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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Nov 04. 2021

[친애하는 로댕 선생]

KUA Conte #17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친애하는 무슈 로댕께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번에 무슈 부쉐의 스튜디오에서 인사드렸던 카미유입니다. 


 수업 후에 언제든 연락해도 좋다고 하셔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그간 풀지 못했던 숙제들, 미궁 속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게 나아가지 못했던 제 작품들이 이제서야 제 속도를 찾는 느낌이었답니다. 무슈 부쉐의 가르침도 물론 소중하지만, 선생님의 직접적이고 가감 없는 의견이 저에게는 좀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작업실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면 그 날의 수업이 생각난답니다. 어제는 작품을 제대로 말리는 것에 실패해서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경이에요. 


 선생님, 저는 그 날 칭찬해주신 것처럼 좋은 조각가가 아닙니다. 어떤 조각가가 자신의 작품을 산산조각 낼까요? 저는 그저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며 제 마음 속에 있는 그림들을 조각에 그대로 새기고 싶습니다.


 편하신 시간에 뵙고 작품 이야기를 더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시각으로 봐주신다면 제가 이후 작업을 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늘 그저 그렇고 그런, 혹은 너무 복잡하기만 한 예술에 해방감을 주는 조각이니까요. 


부디, 선생님의 작품을 오래오래 볼 수 있도록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1883.9

카미유 클로델 올림









사랑하는 로댕에게



 때때로 우리가 함께 있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성대한 저녁을 하기로 해놓고 당신의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다음날 차게 식은 수프처럼 영혼 없이 돌아왔던 일, 그날 마주친 당신의 오랜 연인, 그녀의 얼굴이 나는 잊혀지지 않아요. 그녀의 텅빈 눈을 만든 건 바로 나겠죠. 하지만 나도 같은 꼴을 봐야 했으니 미안함을 조금 덜 수 있을까요? 예정보다 빨리 돌아와 스튜디오 조각상 앞에서 모델과 엉망으로 뒤섞인 당신을 본 날부터 나는 조금씩 당신을 떠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처음 본 날, 어딘가 당신이 바람둥이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나에게만은 다를 줄 알았지만, 저 또한 다른 여자들과 다르지 않은 순진한 바보였던거죠. 아들의 엄마 조차 아내로 들이길 거부했던, 비겁하고 겁많은 당신이 스무살도 넘게 어린 나를 순수하게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았던  어린 날의 제가 지금은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아요. 그 순수함 덕분에 나는 사랑을 배웠고, 우리는 같이 영혼을,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조각을 만지는 순간순간이 애무고 고백이었습니다. 위대한 사랑의 순간과 예술의 고통을 알려준 당신께 나는 그래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이에 사랑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요. 그래서 사랑을 잃어버린 나는, 먼저 당신을 떠납니다. 


1892. 2

카미유 클로델







로댕 선생에게


 최근 나를 향한 당신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 조각이 당신을 향한 비난의 어조를 담고 있던가요? ‘예술은 예술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작품이 우리를 의미하냐구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손을 떠난 이상 그건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조각이 살아서 이야기 하는 거죠. 화 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당신은, 미안한 얘기지만, 천박해보입니다.


 억울한 일은 그 뿐 만이 아닙니다. 당신은 왜 제 작품을 훔쳐가서 꽁꽁 싸매고 있는거죠? 당신 스튜디오 구석진 곳에 나의 Clotho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나의 작품은 당신의 것과는 달라요. 솔직하며, 살아있죠! 당신의 위선적인 작품과는 달라요. 고통 없이는 강렬한 생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작품에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딘가 신화 속의 힘과 같달까요? 나와는 먼 일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살을 베는 듯한 고통을 바탕으로 작업합니다. 내 작품을 가지고 공부하고 탐구하고 싶은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내 조각을 훔쳐가서 내놓지 않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여기저기 나의 험담을 하며 나를 위하는 척, 교묘하게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모임이라도 가게 되면 수군거리는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어요. 그들은 마치 내가 귀가 먹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이야기를 해댑니다. 당신은 동정하는 척, 잘도 나를 깎아내렸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나의 작품을 보면 ‘그 유명한' 로댕이 도와준 거다 ‘로댕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로댕의 후광으로 먹고 사는 여자' 취급하면서 나를 우습게 보는 거겠죠. 


 내가 아무리 영혼을 담아 작업해도, 그건 그냥 ‘로댕의 정부가 조물딱거린 장난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같은 작품에 당신 이름이 달렸다면 어땠을까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꾼 작품이라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그런 적도 종종 있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대단한 영향력을 나를 짓밟는데 쓰고 있는 당신 때문에 내 삶은 점점 더 비참해지고 있습니다. 불을 땔 수 없는 작은 방은 냉기로 가득해 싸구려 와인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편지는 보잘것 없는 내가 당신에게 전하는 경고장입니다. 부디 우리의 좋은 기억을 당신의 추잡한 질투와 협잡으로 더럽히지 말기를 바랍니다.



1899. 7 

고통스러운 카미유 클로델






친애하는, 더럽게 잘난 로댕 선생님께 


당신의 가식적인 면상을 생각하면 편지에 가래침이라도 뱉어서 보내고 싶은 심정이야. 


도둑, 도둑, 도둑, 


 내 모든 걸 당신에게 도둑맞고도 사랑이라고 믿었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이제 산산조각난 내 정신은 잠시도 한 가지에 집중할 수가 없어 바싹 마른 찰흙처럼 먼지를 내며 바스라지고 있어. 어제는 방바닥에서 팔딱 거리는 생선을 봤어. 방안에 생선이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냄새가 고약하기 그지없었지. 


 생선의 악취는 당신 영혼에서 나는 것과 비슷해. 아마 당신이 도둑질하러 왔다가 흘리고 간 거겠지. 

