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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 Nov 11. 2021

[Review] '중세 미투'를 고하다 - 라스트 듀얼

14세기 중세 프랑스의 '미투' 고발이 최후의 결투로 이어지기까지



영화 <라스트 듀얼>을 관람하러 극장가로 향한 건, 동명의 원작 소설을 집으로 받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그날은 시험을 연속해서 2개 막 마친 화요일이었다. 나는 이미 2주 동안이나 늘어진 시험 기간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뒤죽박죽 얽힌 머릿속을 말끔히 쓸어내릴 무언의 환기가 간절히 필요했다. 어차피 마지막 시험은 목요일 오전에 예정되어 있었으니 시험공부는 아예 수요일로 미루자 싶어 화요일 시험 일정을 마치고 급히 저녁 영화 2개를 예매했다.


개봉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라스트 듀얼>을 상영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끽해봐야 하루 한두 타임 상영하는 곳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런고로 나는 시험이 끝나고 동네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뒤 <라스트 듀얼>을 상영하는 서울 근교의 극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쏟아지는 귀찮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이 영화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건, 이미 관람객들 사이에서 호평이 자자하기도 했고, 이전부터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을 즐겨봐 왔기 때문일 테다. 스콧 감독의 작품이라면 <델마와 루이스>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마션> 등이 대표적이다. 머지않아 <라스트 듀얼>의 원작 소설 역시 읽을 예정이었으니 내가 감독님의 신작을 극장에서 놓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사실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나는 <라스트 듀얼>이 당최 무슨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당일 오후 급하게 잡은 일정이기도 했고, 애당초 영화 예고편이나 사전 정보를 찾아보는 편이 아니어서다. 내가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약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기나긴 상영 시간이 꼼짝없이 나를 극장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문득 지난해 <킹덤 오브 헤븐>이 감독판으로 재개봉되었을 때 이곳 극장을 찾은 기억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 개봉작인 <킹덤 오브 헤븐>은 한국에서 2020년 재개봉 한 바 있다. 비록 재개봉 당시 극장을 찾은 나는 무려 3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온갖 진이 다 빠져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영화 <라스트 듀얼>은 장장 152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리들리 스콧 감독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엄청난 흥미로움을 자아낸 작품이었다.



영화는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세 인물의 시점으로 극을 전개해나가는 영리한 구조를 선보인다. 이야기의 근원이 되는 동명의 원작 소설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이하 ‘라스트 듀얼’)는 마찬가지로 14세기 중세 프랑스의 카루주-르그리 결투를 다루고 있다. 해당 결투는 실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며 본문에서도 그 결투 장면만 20페이지에 걸쳐 서술하고 있을 정도로 유럽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결투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드러나듯 카루주와 르그리는 서로를 악에 받친 표정으로 노려보며 목숨을 걸고 결투에 나선다. 한때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던 이들이 최후에는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고 상대방의 죽음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스트 듀얼」은 독자에게 그 어떠한 사전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두 사내가 결투를 시작하기 직전의 장면으로 프롤로그의 막을 연다. 제대로 된 결투가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작품은 카루주와 르그리가 굳건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옛 시절로 별안간 시점을 옮겨 간다.


그간 두 사람 사이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줄곧 의문을 품던 독자는 마침내 이 희대의 결투가 마르그리트라는 한 여성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된다. 카루주의 아내인 마르그리트는 어느 날 원정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자신이 르그리로부터 겁탈당했음을 고한다. 분개한 카루주는 르그리를 상대로 국왕 앞에서 소송을 벌이게 되고, 두 사람은 결국 최후의 수단인 사법 결투에까지 이르게 된다. 카루주-르그리 결투에서 - 어쩌면 결투 그 자체보다 더욱 -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해당 결투가 어떠한 사회적 맥락과 배경에서 파생되었는지에 관한 여부다. 이에 따라 도서 「라스트 듀얼」은 독자가 전체적인 흐름에서 당대의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도록 중세 프랑스와 관련된 폭넓은 역사적 사실을 지속해서 제공한다.



