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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룽룽이 Jul 03. 2024

룽룽이는 뉘 집 강아지 이름이냐

실은 제 남편 이름입니다만


몇 년 전 처음 브런치에 가입했을 때 저는 제 “필명”을 작가명으로 사용했었습니다. 작가는 아니지만 어릴 적에, 그리고 갓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름 글을 좀 쓰느라 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동네에서 말이죠.


그러다 점차 우리말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심지어 유럽에 가서도 그 흔하다는 한국인 친구 한 명 조차 못 만들었으니 제 “필명”은 일부 고향 친구들과 어울릴 때 불리거나, 여러 가지 앱에서 딱히 쓸 닉네임이 없을 때 사용했었습니다.


명색이 “필명”인지라 브런치에서도 글을 좀 쓰고 싶어서 3년 전에 작가신청을 했었지만 아쉽게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탈락했습니다. 묵직한 스토리가 아니라 고작 글 한 편으로, 그것도 화제성이 없는 와중에 지속가능한 글쓰기 가능성조차 희박해 보이는 컨셉으로 말이죠. 나름 자존심은 강해서 거의 1년 정도 브런치를 외면했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중국에서 접속이 잘 되지 않는 이슈가 발생하다 보니 올해 연초 전까지만 해도 간혹 비피앤 접속할 때 글 몇 편 읽는 정도로 패턴이 고정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제 첫 글 "2030년에는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겠지?"에서 설명을 했듯이 여러 이유로 다시 브런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장기적인 계획도 고민하면서 다시 작가신청을 했더니 이틀도 안 되는 사이에 합격통지를 받아버렸습니다.




제가 "조금 더 진지하게" 이 부분에 대한 소개를 길게 쓰다 보니 서론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아, 그래서 룽룽이가 뉘 집 강아지 이름이냐고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면 룽룽이는 제 남편 이름 발음에서 따온 단어입니다. 제 남편 이름은 嵘이라 우리말로 직역하면 영, 발음으로 표기하면 /룽/입니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어감으로 고르다 보니 결국 룽룽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바로 결정하고 작가명을 이걸로 바꿨습니다, 작가신청도 작가명을 바꾼 뒤 했는데 지금 보니 혹시 제 작가명이 너무 독특하여 합격이 더 쉬웠나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칩니다.


룽룽이가 남편 이름인 건 알겠는데 왜 하필 남편 이름을 브런치 작가명으로 사용하냐고요?


실은 제가 올해 브런치 작가 재신청을 하기 전에 몇 개월 정도 SNS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기운 빠질 때 핸드폰을 좀 만져줘야 힘이 날 텐데 딱히 눈을 반짝이게 할 만한 SNS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게다가 작년부터 애용하게 된 중국 앱 샤오훙수의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앱도 비슷하겠지만 쩍 하면 날아오는 People you may know 이러루한 알고리즘에 근거한 지인 추천 때문에 익명이 익명이 아니고 콘텐츠가 모조리 지인들한테 스캔이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앱을 사용해야 하는 부담감.


설상가상으로 하필이면 회사에서 여론 쪽으로 아주 예민하여 결국 뭘 올리려고 해도 숨이 막혔습니다. 어느 정도로 숨이 막히냐면, 작년 회사 연회에서 건진 인생샷을 샤오훙수에 올렸다가 사진 배경에 회사 로고가 보여 고민하다 결국 삭제를 했습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한국 회사들도 이런 부분에서 많이 조심해야 되나요?)   




지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나 혼자 낯선 사람들 앞에서 난리법석을 피우려면 어떤 방법이 있나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 알고리즘이 나에게 주는 작용이 미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인 추천 이런 부분에서 말입니다. 중국 앱에서는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중국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거나 위챗과 연동을 하는 순간 내가 바로 알고리즘 시작 버튼을 누른 꼴이 되니깐요.


둘, 나는 알지만 대부분의 지인들이 잘 모르는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앱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면 우리말, 불어, 독일어 이렇게 남는데 그렇다고 내가 불어 독일어로 글을 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방향으로 노력할 생각도 없다 보니 그 두 언어는 그냥 듀오링고에서 소꿉놀이 하듯 사용하는 걸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셋, 나라는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끼를 입는다(穿马甲, 중국 식 다른 persona로 위장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닉네임을 아주 새로운 걸로 지어 남들이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글쓰기 스타일과 내 기본정보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추측이 거의 불가능한 정도로.



이렇게 저는 핸드폰 인증 없이, 지인들이 잘 모르는 곳에 와서, 남편 이름으로 만들어진 “조끼를 입고” 대략 2주에 한 번씩 브런치에서 횡설수설 중입니다.

이름을 빌려줘서 고마워, 남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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