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민취업지원제도가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오가고 있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무원을 시작으로 하여 많은 직업상담사들의 고통이 느껴지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의 목적과 목표는 좋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사실은 이 제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국민취업지원제도 담당 직업상담사들은 엄청난 배정 인원과 불확실한 사업 매뉴얼, 불안정한 전산, 사업에 맞지 않는 신청자들, 담당자 마다 다른 이야기들 (그 외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직업상담사가 아니라면 모를 것입니다. 제가 현직에 일할 때만 해도 이게 과연 직업상담사가 하는 업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저는 그 덕분에(?) 직업상담사로서 그리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커리어와 역량을 쌓을 수 있었어요.
취업성공패키지(이하 취성패) 업무해 본 사람이면 일 잘한다
이 말을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취성패는 "직업상담사의 꽃" (과연)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직업상담사 커리어의 시작이 되는 사업이었습니다. 2010년도부터 시작된 취업성공패키지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 취업지원 사업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 합니다. 이 영향력 있는 사업은 직업상담사들의 엄청난 노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취성패 민간위탁 기관은 직업상담사를 채용해야 했고 직업상담사 2급 자격증 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면 업무가 가능했습니다. 제가 입사했던 2018년 기준에는 6개월 이상의 취업지원 경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6개월 경력으로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입인 저 역시, 상담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입직했습니다. 기관마다 다르지만 신입 직업상담사들은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상담을 진행합니다. 매뉴얼 몇 번 보고 상담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일주일 정도 매뉴얼을 정독하고 경력 상담사 선생님들의 상담을 주워듣고 본부장님의 가르침 하에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근데 과연 이것이 민간위탁 기관이 모든 교육을 다 해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의문입니다. 이번 고용노동부 직원의 자살과 관련된 기사에서 가장 슬펐던 것은 "업무와 관련하여 물어보고 싶어도 직원들이 다들 바빠서 물어볼 수 없어 힘들다"였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사업은 복잡하고 내담자들의 유형은 다양한데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본인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그분의 기분이 저는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26살, 나는 그렇게 말도 안되게 지사장이 되었습니다.
10개월의 직업훈련 기관을 거처 6개월의 취업성공패키지 업무를 하다가 지사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불행의 시작이었죠. 간다고 해놓고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과연 내가 이 신입 나부랭이가 지사를 잘 이끌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못 이끌었습니다. 기존 직원들은 반발이 심했고 텃세도 심했습니다. 어린 지사장이 와서 무엇을 하겠냐는 식이였고 저를 까는? 것도 보면서 그냥 참고 일했습니다. 그 분들의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경력도 얼마 없는 어린애가 와서 나대고 있으니 저도 싫고 본사도 싫었겠죠..한 명 두 명 그렇게 다 그만둔다고 하니 내가 문제인가 싶었습니다. 그럼 내가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즘, 저희 본부장님이 한 마디 하셨어요. " 지현아, 그 사람들이 너를 받아줄 그릇이 작은 거지 네 잘못이 아니다"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결심했죠. " 내가 큰 그릇이 되리라!"
새로운 직원들을 꾸리며 잘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도 많았어요. (유일하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직원들이었습니다. 지사/본사 직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지역에서 유일한 취성패 민간위탁 기관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원의 배정을 받아야 했고 지사 관리와 상담을 함께해야 하는 지사장인 제가 100명 넘은 인원을 배정받고 휴가를 갔다 오면 제 자리에 배정지가 5개씩 올라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벅찬 상황이니 제가 배정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상담이고 관리고 행정이고 영업이고 다 뛰어다녔습니다. 하루에 상담을 11개씩 하는 날이면 토가 나올 것 같았어요. 추석에도 일하고 주말에도 나오고 본사에서 준 업무용 차량을 아주 잘 이용했지요.
