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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Sep 19. 2023

K에게

 안녕, K. 네가 될 수도 있었던, 그러나 되지는 못한 ‘나’야. 살면서 네가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은 많은데 어쩐지 말을 걸어본 기억은 나질 않아. 내가 사는 세상에 네가 존재하지 않아서인지 내 무의식이 실재하지 않는 너를 거부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너를 떠올리는 일이 매번 썩 유쾌하진 않았단 거야. 그건 그만큼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에서 오는 부당함에 설움과 분노, 두려움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겪어야 했다는 뜻이기도 해. 인생에는 수많은 희로애락이 함께한다는데 꼭 그 감정들이 공평하게 찾아오는 건 아닌가 봐. 지금까지 내 인생은 대체로 노(怒)와 애(哀)로 점철된 삶이었거든.


 ‘또?’라는 낙담 속에서 터트린 나의 첫 울음을 생각해. 내가 태어나던 날까지도 어른들은 모두 너를 기대했대. 나를 사랑으로 키워준 외할머니까지도.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 태어난 건 나였고 다들 실망을 금치 못했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와 가까운 어른들은 위로랍시고 ‘네가 아들 같은 딸이 되면 된다’라는 말을 꼭 마침표처럼 찍곤 했어. 농담처럼, 덕담처럼 오가는 이 말을 수십 번씩 들으며 자랐던 걸 기억해. 지나고 보니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때부터 차츰 쌓였던 것 같아. 나 아닌 너 되기. 나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강박. 고백하건대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로 여겼어.


 그래서일까? 가끔 내가 너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봤어. 여자가 아닌 남자. 'K’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내 모습 말이야. 출생의 순간부터 모든 어른들에게 예쁨 받았을 그 모습. 네가 왼손잡이가 되었을지 오른손잡이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너라면 왼손잡이라는 것 따위는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지 몰라. 

 여자인 주제에 왼손잡이기까지 하다는 이유로 명절 때마다 친할아버지의 미움을 사는 일이나, 식사 때 수저를 들기도 전에 마당으로 쫓겨나는 일은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교탁 옆에 붙인 책걸상이 내 지정석이 될 일도 없었을지 모르지. 받아쓰기를 할 때마다 선생님이 내 옆에 붙어 서서 연필 쥔 내 손을 감시하는 일, 나를 주시하는 선생님을 마주 보고 앉아 힘없는 오른손으로 서툴게 수저를 움직이느라 점심시간이 다 끝나도록 급식실에 앉아 있어야 했던 일, 그래서 자주 체했던 일 같은 건 너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절대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 모멸감과 주눅 들었던 기억이 대부분인 유년 시절이라니. 그건 누구에게라도 가혹한 삶이지 않니.


 또 다른 상상을 해. 내가 너로 태어났다면 조카를 예뻐해 주느라 강압적으로 스킨십하는 삼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거라는. 할머니 손에서 커야 했던 어린 시절, 삼촌이 퇴근할 시간만 되면 옷장 속에 들어가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쥐며 숨어 있지도 않았겠지.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스킨십이라면 질색팔색하는, 치를 떠는 인간이 될 일 따위도 너였다면 없었을 거야. 어쩌면 삼촌은 그렇게 나를 억지로 끌어안으려고 하거나, 강압적으로 뽀뽀하려고 들지 않았을지도 몰라. 다 큰 고등학교 3학년 남자 조카에게 아직도 뽀뽀와 포옹을 바라는 삼촌이 얼마나 되겠니? 네가 아닌 난 지금도 스킨십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만져지는 게 미치도록 싫어. 언제 극복할 수 있을까. 딱히 극복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말이야.


 내가 너였다면 스토킹도 당하지 않았을 거야. 경찰에 신고해 봤자 소용없는 세상, 내가 다치지 않는 한 나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공포. 그 공포감 때문에 한동안 밤에 돌아다니지 못했던 걸 생각할 때만큼은 내가 너로 태어났었더라면.. 하고 절실히 꿈꿔 보게 돼. 너로 살았다면 난 조금만 사위가 어두워져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습관을 갖지 않았을지 몰라. 밤이 되면 아파트의 현관문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그는 습관도.


 지금이라도 네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아니 사실 모르겠어. 나는 너로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순 없는 거잖아. 인생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너로 태어났다고 한들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겠지. 나도 알아. 그래도 내가 너였다면 지금처럼 숨 쉬듯 일어나는 차별에 분개하거나,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일상에 심한 피로감을 느끼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맞아, 나로 살아오면서 불행한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야.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 오복이를 만날 수 있었던 일, 독서가 내게 준 충만한 삶, 말하는 행위에 지칠 때마다 걸으면서 팟캐스트를 들었던 시간, 탐조라는 충만한 세계에 들어서게 된 일 등.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나에겐 소중한 것들이 많아. 곁에서 나를 지지해 주고 애정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는 지금의 삶에 감사하기도 해.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니. 아마 어렸을 때의 나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야.


K,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녹록지가 않아. 알면 알수록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는 게 삶인 것 같아. 그래도 살아야겠지?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나’와 ‘강아지’가 있고 아직은 하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나 이제 그만두려고 해. 네가 되지 못한 나를 자책한다거나 될 수 없는 너를 상상하고 선망하는 일 말이야. 나는 그냥 내가 되기로 했거든. 더 이상 나 아닌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 애쓰지 않을 거야. 그저 어느 팟캐스터의 말처럼, 내 아픔도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작은 기대를 걸어 볼래.

 그렇다고 너무 섭섭해하진 마. 너를 아예 잊어버리겠다는 말은 아니니까. 가끔은 너를 생각할게. 웃음으로도 아픔이 가려지지 않는 날에. 울음이 웃음이 되지 못한 날, 그래서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지는 날에도. 생각하는 걸로도 마음이 달래지지 않으면, 그땐 다시 너에게 편지를 쓸게. 네가 있는 곳이 어디든 잘 지내고 있길 바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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