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말함 Jul 19. 2022

사람은 2D보다 3D지

  소위 카페인이라고 하는(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SNS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해보이고 그야말로 '잘' 사는 것 처럼 보인다. 예컨대 앉아도 똥배가 나오지 않으며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고, 1년에 1번 이상 해외 여행을 다니며(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이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값비싼 가방을 들고 오미카세를 먹으러 다니는. 그야말로 완벽히 세팅되어 누가 봐도 부러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그런 삶. 누군가는 SNS에 보란듯이 전시된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씁쓸한 마음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을 터이다.


  의도가 다분한, 철저히 계산된 전시물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너무 많이 또 빨리 노출되는 이 사회에서 인간은 불행해지기 쉽다. 앞서 이야기했듯 비교로 인한 상대적인 박탈감의 정서가 자족을 불가능한 과제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와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하드를 입에 하나 물고 핸드폰을 들었다. 다음 날 출근할 일이 없는, 그래서 그야말로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 편안한 상태이다가도 홀린 듯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호캉스를 떠난 누군가가 수영복을 입고 군살 하나 없는 몸매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올린 게시글을 보는 순간 나의 평화는 깨지고 때로는 배마저 아프다.  


  사실 SNS가 자꾸만 다수와의 비교를 부추겨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든다면 SNS를 안하면 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SNS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근황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편리하고 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이 지점에 SNS가 초래하는 진짜 불행이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불행은 SNS를 통해서는 존재를 정확히 이해하기가, 그리고 존재로서 정확히 이해받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장 좋은 면만을 보여줄 수 있도록 여기 저기 편집되고 난도질당한, 문자 그대로 '인간 전시물' 속에서 사람들은 자주 상상력을 잃는다. SNS 게시글은 일종의 진공 상태와 같아서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자꾸 까먹는다. 그래서 인간의 입체성을 간과한다.  

 

  얼마 전에 친구가 해 준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어 사실을 간단히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A.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큰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때리다가 상해를 입혔다.  

B. 담임 선생님은 학생이 피해를 입힌 분을 직접 찾아가 무릎을 꿇고 학생의 미래를 위해 선처를 해달라고 빌었다.  

 

  물론 A와 B 사이에 시간적인 선후 관계랄지, 어떤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으나(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다) 적어도 A와 B가 동일한 인물에 대한 진술이라면 과연 이 선생님을 나쁘다고만, 혹은 좋다고만 말할 수가 있을까? 학생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혹시라도 큰 일을 당할까봐 피해자를 찾아가 어찌 보면 뻔뻔하게도 선처를 빌 만큼 학생을 생각하지만, 학생에게 상해를 입힐 만큼의 폭력을 일종의 훈육이라고 믿고 이를 저지르고야 마는 선생님은 과연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개인은 다양한 층위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여러 가지 경험과 만남을 거쳐 때로는 상충되는 가치 속에서 혼란을 겪는다. 만화 속에서 작은 천사와 작은 악마가 인물의 귀에 대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불어 넣듯이, 개인의 마음 속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서 자주 길을 잃고 헷갈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현상일 수밖에 없다. 하여 한 인간에게서 평생에 걸쳐 일관성을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며 복잡다단한 입체성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현실적인 면모가 될 것이다.    

 

  편집된 장면들은 그 너머의 장면들을 감춰 버린다. 여기 저기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그야말로 장면의 파노라마 속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장면들을 응시하느라 지쳐버린 나머지 그 너머의 것을 알아볼 의향도, 의지도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장면 속의 사람들은 자꾸만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다가온다. 누구는 매일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면서도 살이 안 찌는구나, 혹은 누구는 돈이 많아 여기 저기 놀러 다니고 걱정이 없겠다...   


  누구나 정확히 이해 받고 사랑 받고 싶을 것이다. SNS 속 행복해 보이는 게시글을 보고 그 사람이 잘 지내고 있나 보다 쉽게 안도하지 말고 한번 쯤은 연락을 보내 커피 한 잔이라도 같이 마시는 시간을 가진다면 어떨까. 몰랐던 그 사람의 커피 취향을 알고 행복해 보이는 일상 너머에 어떤 어려움을 지나쳐야만 했는지 알 수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알게 된 만큼 그 사람도 나도 알아줄 텐데.

작가의 이전글 작은 실수담이 주는 효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