그러면서 고용센터 주무관님과의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했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린 지사장이 와서 지사 망쳐놨다"라는 소리 안 들으려고 이 악물고 일했습니다. 혼자 덩그러니 야근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26살, 나는 전생이 무슨 죄를 이렇게 많이 지었길래 가는 곳마다 일이 많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생에 나는 베짱이였음에 틀림없어...
배정을 받고 상담을 하면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저에게 에너지를 주시는 분들, 영감을 받는 분들처럼 좋은 분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민원이 들어오고 누가 봐도 취업 생각은 없는데 수당은 줘야 하는 상황, 취업을 할 생각이 없는데 무조건 상담은 해야 하고, 상담을 신청해놓고 연락 두절되면 저희가 전전긍긍해야 합니다. 중단이라는 것 자체가 민간위탁의 평가가 되고 직업상담사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가 됩니다. '중단'은 민간위탁 기관 평가에 큰 타격이기 때문이에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저는 심지어 연락 두절된 내담자 집 앞까지 찾아가 소리 질렀어요
저는 지사장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도 보여줘야 했습니다. 나는 중단을 막기 위해 뭐든 하는 사람이니, 선생님들이 조금이라도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사장이라는 타이틀이 이렇게 저를 조여올지는 몰랐습니다. 관리자니까 편하게 관리하고 상담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고난과 역경이 올 줄 알았다면... (할많하않) 저는 그래도 버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면 이 경력은 나에게 정말 엄청난 가치를 줄 거라고 생각했고 이직이든 뭐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직업상담사는 일을 잘하든 못하든 경력이 많든 적든 역량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 취업률" 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 그대로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매뉴얼 만들고/ 직원들끼리 으쌰 으쌰 하고/ 실수 안 하고/ 민원 없이 일해도 취업률 안 나오면 저는 못하는 지사장입니다. 중장년층이 38%였고, 참여자의 90%가 직업훈련을 모조리 가버렸습니다. 고용보험 가입이 되지 않으면 취업 처리도 안 되고 상담도 안 되고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취업할 생각이 없는 분들을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취성패 기관은 매년 11월 15일 기준으로 평가가 진행됩니다. (정말 이 부분에서 제가 직업상담사가 될 운명이라는 것이 저 날이 제 생일입니다) 그 일자에 맞춰서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고용보험 가입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제가 그때 평가 기준을 (취업률 54%) 맞추기 위해 2주 동안 4%를 올렸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당시 12명 이였고 모두에게 연락하였습니다. 내담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업에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취업률 평가로 인해 고용보험 가입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다행히 내담자와 기업 담당자분들이 빠르게 처리해 주셨고 고용보험 미가입자가 처리되어 4%를 올렸습니다.
고보를 참 잘 띄었죠. 본사의 실장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루에 2명씩 막 고보를 올리니 어린애 지사 보내놓고 기특하셨을 거예요. 마음도 불편하셨을 거고, 걱정 반 기대 반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해야 했고 이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게 과연 직업상담사의 역량이야?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취업률이 중요한 사업의 직원이고 그것이 직업상담사의 숙명입니다. 아무리 상담을 잘 하고 내담자와 라포가 잘 형성돼도 취업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이제 문제는 사업입니다. 취업을 해야만 하는 하고 싶은 사람들만 모집해도 모자란데 취업보다 수당, 상담보다 수당, 그냥 수당 목적으로 참여하시고 상담에도 적극적이지 않으신 분들은 저희의 역량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정말 취업 안 하겠다고 했다가 잘 이야기해서 취업하실 수 있습니다. 그건 정말 소수입니다. 취업사업에 참여하여 정말 열심히 해도 취업을 "못"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안" 하는 건 무조건 중단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중단"은 또 우리의 역량을 너무나 쉽게 평가해버리는 잣대가 되고 우리가 왜 "중단"이 무서워서 취업할 생각이 1도 없는 분들에게 쩔쩔 매야 하느냐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 정정이 필요합니다.!!
사정이 생겨서 취업을 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해 주세요"라고 수십 번 말합니다.
