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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뒤의 산책은 살면서 겪은 좋은 것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한다.
종일 뭉그적거리다 오후 늦게 강가로 나왔다.
촉촉하고 포근한 날씨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만들어낸 온갖 부산스러움부터 먼지 한 톨까지 정성스레 다독여 잠시나마 다툼을 그치게 한다.
이런 날엔 나도 자연의 일부로 삶에 대해 느끼는 무연한 심정들을 추슬러 그 모든 소란에 관대해진다.
바쁜 일상에서 미적거린다는 자책도 알지 못하는 아득한 미래도 남일 인양 무상한 채로 코에 닿는 숨이 온전히 내 것이라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여긴다.
그 순간 빗물에 위로받은 민들레 하나도 나 몰래 얼굴을 쏘옥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