 영감 따위라고는 잃어버린 노친네, 악다구를 쓰는 것 말고는 여자를 붙잡아두는 방법을 모르는 불한당! 비겁한 위선자, 내 작품이 다 네 놈 것이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아? 


 당신 때문에 놓친 일거리만 다 할 수 있었어도 이렇게 오줌 냄새 나는 방에서 추위에 떨며 지낼 일은 없었을거야. 따뜻한 마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 복수에 미친 로댕! 당신의 감시와 집착이 지긋지긋해. 어린 시절, 우리 집엔 거대한 바위가 있었어. 난 그 아이를 제앵이라고 불렀지, 제앵이 돌아와 당신을 깔아 뭉갰으면 좋겠어


당신이 내 작품을 질투하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내 작품을 보던 더러운 눈길을 잊을 수 없어. 19살의 어린 나는 그게 애정인줄 알았지. 하지만 당신은 당신을 넘어선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참을 수 없었겠지. 로댕 선생의 끝없는 질투!


 당신과 함께 작업하면서 난 언제나 그 불안한 시선을 느꼈어. 당신의 작은 새, 생동감 넘치는 조각의 비밀, 카미유 클로델이 날아가면 어쩌지? 당신의 지긋지긋한 스튜디오를 나선 후에도 내 작품을 하루도 빠짐없이 염탐하고, 훔쳐가는 것 잘 알고 있어. 그 도둑질은 어때? 남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대단한 로댕 선생' ‘살아있는 천재' 소리를 들으니 좋아? 


 모두 훔쳐 가져가기 전에 내가 부숴버릴거야. 어차피 세상은 카미유 클로델의 이름이 붙은 작품은 원하지 않아. 비웃을 뿐이지. 



1909.10

피해자 카미유 클로델









⋇ KUA Conte 는 쿠도스 아틀리에에서 발행하는 단편입니다

⋇ 위 글은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의 이야기를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And more..  

    이는 실제 카미유 클로델이 쓴 편지가 아니며, 그녀의 실제 편지는 <카미유 클로델>(마음산책)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카미유 클로델(1864-1943)은 아들 하나, 딸 둘이 있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기 전 죽은 아들을 대신해 그녀의 이름을 중성적으로 짓습니다. 그리고 아들 폴과 동생 루이즈와는 달리 카미유에게는 애정을 주지 않습니다. 이는 카미유 클로델의 불안정한 정서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카미유는 동네 숲에 있던 거대한 바위에 ‘제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바위를 조각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잔뜩 흙을 묻히고 오는 카미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행히 그녀의 아버지는 카미유의 재능을 알아보고 평생 그녀를 뒷바라지 합니다  

    16살이 되던 해, 카미유는 프랑스 국립 미술학교 에꼴 데 보자르에 지원하지만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여자라서 입학을 거절당합니다  

    이후 여자도 입학 가능한, 보다 진보적인 학교인 아카데미 콜라로시에 입학하고 스승 부셰에게 가르침을 받습니다  

    1883년, 이탈리아로 가야했던 부셰는 카미유를 포함한 그의 학생들을 오귀스트 로댕에게 부탁하고, 카미유와 로댕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카미유의 나이 19세, 로댕의 나이 43세였습니다  

    카미유는 처음에는 로댕이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와 사랑에 빠져 그가 마련해준 집으로 들어갑니다(집에서는 로댕과의 관계를 들켜 쫓겨납니다)  

    1892년, 로댕과 카미유는 헤어집니다. 그 사이에 로댕은 계속해서 바람을 피는 등 카미유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카미유가 이별을 선언할 때까지도 로댕을 계속해서 카미유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카미유는 계속해서 천재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으나, 로댕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어디를 가든 ‘로댕이 만들어 줬다' ‘로댕을 베꼈다'는 평가가 그녀를 따라다녔습니다  

    1889년 만들어 1893년 출품한 <성숙>은 그녀와 로댕, 그리고 로댕의 오랜 연인이자 조강지처 로즈뵈레의 삼각관계를 찾아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로댕은 이 작품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집니다. 둘 사이가 소원해지며 로댕의 경제적인 지원도 끊깁니다  

    외롭고 가난했던 카미유는 점점 정신적으로 쇠약해집니다. 1905년 이후, 그녀는 조현병을 진단받고, 가족들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낡은 누더기같은 옷을 걸쳐입는가 하면 이해할 수 없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알콜 의존증도 계속 심해졌습니다   

    카미유는 안타깝게도 본인의 훌륭한 작품을 차례차례 부숴버립니다  

    카미유는 특히 로댕에게 집착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베끼고, 훔치고,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생각해 끊임없이 그를 비난했습니다  

    1913년, 그녀는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리고 1943년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야수적인 힘과 정서, 그리고 폭발할 듯한 생의 감각이 느껴집니다  

    그녀의 고향, 노르 쉬르젠에서 카미유 클로델 뮤지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미유 클로델




오귀스트 로댕



<Vertumnus and Pomona>, 카미유 클로델



<Clotho>, 카미유 클로델




<성숙 The Age of Maturity>, 카미유 클로델 / 로댕은 이 작품을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성숙>




<폴 클로델의 흉상>, 카미유 클로델
<웅크린 여인>, 카미유 클로델
<페르세우스와 고르곤 메두사>, 카미유 클로델




<왈츠>, 카미유 클로델





<애원>, 카미유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 오귀스트 로댕




<다나이드> 로댕이 카미유를 모델로 작업한 작품


<Aurora>, 로댕이 카미유를 모델로 작업한 작품



<오귀스트 로댕>, 카미유 클로델




<생각, La pensee>, 로댕이 카미유를 모델로 작업한 작품







노년의 카미유 클로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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