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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sancheckza Nov 13. 2022

스트릿 포토그래피에 관하여

'타츠오 스즈키' 논란에 관한 나의 생각

최근에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1MOlDbmsTM


'김경만 감독의 사진학개론' 채널에 업로드된 타츠오 스즈키에 관한 이 영상이었다.


타츠오 스즈키는 스트릿 포토그래퍼다. 후지필름은 전 세계의 후지 유저를 대상으로 X-Photographer라는 이름의 앰배서더를 발탁해 지원하고 있다. 타츠오 스즈키는 그 X-Photographer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문제가 된 것은 영상이었다. 후지필름은 X-Photographer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공개했는데, 타츠오 스즈키가 작업하는 방식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타츠오 스즈키는 마음에 드는 장면을 발견하면 누구든 스스럼없이 렌즈를 들이밀고 셔터를 누른다. 이 작업은 그야말로 아주 찰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인기척도 거의 느껴지지 않게 말이다. (이 부분이 그의 남다른 능력이자 논란의 관건이다.) 찍히는 대상과 타츠오 스즈키는 그렇게 스치듯 만나고 여느 행인처럼 곧바로 헤어진다. 사진은 영원히 남겠지만 말이다.


스트릿 포토그래피Street Photography는 사진 예술의 한 장르다. 매일 매 순간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유일무이한 현상학적 순간들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작업이다. 타츠오 스즈키의 사진은 그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탁월한 사진이라 볼 수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고, 생경함과 신비로움도 동시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내가 매일 걷는 교토 거리에서 매일 뻔하게 보던 사람들을 이렇게 담아낼 수 있다니! 사진 죽인다!"


하지만 그의 작업방식이 세상에 공개되자 사람들의 감탄은 개탄으로 바뀐다. "너무 무례하다!" 이후 후지필름은 타츠오 스즈키 영상을 삭제했다.


'예술가의 윤리' 혹은 '예술 작업의 윤리'라는 화두는 비단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이 문제가 다루기 까다로운 문제라는 것에 동감한다. 사람들은 오늘도 매그넘, 라이프,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전에 가서 인간의 본질과 세계의 진실을 담은 사진들을 보며 경탄한다. 하지만 엄밀한 눈으로 본다면 그 사진들이 모두 사진의 윤리성을 엄격하게 내재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개중에는 타츠오 스즈키 식으로 작업한 사진도 있을 것이고,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은 연출해 구성한 사진이 있을지도 모르며, 심지어 렌즈 앞에서는 웃고 있을지 몰라도 내심 찍힌 대상이 불쾌했던 사진도 있을지 모른다.


Namdaemun Market | 2022, 11. 09. | Taehwan Kim


이 사진은 어떤가? 어제 남대문시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한 분이 계셨고, 나는 이 분을 찍고 싶었다. 이런 '스트릿 포토그래피적 순간'에 내가 마련한 작은 윤리는 다음과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결코 충분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1) 뷰파인더 촬영을 한다.


요즘 카메라는 LCD를 보고 촬영할 수도 있다. 타츠오 스즈키의 경우 뷰파인더나 LCD조차 보지 않고 허공에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는 식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찍히는 대상을 그야말로 '대상화', '수단화' 하고 있다고 느끼기에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적어도 "제가 당신을 찍고 있습니다."라는 인지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위 사진을 보면 여성분께서 나를 인지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찍히는 대상이 렌즈를 바라보는 것이 좋은 인물사진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상황이나 취향에 따라 갈릴 것이다.)


2) 최소한의 관계성을 확보한다.


위 사진을 찍은 후에 나는 이 여성분에게 (엄지척) 따봉을 날려드렸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건 이 분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이자, 또 사진을 찍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예를 최소한으로나마 표한 것이다. 그러자 이 분께서도 고개를 몇 차례 끄덕이시며 나를 향해 활짝 웃어주셨다. 나는 이 순간을 '최소한의 관계성이 확보된 순간'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최소한의 관계성이 입증된 후라야 조금은 마음을 놓고 사진을 공개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사진은 좋은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다. 세상의 모든 가르침의 밑바탕에는 '관계'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비주얼적으로 탁월하다 하더라도, 대상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다면 그건 속 빈 강정 같은 것이다. 전쟁의 참상을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있다고 해보자. 길거리에서 집도 부모도 잃고 외롭게 절규하고 있는 한 아이를 만났을 때, 그를 찍고 세상에 알리는 것은 사진가로서의 몫이지만 촬영 후 그저 지나치지 않고 포옹 한 번이라도 해준다거나, 격려의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다면,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물어봐 준다면 그건 인간으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의 태도를 '충분하지 않다'라고 표현하거나, '최소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다.


생각해 보면, 완벽한 시나리오는 이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길거리 사진을 찍는 아무개입니다. 오늘 너무 멋지셔서 그런데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그리고 찍은 사진은 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나, 라이카클럽에 게시될 수도 있고요. 제가 혹시나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된다면 사진전에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예견되지 않는 수익활동에 언젠가 쓰일지도 몰라요. 괜찮으실까요?" > "응 그려~맘대루 혀." > 그럼 이 문서에 이름 서명 부탁드립니다. 초상권 동의서입니다. 그리고 이건 오늘 촬영하게 해 주신 것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입니다. 차비라도 하세요! : 3만 원 현금 지급.


법조인이라면 저렇게 하라고 조언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법은 초상권을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작은 윤리' 라거나 '최소한의 관계성'이라고 축소해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전 국민이 내 포트폴리오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수많은 법적 송사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논쟁이 가속화된 건 아무래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 때문이다. '잊혀질 권리'가 시사하는 바처럼, 디지털 문명에서는 숨을 곳이 없다. 그러다 보니 스트릿 포토그래피고 자시고, 누가 내 사진을 찍어서 어디에 어떻게 함부로 사용할지 예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언제 찍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내 사진이 인플루언서 사진가의 피드에 올라가 있고, 급기야는 현대미술관에서 대형 프린트되어 전시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영광이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예시가 비약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과한 표현이라 말할 수도 없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찍히는 것에 대해 별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악의적으로 부정한 용도로 사용하거나 큰 수익활동에 쓰지 않는 한 사진가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진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건 문화권마다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찍히는 걸 오히려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거리 사진가들이 우리 문화와 예술에 기여하는 바도 같이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예술 애호가도 있을 수 있다.


'법'과 '법감정'이 있듯, '원칙'과 '현실'이 있듯, 수많은 포토그래퍼들은 그 중간 지대 어딘가에서 저마다의 생존 방식으로 오늘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스트릿 포토그래퍼들의 예술적 자유, 그리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가 상충하지 않는 세상은 가능할까?


보통 유보적으로 글을 끝맺음하지는 않는데, 이 주제는 워낙 다루기가 까다로워 이 질문을 끝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겠다.


아,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한마디는 꼭 남겨야겠다. 짧은 옷 입은 여성들만 따라다니며 상습적으로, 선정적으로 '도촬'하면서 '표현의 자유'나 '예술가의 권리' 운운하지는 맙시다. 당신의 존재를 은닉하라고 '컴팩트' 카메라를 만든 게 아닙니다. 대신 거리의 비닐봉지만을 따라다니며 찍어보세요. 흰봉지, 까만봉지, 분홍색 봉지... 그럼 사람들은 마침내 당신을 예술가라 불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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