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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 on Feb 06. 2023

이혼가정 자녀의 사주에 이혼수가 있냐고 물었다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열두 번째 이야기


사주팔자. 어떤 이는 미신이라 치부하고 어떤 이는 맹신하는 그것. 처음엔 신기했다. 내가 태어난 연월일시에 각각 두 자, 총 여덟 자의 한자가 부여되고 그것을 통해 나의 기질이나 미래가 어느 정도 점쳐진다는 것이.


나쁘게 나오면 미신이라 치부하면 그만이고 좋게 나오면 몇 만 원 돈 내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셈 치기로 했다. 호기롭게 미신으로 치부하겠다고 했으나 막상 갈 때마다 제발 내 인생이 지금 잠깐 힘든 것이라고, 앞으로는 잘 풀릴 일만 남았으니 편안히 있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마스크 착용은 오히려 객관적인 사주풀이를 듣기 위해선 잘 된 일이었다. 이렇게 간절히 ‘희망적인 말’을 원하는 표정을 숨길 수 있으니까.



제법 용하다는 곳을 찾아 몇 달 후에야 가능하다고 하는 상담을 예약했다. 세 번째로 보는 사주풀이였던 그날 상담을 갔을 땐 얼추 이전에 봤던 풀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겨울에 태어난 불의 기운으로 주변을 따뜻하게 해 주지만 종종 그것이 내 능력치 이상의 것이라 나에게 지워지는 책임에 내가 힘겨워할 거라고. 아무것도 못 하고 힘든 인생보다야 주변이라도 도우며 힘겨운 게 나을 테니 이건 귀에 담아 듣기로 한다.


또 예민하고 주변 의식을 많이 해 남들이 보기엔 묵묵하고 조용히 할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이나 속에선 혼자만의 카오스가 많다 했다. 봄, 여름에 태어난 불은 주변 신경을 하나도 안 쓰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는데 참 아쉬웠다. 조금만 늦게 태어났으면 칼춤 추는 망나니처럼 살다 갈 수 있었을 것을.   



얼추 80%는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을 30분 정도 늘어놓으신 사주 선생님께서는 “더 궁금한 것 있어요?”라고 물었다. 음. 누구나 궁금할 법한 평범한 질문 한 두 개를 여쭤본 뒤, 내가 진심으로 알고 싶었던 그 질문을 조심스레 꺼내 본다.     



“선생님, 제 사주에 혹시 이혼수가 있나요?”



평범한 질문은 아닐 테지만 순간 용기를 냈다. 나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앞으로의 결혼궁합을 봐달라는 맥락도 아니었지만 꼭 묻고 싶었다. 내겐 일생일대의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혼수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뭐 어쩌려고 말을 꺼냈나 후회하려던 그때, 선생님이 바로 대답했다.

     

“아뇨. 전혀 그럴 일 없습니다. 상대가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와, 이렇게 명쾌하다고? 일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 부모님이 이혼했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다는, 마치 역병 보균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몇몇 날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구나. 지난날동안 집안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느니 이혼 가정의 자녀는 만나는 게 아니라느니 하는,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만 명확한 그 숱한 편견들에 분노하고 두려워했었다.



[이혼가정에서 자란 ○○○, 사주팔자에 이혼수 전혀 없어... 전통 통계학에 기반]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싣고 싶은 마음이었다. 근거 없는 미신을 맹신하는 거면 어떠랴, 어쩌면 내가 분노하고 두려워했던 편견들도 소수 사례에 기반해 퍼뜨려진 미신인 것을.


전전긍긍해 왔던 누군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미신이라면 기꺼이 믿어보기로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지는 탄생의 순간에 따라 엄마아빠는 그들의 팔자로 살았던 거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단한 팔자로 살아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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