「라스트 듀얼」은 훌륭한 역사서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카루주-르그리 결투의 배경이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빈틈없이 나열하면서도 당대의 시대상을 철저히 구현하고 반영하고 있다. 10년의 집필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이니만큼 사료(史料)를 성실하게 고증하고자 하는 작가의 오랜 고민과 갈등의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텍스트를 읽고 있으면 파리의 성곽이나 우뚝 선 성당의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지는 까닭일 테다. 특히 결말 부에 이르러서야 펼쳐지는 최후의 결투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묘사해 놓은 것처럼 독자를 단숨에 중세 시대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비록 10년간에 걸친 세월 동안 작가가 최선을 다해 집필했다고 하더라도 – 애당초 머나먼 14세기 중세 사건을 다루고 있는 탓에 – 완벽한 복원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작가 에릭 재거는 역사적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지점에서 함부로 사건의 정황이나 진위를 판가름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관련 사료가 부족함을 앞서 명확히 제시하고, 상황적 맥락을 살펴 당시 인물들의 생각 혹은 행동을 단순히 예측하는 정도로만 남겨 둔다. 이로써 독자는 작가의 견해를 등에 업고 보다 자유롭게 ‘독자적으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카루주-르그리 결투가 벌어진 14세기 중세 프랑스 무렵에는 이미 대부분의 결투 재판이 국가 기관에 의해 공식으로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국왕에게 친히 상고하는 ‘귀족’의 경우 예외적으로 소송 상대방에게 사법 결투, 즉 결투 재판을 신청할 권리를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카루주는 본디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의 귀족이었으므로 국왕 앞에서 상고하여 르그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카루주와 르그리 사이에 벌어진 최후의 결투가 파리 고등법원이 허가한 마지막 결투 재판이었다는 점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대목이다.


이 무렵 결투 재판이 실제로 벌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결투 재판을 신청하는 귀족은 네 가지의 엄밀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첫째, 피고가 저지른 범죄는 살인, 반역, 강간 따위의 중범죄여야 했다.
둘째, 그런 범죄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확증이 있어야 했다.
셋째, 모든 법적인 해결책이 소진되고, 이제는 “자기 몸을 증거로 삼는” 결투밖에는 피고의 유죄를 증명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만 원고는 결투를 신청할 수 있었다.
넷째, 결투 신청은 피고가 실제로 그런 죄를 저질렀다는 강한 심증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했다. 

p.134



그러나 우리는 카루주-르그리 결투에 가려진 한 여인의 삶을 잊어서는 안 된다. 카루주가 르그리를 상대로 법정에서 결투를 제기한 순간부터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마르그리트라는 한 여성의 수난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루주와 르그리 사이에서 벌어진 ‘최후의 결투’는 진실의 유무를 판가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을 뿐, ‘진실’ 그 자체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역사에서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은 진실 그 자체다. 이것이 강간 피해자인 마르그리트의 이야기가 그 어떠한 사건보다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 져야 하는 이유이며 영화에서도 마르그리트의 시점을 ‘The Truth’ 즉 ‘진실’이라는 부제와 함께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에 배치해놓은 까닭일 테다.


안타까운 것은 사건의 본질이 마르그리트라는 핵심 인물을 관통하고 있음에도 그가 당시의 재판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성폭력을 당한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마르그리트가 르그리를 고등법원에 직접 상고하지 않은 이유는 애초에 그녀에게 상고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세 프랑스의 경우 강간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피해 여성은 범인을 고소할 수조차 없었다. 


마르그리트는 애당초 르그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조차 없다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남편인 카루주가 몇 개월에 걸친 원정에서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강간 피해 사실을 고한 것일 테다. 더불어 르그리는 당시 왕실과 혈연관계를 맺고 있던 피에르 백작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있었으므로 제아무리 상고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들 – 당대에 통용되었던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보면 – 마르그리트가 직접 재판에 나서 이길 확률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 


강간범에 대한 기소와 처벌은 강간 피해자의 사회적 계급과 정치적 영향력에 크게 좌우되었다. 중세 프랑스에서 여성이 절도처럼 소소한 범죄를 저지르면 사형에 처해 졌지만, 강간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들 다수는 단순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많았다. - 게다가 이 벌금은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나 남편에게 합의금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강간이라는 범죄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보호자인 남성의 재산권을 침해한 기물파손죄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p.115



중세의 사법 결투는 어느 쪽의 결투 당사자가 거짓 선서를 했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정식 법 절차였다. 그러니까 카루주-르그리 결투에서 중요하게 대두되었던 건 오로지 승리의 쟁취였다. 결투에서의 승리가 곧 진실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결투 재판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마르그리트의 진실은 남편인 카루주가 가까스로 결투에서 승리하면서 그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마르그리트 스스로가 진실을 고함으로써 수반된 결과가 아니었다. 


나아가 마르그리트를 위한 정의가 최종적으로 실현되었음에도 여전히 씁쓸한 입맛을 다질 수밖에 없었던 건 – 당대의 결투 재판이라는 극적인 방식이 아니고서야 – 현재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정의가 구현되지 못한 경우를 너무도 많이 목격해 왔기 때문일 테다. 더불어 당대에 자행되었던 마르그리트를 향한 사회의 모진 시선과 세간의 관심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무의미하다지만, 만일 카루주가 르그리와의 결투에서 패배했다면 마르그리트의 정의는 구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르그리의 궁극적인 실추는 시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정의의 구현을 상징했다”라는 본문의 문장은 더욱 역설적이며 씁쓸하게 다가온다.



전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6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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