제발 이야기해 주시고 연락받아주시고 저희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라도 주십시오.. 직업상담사로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의 취업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수당 주는 ATM기가 아닙니다.
100명의 내담자를 만나면 100개의 문제가 생긴다.
직업상담사가 배정을 받게 되는 순간 문제 발생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각 내담자 수마다 문제가 생기기 지만 그 문제에 대한 어떠한 확실한 매뉴얼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치고 환장합니다. 매번 물어보는 것도 무섭습니다. 전화를 하면 갑을 병 정에서 "정"이 됩니다. 굽신굽신의 그 자체이며 혼날까 봐 전전긍긍, 선생님들도 바쁘고 힘든 걸 알기에 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매번 발생하는 문제나 문의들은 또 물어보는 게 잘못이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정리하고 보고하고 처리하는 단계를 잘 정리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직업상담사의 역량이 또 나옵니다.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과 해결력이죠. 신입 직업상담사는 당연히 이 부분이 안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고 매뉴얼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당히 물어봤습니다. 매뉴얼로 확인되지 않는, 그리고 애매한 케이스는 1번 본사에 물어봅니다. 저는 본사가 답이었습니다. 본사에서 6개월 근무했기 때문에 관계가 좋았고 본부장님, 실장님, 팀장님 모두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지사장으로서 정말 어이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집단 프로그램에 연령이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연령이 초과되는 분들이 참여했고 그 참여자의 수당을 고용노동부에서는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여기서 문제는 지사장인 제가 체크를 안한 거죠..
이렇게 되면서 저는 엄청난 수치심과 정신 똑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본사에 알리고 본사에서는 어이없고 어이없는 이 상황에서 저를 많이 혼 내진 않으셨습니다. (참으셨겠죠) 그리고 고용센터에 정말 반성문 들고 교무실 가는 것처럼 본부장님과 갔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수당 처리는 회사 자체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말씀드리니, 별문제 없이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지사장이고 직업상담사인데 그 집단 프로그램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멍청스러웠습니다. 이때 이후로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 매뉴얼을 정독하고 지사만의 매뉴얼을 만들고 실시간 문제상황에 대해 전담자와 함께 공유하였습니다. 고용센터에서 내려오는 다양한 공지와 지시사항에 대해 매번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니 문제가 안 생기는 겁니다? 업무 효율일 좀 오르는 데..? 오 우리 좀 일 잘 하는데? 이렇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민간위탁 점검 당시, 어떠한 문제도 민원도 없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저희는 담당 주무관님이 랜덤으로 참여자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피가 마릅니다. 100명 중 랜덤 5명 정도) 전화를 하면서 상담과 상담사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었고 모두가 긍정적인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복받을 거예요).
지금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제가 생각하는 취업성공패키지가 그랬습니다. 제가 원하는 직업상담의 비중은 낮았습니다. 진짜 취업을 위한 상담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라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렇게 지사장 1년 6개월의 경력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고 그때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상황들이 이제는 이렇게 추억이 되어 글을 쓰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지사장이었던 그때처럼 못 할 것 같아요. 26살, 사회에 갓 나온 병아리였으면, 직업상담사의 "직" 자도 모르는 신입 직업상담사로서 그 마음으로 그렇게 지금은 할 수가 없죠. 저는 당당한 6년 차 경력자가 되었습니다. 지사장을 하면서 울고불고 하기 싫은 상담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은 너무나 재밌는 상담과 강의를 기획하고 청년층을 만나고 있습니다. 결론은 바뀌지 않는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여러분들 앞에 글을 씁니다. 저는 직업상담사의 환경을 바꾸고 싶습니다. 저의 환경을 조금씩 바꾸면서 여러분들에게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나름의 경력 직업상담사가 되어 신입, 현직에 계신 분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취업이라는 답이 없는 그 과정에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는 직업상담사기 되고싶습니다
지금, 모든 직업상담사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는 일은 누구보다 어렵고 대단합니다. 하기 싫은 것을 해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고난과 역경이 여러분들을 단단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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