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바다에서 돌을 주운 기억이 있다.
봄날의 따스한 바다가 일으킨 마음의 동요 탓이었을까
파도에 눈을 붙이고 마음을 팔던 여느 날과 달리 지나치는 돌들에 시선이 쓰였다.
지나친 돌, 딛고 선 돌, 까마득히 있는 돌, 파도에 휩쓸리는 돌.
얼핏 비슷해 보여도 누워있는 각도나 질감, 성격과 이름도 제각각일 돌들 속에서 내 마음에 와닿은 건 이상하리만치 무수한 방향으로 깎여있는 돌이었다.
파도가 저 돌에만 들이친 것이 아니라면, 바람이 저 돌에만 야멸치게 분 것이 아니라면 저 돌은 자연스러운 풍화에 한술 더 떠 여러 방향으로 모나게 굴며 스스로를 깎아왔음이 티가 났다.
운명처럼 그 돌이 내 눈에 들어 소중히 안고 오랜 시간을 품어왔다.
무의식적여 보일 형태로의 깎임과 모남, 튄다는 것은 좋고 나쁨 양면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 그 돌은 늘 제멋대로의 방향을 향하면서도 태양이 저를 비출 때면 사방으로 빛을 죄 반사해 버림으로써 그것을 바라볼 때면 황홀한 금빛 불이 붙은 듯 빛이 나곤 했다. 의도치 않은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얘기다.
간혹 따갑게 나를 찌르는 날에는 아프면서도 외려 그 고통이 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알게 해 무뎌지는 일 없이 한결같이 돌볼 수 있게 하는 각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매일을 사랑으로 매만져 돌은 어느새 반짝이는 보석이 되었고 세상 어느 방향으로도 공평히 향한 채 동그랗게 스스로 빛을 내게 되었다.
다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때문인지 돌은 보석이 되었으나 돌과 나의 관계는 그 어디쯤에선가 끝나고 말았다.
쏟았던 것들을 돌에 봉인하고선 공들인 모든 시간을 바다에 내려놓기로 했다.
처음 본 날 있었던 것 같은 자리에 빛나던 것을 내려놓고 반대편 끝을 향해 한참을 걸어갔다 돌아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엔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그것은 원래의 돌로 돌아가 양 옆의 것들과 아무런 분별없이 뒤섞여있었다.
사랑이 죽어 도달한 무덤엔 굳은 심장만 돌처럼 쌓인 채
바다는 오늘도 무심히, 고요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