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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Aug 03. 2022

나잇값 좀 하고 삽시다

 

  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덕목을 가장 편리하고 성급하게 표현한다면 '나잇값 하기'라고 말할 것이다. 사전에 따르면, 나잇값은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데, 한마디로 그 나이에 맞게 사고하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곧 그 나이에 걸맞게 성숙할 것이라는 정언 명령인 셈이다.  


   나는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 참 싫다. 일례로, 대학생 때 방학을 맞아 여수에 사는 친구네를 놀러간 적이 있다. 함께 간 친구들과 레일 바이크를 타며 젊음을 만끽하는 도중에 우리보다 앞서서 가던 레일 바이크와 접촉 사고가 일어날 뻔 했다. 레일 바이크는 출발 시간을 지정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속도를 내거나 부진하게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면 앞 차 혹은 뒷 차와 마주치는 일이 없게끔 운영되는 나름 과학적인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촉 사고가 수차례나 일어날 뻔 했던 것은 우리의 튼튼한 허벅지 덕분이 아니라, 앞 차에 탄 어른들의 셀카 촬영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분들은 전진한지 채 100미터도 되지 않아 레일 바이크에서 내려 셀카봉을 여기저기 휘두르며 가장 젊은 자신들의 날을 기록하기 바빴다. 사진이야 찍을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우리가 한참을 기다렸다가 뒷 차가 오는 것을 목격하고 천천히 발을 떼어도 곧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나잇값 좀 하시라구요, 사진 좀 적당히 찍으시고 뒷 사람도 배려해주세요! 라고 빼액- 소리지를 뻔한 걸 친구가 뜯어 말렸던가, 친구가 대신 말했던가.  


   그 이후로, 나는 나잇값의 중요성을 체득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잇값을 다하지 못하면 정말 우스워진다는 것을 느꼈기에 내 자신이 나이를 먹는 것도 썩 반갑지 않았다. 더이상 어리다고 할 수 없는 나이-물론 숫자는 상대적인 것이지만 나의 경우, 직장에 다니며 사회인으로서 제 몫을 해내는 시기인 이십대 후반부터는 뭔가 진짜 어른이라고 느꼈다-가 되었을 때 주사를 부리기 쪽팔려서 술을 끊었고, 체력이라도 유지하고 싶어 킥복싱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어릴 때보다 연애 상대를 바라보는 이해와 관용의 폭을 넓히고자 무딘 애를 썼다, 아니 쓰고 있다. 30살이 되자, 지금까지 문제 없이 입고 다녔던 옷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으며 내 스타일의 옷을 발견해도 내가 입어도 될까, 황송한 생각에 옷걸이를 내려놓을 때도 많다. 나잇값의 힘이란! 나잇값의 위대함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나로서는, 고3 담임으로 학생을 혼낼 때마다 "너 몇 살이야? 곧 스무살 아니야?"를 단골 레파토리로 사골 우리듯 우려 먹고 그때마다 효과가 아주 좋다.-웃긴 게 유치원 선생님인 내 친구는 일곱 살 아가들에게 "지금 여섯살이야?"를 단골 레파토리로 애용한다고 한다.- 솔직히 어느 정도 나잇값을 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 정도면 삼십살의 성인으로서 쪽팔리지 않게 사는 삶이라고 진심으로 자위했다. 불과 며칠전까지는.


   업무 상 스트레스가 최대치를 찍으면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하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나날이었다. 3년간 예뻐하며 곱게 키워온 아이 하나가 오해로 인해 되바라지게 행동을 했을 뿐이었는데, 서러워서 말이 안나왔다. 말 대신 아이를 앞에 두고 대성통곡을 했다. "너한테는 미인정 조퇴가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물음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끅끅거리는 소리로 성대가 요동쳤다. 너무 서럽고 화가 나서 그게 다 눈물로 나왔다. 교사의 위엄이고 뭐고, 아이 앞에서 말 그대로 겁나게 울어제꼈다. 아이가 당황할 정도로 울었고, 결국 아이는 '담임 교사를 울린 한남'으로 소문나 아이들 사이에서 욕을 꽤나 먹었다고 한다. 여전히 흘릴 눈물이 남아 있었던지 퇴근 후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하다가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상대에게 얼굴을 정확하게 가격당했다.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거기에 있다간 학교에서처럼 대성통곡이 이어질 것만 같은 비상 상황이었다. 체면이고 예의고 뭐고, 관원들 앞-사실 나는 그곳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으로 소문났다.-에서 대성통곡을 할 수가 없어 깜짝 놀란 관장님을 뒤로 하고 수업 중간에 체육관을 빠져 나왔다. 당황했을 관장님께 죄송했지만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그냥 나와 버렸다. 빠져 나와서 혼자서 실컷 울면서 집으로 갔다. 나는 30살인데,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울고 싶을까, 스스로가 부끄럽고 참 속상했다. 30살 먹고서 이렇게밖에 행동을 할 수가 없나, 나잇값을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실망했고 또 괴로웠다. 나이가 많은 것도 서러운데 나잇값까지 하라니, 내가 먹고 싶어서 먹은 것도 아닌데, 라는 못난 생각 마저 들었다.  


   결론적으로 아이와도 잘 풀었고, 관장님께도 전후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진심으로 사과드렸다.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이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으로서 내가 잘못한 지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지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되었다. 다만 일련의 경험을 통해 나잇값에 대해 조금은 숨통을 틔워주기로 했다. 어른도 슬프고 힘들 때가 있지 않은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경험하는 사건과 감정이 축소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더 이 악물고 견딜 뿐일텐데. 그래서 생각하기로, 나잇값이란 어떤 결과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과정 값에 가까운 개념 같다. 성숙이 어떻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뿐이겠는가, 결국에는 성숙해지기 위한 일사분란한 과정-이를테면 수없이 이불킥을 하고 머리를 싸매는 내면의 그 모든 불안과 갈 곳 잃은 감정들과 셀 수 없는 다짐들까지-도 내포하는 개념일테지! 그냥 더욱 성숙해지기 위해 하루 하루 값지게 살아가겠다는 다짐만으로도 조금은 멋진, 나잇값 하는 성인이 되는 게 아닐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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