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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과 관련된 트라우마 및 자살, 자해 관련 이야기가 나오니 읽기 전에 유의해주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학창 시절에 대해 말 그대로 푸르른 봄 같았던 청춘이라며 회상하곤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
꼬꼬마 시절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1학년, 갓 입학하던 그 순간.
나는 벅차올랐다.
새로운 곳, 새로운 친구들, 학교라는 공간.
원래도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치원에서의 나는 꽤나 활기찼다.
친구들과도 서먹해하지 않고 금세 어울렸으며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다.
부끄러움을 꾹 참고 연극의 주인공 자리도 하고 싶다며 손을 들었을 정도로.
어른들의 귀여움까지 독차지하며 유치원생으로서 살아가던 나는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학교'라는 공간이 낯설면서도 호기심이 갔다.
앞으로는 '학생'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도 마냥 좋았다.
"안녕?"
한 아이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입학식에서 안내를 해주며 담임 선생님이 나누어주신 파일을 든 채로.
나와는 다른 색이었다. 나는 하늘색, 그 아이는 분홍색.
"어... 안녕."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나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던 그 아이는 내게 다짜고짜 자신과 친구를 하자고 했다. 나도 먼저 다가와준 그 아이가 고마워서 마주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내 최악의 선택이었다.
입학을 하고 며칠이 지나도록 그 아이와 나는 잘 어울렸다.
색종이로 함께 종이접기도 하고, 색칠공부도 하고, 때로는 같이 뛰어놀기도 했다.
그 아이의 옆에는 항상 웬 남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수영을 하던 아이였는데, 둘은 꽤나 친해 보였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내가 그 아이랑 즐겁게 놀았다는 감상을 떠올릴 수 있는 게 얼마 안 되는 걸로 봐서는 금세 돌변했던 것 같다.
그 아이는 천천히 내 목에 목줄을 채웠다. 누가 위에 있는지 나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요즘 말로 하자면 가스라이팅이었던 셈이다.
당시에는 작은 개인용 쓰레받기와 빗자루 세트를 아이들이 들고 다니곤 했는데, 그걸로 각자의 책상과 주변을 청소하는 용도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아이는 나에게 그걸 시켰다.
종이로 별을 접어서 화폐처럼 사용하곤 했던 유행에도 나는 동참해야만 했다.
그 아이는 내게 직접 색종이를 사서 하루 종일 별을 한가득 접게 시켰고, 다 접으면 그걸 가져갔다.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색종이로 접힌 별들은 조금 더 값이 나갔는데, 그걸 위해서 나는 코 묻은 돈으로 색종이를 사러 문방구를 돌아다녔다. 걔는 더욱 값비싼 걸 원했으니까.
또 그 아이는 나를 타고 다녔다.
네 발로 교실의 바닥을 기어 다니는 내 등 뒤에 올라타 나를 말처럼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데리고 다녔다.
한 번은 우리 엄마가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였다.
그 아이는 우리 엄마의 학원에 나를 따라 들어갔고, 당당하게 내 친구라며 코코아를 요구했다.
엄마는 그 아이에게 코코아를 타주었고, 그걸 마시면서 그 아이는 학원의 인테리어, 내 성적 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그 옆에 앉은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이후로 그 아이는 단원평가를 볼 때마다 내가 수학에서 하나라도 틀릴 때면, 수학 선생님 딸이 그것도 못하냐며 100점짜리 자신의 시험지를 들이밀었다.
그걸 볼 때마다 난 초라해져만 갔다.
나는 늘 그 아이와 함께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 그 아이와 계속해서 짝꿍이 되곤 했는데, 그렇다 보니 그 아이는 나를 통제하려 들었다.
내가 그 아이를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바보 같았던 나는 그 아이 말고는 반에 친구라곤 하나도 없었고, 그 아이가 하는 모습들이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게 다가갈 생각조차 못했고, 다른 아이들이 내게 가끔 가다가 말을 걸면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이에게 그 모습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해했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과 있을 때, 그 아이가 그걸 보고 내게 다가와 "너랑 절교할 거야."라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었다. 이에 놀란 내가 애원하며 그러지 말아 달라고 한 적도 수도 없었다.
그건 아이들로 하여금 점점 나에게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내가 있어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점차 아이들은 내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았고, - 물론 도움을 바라지도 않았다. - 되려 나를 무시하고, 항상 화를 내며 말했으며 조별로 해야 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내게 떠넘겼다.
내가 그 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해달라는 걸 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 등 그 아이는 내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날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 아이 말고 내 옆에 친구는커녕 사람조차 없던 나는 그 아이가 '절교'라는 말을 꺼내며 절교할 때 사용한다는 손가락 모양을 만들 때마다 무릎을 꿇고 빌었다.
photograph by Luie
그럼 그 아이만 나를 괴롭혔나,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 아이의 곁에 찰싹 붙어있던 남자아이. 앞서 수영을 하였다던 그 남자아이는 그녀에게 동조했다.
내게 여성 가해자가 그 아이였다면 남성 가해자는 그 남자아이였다.
그 남자아이에게 쩔쩔맸다는 건 아니지만, 그 아이는 날 폭력으로 다스렸다.
