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회사에 돌아왔을 때, 동기가 물었다.
"회사에 다시 오니까 좋아?"
"응, 엄청 좋네"
"뭐가 그렇게 좋은데?"
".... A4 용지가 많은거"
물욕(物慾)이 별로 없는 나는 여분으로 무언가를 사는 행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주변은 넉넉하게 쌓여있거나 쟁여놓는 일은 거의 없고, '간당간당'이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차 주유도 간당간당, 핸드폰 배터리도 간당간당. 그런 와중에 심보는 고약하여 내가 사기는 싫지만 무언가 넉넉히 있으면 또 좋다. 그래서 입사하고 나니 이렇게 풍족한 학용품 속에서는 사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A4 용지도 있고, 딱풀도 많고, 가위도 2개 이상 있고, 네임펜도 요청하면 지급해주는 회사가 좋다.
오늘은 아침 당직인 날이다. 우리 지점 관련 상황을 정리하여 부장님께 보고하는 역할인데, 30분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1주일씩 돌아가며 맡는다. 현재 부장님이 아주 좋으시기 때문에 아침 당직도 꽤 할 만하다.
아침 출근길에는 야구 하이라이트 중계를 챙겨보았다. 내가 LG팬으로 야구에 열광하였던 것은 약 23년 전 일이나, 부장님이 골수 KIA 팬으로 야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요새 야구를 챙겨본다. 부장님은 부원들과 회식에서 가족들과 야구경기를 보러가는게 취미라며, KIA에 대한 사랑을 한참 이야기하셨다. 이렇게 명확한 취향을 가진 부장님(+약간 성격이 좋은)을 모시는 것은 매우 편한 일이라는 사실!
부장님께선 부서 변경으로 최근에야 이 부에 합류한 나를 데리고 간단한 면담을 하신 적이 있다. 면담 중간에 야구 이야기가 살짝 나왔는데(왜 나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음!) 그 이후 우린 야구로 대동단결 되었다. 지난 목요일에는 부장님들끼리 식사를 가시다가 날 보고 "나 금요일 LG-KIA전 예약했어!!"라고 활짝 웃으셨다. 그리하여 난 목요일 경기 우천 취소, 금요일 LG 승리, 토요일 KIA 승리, 일요일 LG 승리 하이라이트를 챙겨보고, 현재 KIA가 9위이며, LG는 1위인(두두둥!!) 순위까지 출근길에 파악해두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LG가 간만에 순위가 좋다는 점이다! LG가 그동안 얼마나 고전하였는가 보면... 난 LG 팬임에도 약 3년 전 신한 야구 특별 적금을 가입할 때, 내가 응원하는 팀을 지정하고 그 지정팀이 승리할 때마다 금리에 좋은 영향이 있다는 취지를 읽고 당시 시즌 성적이 좋았고, 우승팀으로 거론되던, LG의 영원한 라이벌인 두산을 지정하는 악독한 일을 한 적이 있다. 금리에 눈이 멀었던 과거를 반성한다.]
예상대로 아침 당직 보고서에 대한 부장님의 회신은 '그래.. 전파해줘, 야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였다. 부장님께 '시즌은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으며 야구는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다소 지분이 큰 일부에 불과하오니 힘내십시오, KIA는 치고 올라올 것입니다'라고 정성껏 재회신을 드렸다.
오늘은 속히 일에 전념해야 한다. 저녁에는 이전에 같이 근무했던 언니, 친구, 동생과 저녁 회식도 잡혀있다.
회사에서 그리운 것은 결국 사람인가보다. 그리고 얼른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