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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 Jan 11. 2023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소프라노 강혜정 연말 콘서트 리뷰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음악은 현존하는 최고의 타임머신이라고. 아마 유병욱 작가의 <평소의 발견>이라는 책에서였을 거다. 그 구절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작가가 해당 대목에서 1998년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의 OST를 언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햇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에 <카우보이 비밥>의 주제곡 ‘Tank!’를 즐겨 듣는다고 했다. 마침 그 책을 보던 때가 여름이었고, 그 해 상반기 처음 <카우보이 비밥>을 접했기 때문에 곧바로 그 곡을 찾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Tank!’의 도입부를 듣자마자 나는 <카우보이 비밥>을 열렬히 챙겨보던 그해 겨울날로 곧장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의 ‘Tank!’처럼 어떤 곡은 뜨거웠던 그해 여름을 담고 있고, 어떤 곡은 누군가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어떤 곡은 특정 시기를 지나온 나를 안고 있다. 나의 지나간 시절을 기억하는 노래가 버젓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나는 작은 위안과 기쁨을 느낀다. 누벨바그 풍의 영화 음악을 선보인다는 소프라노 강혜정의 연말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영화 음악은 단순히 노래를 접했던 시기뿐만 아니라 영화 속 장면과 인물, 장소 그 모든 것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바깥의 ‘나’와 영화 속 ‘누군가’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영화 음악은 한결 깊은 과거를 머금게 된다. 



공연의 제목은 <누벨바그>였다. 누벨바그란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1957년경부터 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난 새로운 풍조를 말하는 영화 용어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루이 말, 알랭 레네 등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의 감독들이 누벨바그 운동을 주도했다(고 한다). 


누벨바그 시대의 영화를 특별히 애호해서 이 공연에 끌린 것은 아니다. 아직 접해보지 못한 작품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이미 보았던 영화들도 대부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니까. 그럼에도 내가 해당 콘서트에 관심이 간 건 비록 이 공연이 <누벨바그>라는 제목을 띠고 있을지언정 그 시절의 영화만을 주제곡으로 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같은 고전 명작 외에도 공연 <누벨바그>는 최근 15년 사이 개봉한 <코다> <스타 이즈 본> <라라랜드> <드라이브> 등 조금은 더 익숙한 제목의 영화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이 낯설고도 친숙한 공연의 제목과 소개말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나는 언제든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공연날인 12월 27일 전까지 프로그램에 포함된 작품을 될 수 있으면 모조리 끝내고 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연말 일정에 치여 단 한 편도 보고가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 벼락치기로 보고 간 작품은 고작 며칠 전의 기억으로 나를 돌려보낼 뿐이니 타임머신 같은 건 당연히 작동하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미 관람한 영화의 익숙한 노래가 나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맞았고, 처음 보는 영화의 낯선 노래가 나오면 생경한 마음으로 귀담아들었다. 소개말에서 언급한 작품 외에도 <엽기적인 그녀> <포카혼타스> <멤피스 벨> <쉰들러 리스트> 등 시대를 불문한 다양한 작품의 곡들이 연주되어 더욱 풍성한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들은 세 곡의 영화를 소개한다.


 

 

<엽기적인 그녀>의 캐논 변주곡


공연의 시작을 알린 건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캐논 변주곡이었다.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이 아님에도 첫 곡만큼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주제가인 캐논 변주곡이 워낙 유명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바로 그 덕분에 아주 어릴 적부터 이 노래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캐논 변주곡은 나의 유년을 담은 노래였다.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곡의 반주가 흘러나오자마자 조용히 전율한 건 그것이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긴밀히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거의 듣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의 일부가 이 곡의 일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고 놀라웠다. 어쩌면 서로의 일부를 기억한다는 건 서로가 지나온 과거를 기억한다는 말과도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은 혼재된 시간과 기억을 떠올리며 첫 곡부터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오케스트라를 맞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캐논 변주곡을 어디서 들었더라? 그 시작이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10년도 더 전의 일이라는 건 분명하다. 2G폰을 쓰던 초등학교 시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아날로그 게임 같은 것을 하다 이 곡을 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으니까. 배경음으로 흘러나오는 박자에 맞춰 키패드를 뚱땅뚱땅 두드리는 게임이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나는 그 시절 2G폰에 탑재되어 있던 핸드폰 게임으로 꽤 많은 클래식 음악을 접했던 것 같다.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은 순식간에 아날로그가 성행하던 10년 전의 그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공연장에 있던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곡이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접한 시기로 데려다주었을지 모른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1년 혹은 그 이후 언제라도.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세계로 무심코 흘러가는 캐논 변주곡을 들으며 작은 평온을 느꼈다.    




