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마다 지점을 옮겨다니며 순환근무를 하는 우리 회사의 특성상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녀볼 기회가 많다.
나의 첫 발령지는 대구였다.
대구! 분지 지형을 가진 대구!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인 바로 대구.
더위의 서막은 5월부터 시작되었다.
지점 건물이 기가 막히게 서향이어서, 오후 2시부터 일몰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등 뒤로 쏟아지는 햇빛을 온 등으로 맞고 있으니 등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렇게 7월로 들어서자 사태는 매일 악화되어갔다. 당시에는 차로 출퇴근을 하였는데, 지하주차장이 없어서 지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대구 한낮의 태양을 고스란히 받던 서울 출신 차는 블랙박스와 네비의 접착면이 모두 녹아내리는 험난한 나날을 보냈다. 신입이라 일이 익숙지 않아 일찍 퇴근할 수도 없었지만 어쩌다 하루 일몰 전에 퇴근할라쳐도 십분넘게 차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탔다. 차가 얼마나 덥겠나 안쓰러웠다. 본네트에 고기도 구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뉴스에서 대구의 더위를 보도하면서 차 본네트 위에 계란을 깨뜨려 익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하나보다.
지점 근무로 연고없는 도시에 가면 간혹 임시거주지를 한동안 제공해줄 때가 있다. 마침 대구지점도 임시거주지가 있다고 해서 신이 났다. 엘레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의 5층이었는데, 꼭대기라 더웠다. 하긴, 꼭대기라 더운건지, 여름이라 더운건지, 옆에 산도 물도 없어서 더운건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건 우리 단지에 이 집만 에어컨이 없었다.
난 그 때부터 회사가 100만 원이라도 돈이 생긴다면 대구 임시거주지에 에어컨을 놓아야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그로부터 4년 후 대구에만 에어컨을 놔주기로 했다고 한다.
점입가경으로 내가 대구에 간 그 해에 온 나라가 에너지 절약을 외쳤다. 공공기관은 2시부터 4시까지 에어컨을 틀지 않기로 했다. 우리 지점도 국가시책에 발맞추어 2시부터 4시까지 중앙제어실에서 에어컨을 중단시켰다. 우린 이러다 호흡곤란이 오지 않을까 염려하며 서로서로 응급처치 방법을 되새기곤 했다.
어느 날, 내 사무실에 한 고객이 낮 3시에 방문하셨다. 우리 회사의 단골같은 분이셨는데, 한 10분쯤 지나자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제가 싫으신거죠?"
"네?"
"제가 싫으셔서 쪄죽어 보라고 에어컨 끄신거죠?"
난 그 날 팀장님께 '고객님들의 항의가 쏟아질지 모르니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점장님은 굳이 굳이 '선선한 아침에 오시라고 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하셨으나 선선한 아침 대신 '일출과 동시에 뜨거운 아침'이 이어지는 바람에 에어컨 바람이 다시 일터로 불어오기 시작했다.
대구의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난 더위에 무척 강하다.
성남지점에서는 꼭대기인 4층 판넬 가건물에 살고 있어서 옆방들은 다들 덥다고 난리지만 난 약간 따뜻해서 좋다.
며칠전, 온열질환을 주의하라는 재난 문자를 받고 팀원들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새로운걸 알았다. 열사병은 '엄청 뜨겁다'고 느끼다가 오는 것이 아니라 '약간 덥네, 괜찮네-'하다가 체온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즈음 내가 느끼던 더위가 딱 그 정도였는데, '약간 덥네'하면서 아침에 자전거+런닝+지하철로 출근하고, '약간 덥네'하면서 제일 뜨거울때 밥먹으러 가고, 제일 뜨거운 날 성경학교가서 '좀 덥네'하면서 햇빛 밑에서 물놀이 하고, 물놀이 하다가 신나서 뛰어다니는 애들 잡으러 다녔더니, 딱 이번 주 들어서면서 데친 시금치마냥 흐느적대는게 더위를 우걱우걱 씹어먹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