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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구 Oct 10. 2024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작가로서 스스로의 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답이 궁해진다. 나는 그저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좋다고 생각하지." 하며 말하고선 짐짓 우스운 표정을 짓는다. 마치 장난이라는 듯이.


술에 취해 얼굴도 마음도 불콰한 상태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가벼운 표정은 거두고선 몹시 괴로운 얼굴을 하고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존나 좋다고 생각하지... 글 쓰는 나 존나 좋다!"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어휘가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면 앞에 앉은 상대방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와! 주구야! 너 정말 멋지다!" 하든지 "이놈 취했네 쯧" 하면서 술값을 계산하든지. 가벼운 표현과 과한 표현 모두 어쩌면 진심이 아닐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는 아무 표정 짓지 않고 걷는다. 그리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수영, 거짓말, 뜨개질, 바느질, 오래달리기, 소주 맛있게 먹기, 바퀴가 있는 사물에 의지해 이동하기, 발표, 일찍 일어나기, 잠들기, 정리하기, 기차역에서 엄마 진을 전송하며 울지 않기 등 몹시 많은 것을 떠올리다가 이내 '쓰는 일'을 넣어야 할지 고민한다. 어쩌면 이 점을 고민하기 위해 앞에 것들을 생각해 냈을 수도 있겠다. 만약 이것들을 연필로 적고 있었다면 몇 번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다가 작은 글씨로 '쓰는 일'을 적어 놓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만큼 잘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한 치의 의심 없이 잘하지 못하는 일 리스트에 있는 '쓰는 일'을 지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며 나는 집에 들어간다.     


나는 평범하다. 내가 아는 작가들 대부분은 범상치 않은데 말이다. 큰 시련을 이겨낸 성장 스토리가 있거나 머리에 흰 천을 두르고 투쟁을 하거나 어릴 적부터 비상하다든지 예사롭지 않다든지 따위의 소리를 들었다거나 문인의 집안이라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문신이라도 몇 개 있거나. 그에 비해 나는 지극히 평범하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며 19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살았다. 예민하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범상치 않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다. 큰 투쟁 앞에서 내 안의 소리를 곧잘 죽인다.


평범한 사람의 안에서 나온 글은 과연 얼마나 멋스러울까? 어쩌면 모든 것을 나의 뿌리에게로 탓을 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쓰더라도 그 사람들 같은 글은 쓰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쓴다. 하고 나는 생각한다. 산의 높은 곳으로부터 흐르는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개울이 되고 이따금씩 폭포로서 떨어지고 부서지고 소리 지르는 것처럼 너는 쓸 것이다.


끝내 아무것도 못 되더라도 쓰는 일을 하자.      


나는 과연 무엇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2024. 05. 12. 日

[방백과 문장, 5월 호, 나는 작가가 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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