종이를 던지거나 펜을 던지는 건 일상이었고, 욕을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무슨 욕을 알겠냐고 하겠지만, 글쎄.
그때도 이미 유튜브나 인터넷, 만화 등에서 종종 욕이 나오곤 했다.
우리가 흔히들 생각하는 심한 욕 말고, '새 X' 정도의 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8살짜리 꼬꼬마들한테는 엄청난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런 욕을 들으면서도 정작 내가 '명탐정 코난'에서 본 '젠장'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따라 했을 때, 그 아이들은 내게 엄청 크게 화를 냈다. 선생님께 내가 욕을 했다며 이르기도 했고, 그전에는 나를 심하게 비난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그들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100점을 맞지 못한 내 수학 시험지를 보고 중얼거린 혼잣말이었다.
하교 후에도 이러한 괴롭힘은 끊이지를 않았다.
태권도장에서마저 그들을 마주쳐야만 했다.
당연히 겨루기 상대는 늘 나였고, 모든 걸 받아줘야만 하는 것도 나였다.
그나마 내 집까지 찾아오거나 카톡 등을 이용해 괴롭히지 않았어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지독한 왕따를 겪어야만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분명 도움을 요청했다.
내 가족, 담임 선생님 등등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 아이가 날 괴롭힌다고, 그 남자아이가 날 때린다고.
하지만 날 도와주는 학교 어른들은 없었다.
그나마 가족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학교에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전화도 걸면서 항의했다.
증거도 명확했고, 유일한 왕따였던 지라 방관자들과 괴롭힘에 동조한 가해자들만 넘쳐났다.
그럼에도 학교 측은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그 아이와 나를 분리시켜 반을 배정해주지 않았다.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부터 말해볼까.
그녀는 자신의 반에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논란거리가 생기는 걸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그럼 2학년 담임 선생님? 기도 안 찼다.
대놓고 학부모 공개 수업일 때, 반장이던 그 아이에게 발표를 시키며 칭찬하기 바빴고, 항상 그 아이 편만 들던 사람이었다. 오히려 나를 문제아 취급했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니 나는 갈피를 잃었다.
분명 학교폭력을 당하면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해놓고.
정작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가족들이 계속해서 항의한 끝에 3학년 때부터 겨우 반이 갈라진 게 전부였다.
그때는 학교폭력 대책위원회 등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고, 선생님들도 당연히 그런 걸 알려주지 않아서 나는 안타깝게도 그 아이를 처벌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죽을 만큼 가기 싫었던 학교를 나갔다.
3학년, 4학년, 그리고 5학년.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익숙해지는 날이 절대 올 리는 없었지만 3년을 내리 고통 속에서 학교를 다녔다.
3학년 때는 같은 유치원을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A라는 친구와 나를 번갈아 괴롭히는 한 명이 내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래도 그때는 A가 있어서 앞선 2년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이어서 4학년.
나는 '은따'라는 것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은따는 '은근히 따돌린다.'는 말의 줄임말인데, 그걸 내가 겪었다.
분명 나도 같이 화장실을 갔고, 나도 같이 밥을 먹고 있으며 나도 같이 책상에 앉아있는데,
나는 그들 속에 없었다.
내가 늘 아이들과 함께 있었지만 난 항상 투명인간이었다.
우리 학교는 고작 2반까지 밖에 없고, 한 반에 20명 남짓 한 게 전부였던 지라 4학년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들은 서로가 누구인지 아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난 그들 머릿속엔 없는 듯했다.
결국 나는 못 참고 학교에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던 wee 클래스라는 곳을 찾아갔다.
학교마다 있는 상담 센터인데, 난 그곳에 계시던 상담 선생님께 냅다 도움을 요청했다.
"저 죽을 것 같아요."
그게 내가 꺼낸 첫마디였다.
그 말을 하며 나는 울었다. 아주 펑펑.
그 후로 매주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그래도 내가 처음 본 제대로 된 어른이었다. 이런 어른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물론 그 기대는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산산조각 났지만.
당시 내 담임 선생님은 유치원생이었나, 아니면 저학년이었나, 그랬던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만 챙기는데 급급해서 상담 선생님이 의무로 해야 한다며 잡아준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건성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내게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내가 더 다가가지 못해서 그렇다고.
그때의 상담 이후로 나는 절대 그녀와 깊게 얽히지 않으려 했다.
그나마 기둥이 되어주셨던 상담 선생님과의 시간 덕분에 어찌어찌 버텨 5학년이 되었다.
겨우 내가 숨통을 트고 살아갈 수 있었던 한 해였다.
A와도 같은 반인 데다가 당시 담임 선생님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친구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독서에만 빠져들었던 내게 독서를 마음껏 하도록, 그리고 견문을 넓히라고 조언을 해주셨던 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줄 알았다.
당연히 어렸던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녀 역시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당시의 나는 내가 만났던 선생님들 중에 가장 학생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존경했다.
그녀가 다음 해에 6학년을 맡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매일 같이 그녀의 반이 되기를 기도했을 정도로.
그리고 6학년이 되던 해, 나는 그녀의 반 학생이 되었다.
또 내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고통이 기다리던 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