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 그리고 일어나서 글을 쓴다. 잔다와 쓴다 사이에는 예사롭지 않은 균열이 있다.
균열 A
이불속에서 유튜브를 보며 '오늘은 못 쓰겠다. 아~ 안 써. 못 써.'
- 십중팔구의 확률로 쓴다. 귀여운 앙탈 수준
균열 B
책상 앞에 앉아 사색 '나 같은 미물이 무슨 글을 쓴다고.. 미물이 쓴 글을 누가 읽는다고..'
- 십중칠팔의 확률로 쓴다. 약간은 괴롭지만 즐길 수 있는 수준
균열 C
맥주 꺼내기
-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오늘은 C다. 지는 날. 연재 중인 <방백과 문장>에 올릴 수 있는 글을 쓰는 날이 아닌 것. C급 마인드로 글을 쓰는 날은 매거진 <우. 시. 초>가 생각난다.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것이 낫고 안 올리는 것보다 올리는 것이 낫다.'는 초라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는 날 말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날은 <우. 시. 초>가 나를 반겨준다. 마치 어두운 골목 구석에 있는 심야식당이랄까. 한껏 풀이 죽어 들어가면 뜨듯한 어묵국물향이 풍겨온다. 쐬주 한 병을 시켜 한숨 푹푹 쉬어가며 마시고 사람 사는 소리 좀 듣다가 집에 들어가면 괜히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내일을 향한 칼을 갈게 된다. 이런 날에는 집 안에 숨어있는 것보다 심야식당이라도 나가는 것이 낫다는 지론이 있는 쥔장이다. 그런 초라한 마음으로 오늘은 심야식당에 들러본다.
우습고 시시하고 초라한 것이지만 내놓는 것에 의의를 두며.
주인장 정주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