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를 통해 '나'와 마주보는 법을 배우다
”너는 눈이 작은 것 같아“
어렸을 때, 친구 중 한 명에게 이런 이야길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순수했던 나는 그 말을 꼬아서 듣지 않았기에 ‘안경을 써서 그런가~ 그래도 나 정도면 큰 거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곤 다시 뛰어놀기 바빴었다.
그랬던 내가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서부터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이 심해졌다.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가방을 집어 던지고 친구들과 외모 비교를 하며 펑펑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이런 나를 보며 엄마는 "어디 하나 모나게 나아준 곳도 없는데 대체 왜 그러냐“고 성화였지만,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남들과 비교하면 작아 보이는 눈, 커 보이는 얼굴과 턱, 높지 않은 콧대.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자신을 가꾸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니 과거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항상 자신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그러던 중, 퇴근길에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발레 공연 연습 영상을 보았다. 잔잔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너무 우아해 보였다. 홀린 듯 집 근처 발레학원을 찾은 뒤 상담 예약을 잡고 학원으로 달려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학원비 결제를 한 뒤였다. 너무 충동적인 행동에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발레 운동 첫날, 수많은 거울이 나를 사방에서 비추고 있는 걸 본 순간 죄지은 것도 아닌데 고개가 자꾸 떨궈지고, 목은 거북이가 등딱지에 들어가는 것처럼 움츠려졌다. 처음 배우는 동작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흉내만 내기도 버거워 눈앞이 핑핑 돌았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몸은 딱딱하게 굳어 다리가 일자로 잘 펴지지도 않았다.
분명 학원비를 결제할 때만 하더라도, '발레수업을 완벽하게 따라가서 학원 선생님에게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떡하지?' 생각하며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김칫국을 사발로 마신 생각이었다. 이래서 아기 때부터 발레를 시키는구나. 싶었다. 내가 자녀가 생기면 기필코 발레를 미리 시켜야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아이러니하게도 발레를 할 때 제일 힘들었던 건 초심자에게 강도 높은 스트레칭도, 힘든 자세도 아니었다.
바로 거울을 통해 '나' 자신과 마주 보는 것이었다.
발레 선생님께서는 계속 불안정한 시선과 움츠린 자세에 대해 지적하며 거울의 ’나‘와 시선을 마주치라고 하셨지만, 거울 속의 비친 나의 모습이 매우 인위적으로 보여 좀처럼 시선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다른 수강생들은 잘만 따라 하는데, 나만 열등생이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느껴졌다. 충동적으로 발레를 결제한 과거의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이왕 배우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잘하고 싶어 두 번째 수업 때 용기를 내 거울 속 내 모습과 마주 보았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약간 상기된 볼을 한 어색한 표정의 내가 보였다. 익숙하지 않아 민망했지만, 수업을 계속하다 보니 거울을 통해 나를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 내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웃을 때 이런 표정을 짓네. 내 체형은 이렇구나.‘
항상 내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보니
내 생각과 실제 내 모습은 많이 다르다는 걸 난생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 얼굴이 크지 않았으며, 목이 짧지 않았다.
또, 입을 벌리고 웃는 게 내 생각보다 못 나 보이지 않았고,
크고 뚱뚱하다 생각했던 상체는 내 생각보다 덜 커 보였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발레수업을 할 때 거울을 보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법을 몸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선 낯선 어떤 분야에 처음 발 딛기 두려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소한 계기 하나만 있다면 스스로 언제든지 변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