<라라랜드>의 메들리 공연


내가 공연을 보기로 결심한 데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영화 <라라랜드>였다. 소개말에서는 <라라랜드>의 ‘Another Day Of Sun’만을 언급하고 있었으므로 공연을 보기 전까지 ‘왜 다른 곡들도 많은데 하필 오프닝 곡을 선택한 걸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라라랜드>는 내가 두 번째로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야 비로소 빠져든 영화였다. 평소 좋아하고 또 흠모하는 이들이 모두 <라라랜드>를 좋아했으므로 나도 온 마음을 다해 이 영화를 좋아하고 싶었으니까. 첫 관람의 실패를 무릅쓰고 얻어낸 값진 결과였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나는 뒤늦게야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곡을 하나하나 찾아 듣기 시작했다. 어딜 가도 <라라랜드>의 미아와 세바스찬과 노래와 함께였던 그 겨울이 벌써 몇 년 전이다. 꿈과 사랑은 양립할 수 있을까? 내게 강렬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던 <위플래쉬>부터 <라라랜드>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 질문으로 골몰하던 몇 년 전의 나를 떠올리며 오프닝 곡 말고도 별들의 도시(City Of Stars), 군중 속의 누군가(Some In The Crowd), 혹은 사랑스러운 밤(A Lovely Night)도 듣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좀체 예상하지 못한 건 <라라랜드>가 메들리(여러 음악을 한데 섞어놓은 것)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부분 곡이 메들리로 연주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영화를 보고 난 어느 겨울날 매일 같이 찾아들었던 그 노래들이, 그 익숙한 멜로디가 한 음 한 음 내 귀에 내리꽂힐 때마다 잔잔히 전율하고 감동했다. 나는 <라라랜드> 속 LA의 사계절을 떠올렸고, 미아와 세바스찬의 우연한 만남을 떠올렸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셉스’라는 재즈 카페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눈빛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종종 인생이 뜻대로 굴러가진 않는다는 걸 느낄 때마다 “우리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라는 <라라랜드> 속 미아의 대사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흘러가는 대로. 그런 마음으로 공연을 듣고 있자니 <라라랜드>의 메들리 공연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말 그대로 LA LA LAND, 비현실의 세계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문득 콘서트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를 잠시 황홀한 비현실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곡


<쉰들러 리스트>야말로 이날 공연에서 내가 예상치 못했던 깜짝 선물이었다. 소개말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 영화가 등장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쉰들러 리스트>를 접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 생활 내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이 당신의 역사 수업 시간을 쪼개고 쪼개 틀어준 것이 계기였다. 3시간에 달하는 이 방대한 영화를 처음 접하고 무언의 경이로움으로 몸을 떨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악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공연장 위 스크린으로 영화 속 장면이 담긴 영상이 띄워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 곡이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곡이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스크린으로 쉴 새 없이 상영되는 영화 속 장면들은 내가 이 공연에서 음악만큼이나 만족스럽게 감상한 부분이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실시간으로 상영되면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함께 듣는 것이 얼마나 환상적인 경험인 지를 나는 지난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필름 콘서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곡이 배경음으로 흐르고 스크린으로는 영화의 주요 장면이 스치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넋을 놓고 영화를 보다가 소프라노 강혜정의 노래를 듣다가 그만 울렁거리는 심정이 되었다. 


이 영화를 처음 접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나와 몇 년째 뵙지 못한 역사 선생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끝끝내 나의 시선을 붙잡은 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빨간 코트의 소녀였다. 소프라노 강혜정의 청아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어딘가 처연하게 들렸던 것은 그 빨간 코트의 소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주인공 쉰들러의 심정일까, 빨간 코트 소녀의 심정일까, 유대인의 심정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공연을 보았다. 


<쉰들러 리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의 곡들을 들으며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어느 한 시절에 보았던 영화나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노래 하나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마주한다는 건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는 걸 말이다. 



전문은 아트인사이트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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