으로 먹었던 나는 밥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남편이 요리를 도맡은 뒤로부터는 동방 식(?) 밥상이 좋긴 하구나 뒤늦게 느꼈다. 아, 매운 걸 잘 못 먹는 남편이 이상하게도 김치와 김치요리는 엄청 좋아한다. 한국에서는 한식을 가격 걱정 없이 먹을 수 있고, 다른 종류의 음식이나 디저트도 다양한데 심지어 저녁 늦게까지 영업하는 곳도 엄청 많고 물론 배달도 잘 되겠지?


대중교통 비용은 한국이 조금 더 비싸고, 부동산 가격은 서울이나 상해나 다 비슷하지만 전세로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가 되는 것 같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나중에 차차 잘 알아봐야겠다.





정작 이렇게 쓰고 보니 쾅- 하고 와닿는 큰 팩트가 없는 것 같다. 사소한 느낌들을 여러 뭉치로 묶어 놓고 갑자기 미래 타령을 하니 배부른 소리 같기도 하고.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알게 모르게 10여 년 간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면 어디로 갈까?" 이 생각을 멈추지 않았었고, 실제로 아프리카와 북미 남미 빼고는 꽤 많은 곳을 여행하며 미래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 심지어 상해 이외 다른 곳은 완전히 거부할 거라 추측했던, 반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던 남편마저 미래 한국 정착을 함께 계획하려고 한다니.


느낌이 쌓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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