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말함 Jul 12. 2022

작은 실수담이 주는 효용

"나의 작은 바람은 사람들이 내 실수담을 읽으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라는 위로를 받는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라는 아량을 넘어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라는 통찰에 이르기라도 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편성준,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작은 실수담이 주는 효용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너의 인생은 참 시트콤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나로서는 실수담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럽기 때문에(?) 작은 실수담들을 몇 자 적어본다.


   나는 대학생 때 국문과 학생이자 미디어학부생이었다. 국문과 수업과 달리 미디어학부의 수업은 대부분 팀플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어서 매 수업마다 다양한 전공의 학부생들과 공동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팀플은 빅데이터와 관련된 수업에서였다. 우리는 헌혈에 관한 빅데이터 분석물을 가공하여 헌혈 참여율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했는데 이를 위해 다같이 수차례 헌혈을 하러 갈 정도였으니 꽤 돈독하고 건실한 모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은 짧게 만나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는데 어떤 분께서 굉장히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셨다. 어떤 아이디어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굉장히 센스가 넘쳤던 네이밍이었다. 그래서 너무 멋지다고 칭찬을 해드리고 싶은 상냥한 마음에 말해버렸다. "OO씨 정말 섹스 있으시네요."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고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그 전날 영화 <연애의 목적>-성과 관련된 적나라한 표현이 난무하는 영화다.-을 너무 인상 깊게 본 나머지 말이 잘못 나왔다고 벌개진 얼굴로 해명을 했더란다.  


  작년에는 점심을 먹으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에 함께 고등학교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동료 선생님께 말실수를 시전하여 인성 논란을 부추긴 사건이 있었다. 한 선생님이 학급 학생이 워낙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지도 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수업 일수가 부족하여 졸업이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인데 출석 불성실하여 담임으로서는 너무나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상황에서 출석과 관련하여 학생이 저지른 잘못을 우리에게 이르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너무나 흥분해 버린 내가 선생님을 정말이지 위로하고 싶은 나머지 큰 목소리로 말해버렸다. "그건 쌤 잘못이야!!!"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졌고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그건 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못 나왔다고 요란한 웃음 소리들 사이로 간신히 해명을 했더랜다.


   작은 실수들은 그 순간 함께 웃을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준다.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실수로 인해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웃음은 무해하고 맑다. 그리고 작은 실수들은 본의 아니게(?) 이미지를 개선해준다. 얼마 전 나는 꽤 직설적인 어르신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상한 칭찬을 들은 바 있다. "자기는 처음에는 되게 예의 없어 보였는데(90년대생이나 MZ세대에 대한 편견을 말씀하신 거라고 믿기로 했다.) 지내다보니 되게 협조적이고 재미 있어." 나는 간혹 차가워보인다거나 까칠해보이는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뭔가 사소한 실수를 하게 되면 차가움이 녹고 조금 더 다가가기 쉬운 느낌이랄까, 인간적인 느낌이랄까, 그런 따뜻함을 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주면에 더 실수담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들 조금씩 실수하면서 한번씩 더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 실수한 사람에게서 의외의 매력을 발견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저지를 수도 있는 실수이기에 서로를 조금 더 넉넉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담배 피우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