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지만 두렵지 않았던 때
2017년 중국말 한마디 못하는 상황에서 어찌어찌하다 중국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법인 설립부터 시작하여 직원을 뽑고 제품을 만들어 배송하기까지 대체 어떻게 한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해보이는 도전이었다. 그 당시 20대 후반이던 나는 그저 해외 생활이 좋아서, 혹은 회사가 좋아서 앞으로 겪을 어려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살던 도시 심천]
내가 간 지역은 중국 광동성의 실리콘 밸리라 불리는 심천(shenzhen)이었다. 당시 심천은 이미 성숙기에 들어서 있었는데, 엄청난 발전으로 일반적인 중국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도시 인프라 중에 가장 중요한 교통망은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공유 자전거로 너무나 잘 갖춰져 있었다.
위 사진은 내가 처음으로 살던 남산 지역의 사진이다. 심천의 중심가 중에 하나이며 한창 한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으나 심각한 임대료 상승으로 점점 한인들은 밀려나고 있었다. 리어카와 전기자동차가 함께 뒤섞여 다니던 미래도시와 옛날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 위챗 혹은 알리페이를 통한 지불 방식이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오히려 금융에서는 중국이 훨씬 앞서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심천에서 걷다보면 아주 가끔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천은 계획도시로 노숙자들이 발견되면 도시에서 쫓겨나기 때문에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만 저녁때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보면 가끔씩 중국어로 도와달라는 말을 써놓은 팻말을 목에 걸고 있는 사람들이 와서 QR 코드를 보여준다. 현금을 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위챗페이, 알리페이를 쓰기 때문에 구걸도 이체를 통해 받는 것이다.
심천이 유명해진 이유는 화창베이 때문이었다. 전자상거래가 본격화되기 전 많은 전자제품은 심천 화창베이에서 구할 수 있었다. 화창베이에서 아이폰 만들기 같은 컨텐츠 등으로 화창베이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 알리바바의 등장으로 지금의 화창베이는 우리나라 낙원상가 같은 느낌이 된 듯 하다.
또한 심천에는 위챗을 개발한 텐센트, 전기차 비야디(BYD), 중국 대표기업 화웨이, 아이폰을 제조한 폭스콘 등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높은 물가와 지방 정부와의 갈등 (혜택 문제로) 심천 외곽 지역으로 흩어졌다. 심천은 그만큼 세계적인 기업들이 혹은 중국 대표 기업들이 태동한 곳이었다.
[폭스콘 방문기]
처음 폭스콘에 프로젝트 논의차 방문했을 때 2가지 놀랐던 점은 생각보다 첨단 시설이 아니라는 것과 그 유명한 철창이 있는 기숙사의 모습이었다. 아이폰을 만든다고 하여 처음에 매우 기대를 하고 방문하였으나, 그런 시설은 우리가 직접 볼 수 없었고 외부의 다른 공장만 볼 수 있었다. 폭스콘은 공장의 연합체 같은 형태이기 때문에 첨단 시설의 공장도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허접한 시설의 공장도 있었다. 우리 회사가 의뢰하려던 프로젝트는 스마트폰 악세사리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급이 좀 낮은 공장으로 배치가 되었던 듯하다.
폭스콘의 높은 노동 강도로 인해 스스로를 해치는 노동자들이 많아서 폭스콘 기숙사에는 철창이 쳐져있다.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수십개의 공장을 가보았지만 가장 회색지대 같은 느낌의 공장은 폭스콘이었다. 생산직 중에서는 비교적 좋은 보수와 대부분 기숙사를 제공했기 때문에 농민공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 대부분 비숙련 노동자이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한다) 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주거를 해결할 수 있어서 초반에 폭스콘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반복적인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이러한 불상사가 생겼으리라.
심천은 혁신적인 기업가, 농민공들의 노동력 그리고 중국 정부의 의지로 키워진 계획도시였고 찬란하고 화려하며 비밀이 많은 귀부인 같은 도시였다.
다음 편에서는 중국에서 법인 설립을 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이 글이 몇편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5년간의 중국 분투기를 기록하며 그 때의 중국 속에서의 나를 추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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