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 이맘때 밤의 공원은 존재들의 소란으로 무성하다. 나무의 잔가지마다 뻗어 나온 잎사귀와 녹빛 이불을 폭신하게 덮은 땅. 아직 몸집을 다 키우지 못한 곤충들이 땅과 하늘 사이를 분주히 넘나들고, 5월의 훈풍을 맡기 위해 개들도 이 밤에 모여든다. 네 개의 발바닥이 공원 바닥을 밀어낼 때, 토독토독 경쾌한 소리가 비눗방울처럼 터진다. 보송한 털로 뒤덮인 몸들이 뭉뚝한 다리를 앞뒤로 재빨리 흔들며 나아가는 모습. 꼭 땅에 뜬 구름 같다. 그리고, 개와 줄로 이어진 사람들. 혼자 또는 함께 공원을 거니는 저마다의 몸들. 벤치에 걸터앉거나 삼삼오오 공을 주고받는 무리까지. 야밤의 활기, 그 중심에 달이 있다. 높게 뜬 보름달이 공원을 환히 비추는 밤.
이 소란의 대열에 나도 매일같이 합류한다. 실외 배변만 하는 나의 개와 함께. 이따금 음주 산책을 즐기면서. 특히 휴일을 목전에 둔 밤. ‘초여름’, ‘금요일’, ‘밤’이라는 낱말의 조합이 음주 산책을 향한 나의 욕망을 부추긴다. 오늘은 이웃 주민 D도 함께다. 한 손엔 차가운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를, 다른 손엔 개의 리드줄을 쥔 나와, 똑같은 맥주 한 캔과 매콤짭짤한 봉지 과자를 각각의 손에 쥔 D.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 공원의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무선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면서. 일터에서의 고단함이 한 김 식고 표정에 여유가 감돌기 시작하는 건 아마도 지금 이 순간부터.
다린의 <serenade>앨범 속 전곡을 재생한다. 오늘 막 발매된 따끈한 새 음반. 듣자마자 내 안을 파고드는 찌르르한 감각. 그건 말하자면 내가 이 앨범을 오래도록 사랑해 마지않을 것이라는 직감이겠고. ‘저녁음악’이라는 뜻을 지닌, 밤에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인 세레나데를, 상쾌한 밤공기 들이마시면서 듣는 이 기분을 ‘충만하다’는 단어 없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귓속으로 흘러들어 심장이 놓인 자리에 정확하게 와닿는 선율. 다시, 심장에서부터 온몸으로 번지는 저릿한 감각. 차츰 느려지는 발걸음. 힘을 뺀 걸음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그림자와 슬리퍼 뒤축에서 퍼지는 쓸쓸한 소리가 공명하는 밤. 거기에 식도를 훑고 가는 맥주의 청량감까지 더해지면 쾌락의 밤산책이 완성된다.
듣고, 걷고, 마시면서 드문드문 D와 한 주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대체로 안녕할 수 없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너무 긴 시간을 혼자 앓던 게 습관이 됐는지 나는 아픔을 누군가에게 잘 털어놓지 못한다. 대신 안녕했던 순간을 떠올려 볼까. 아침에 눈 떴을 때, 이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개의 새까만 눈동자를 응시하는 순간이라든가. 집과 관련된 대출 문제로 방문한 은행에서 직원의 친절한 응대에 울컥했던 마음 같은. 주차난이 심각한 아파트 주차장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들어섰을 때 주차의 행운을 누렸던 날들의 소소한 기쁨도. 간신히 쥐어짜낸 기억을 허공에 부려 놓는다. 왠지 더 초라해지는 기분. 구태여 모든 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한다.
앞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맥주 한 캔. 뺨을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 한 줄기. 완벽한 선곡에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나와 속도를 맞추는 두 개의 그림자. 주기적으로 내 입에 과자를 넣어주는 D의 다정한 손. 보름달을 향해 자꾸만 치켜드는 턱. 순간을 붙잡아 마음속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널어둔다. 내내 발목을 잡아끌던 무력감이, 소화되지 않는 매일을 꾸역꾸역 삼키느라 명치를 꽉 누르던 갑갑함이 잠시 멀어진다. 토할 것 같은 울렁거림은 그대로지만, 이건 다른 원인에서 발현된 증상이란 걸 안다. 너무 좋아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니까.
세상이 왜 이렇게 말이 안 되지, 어째서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지 중얼거리는 날들을 헛돌다가. 문득, 고작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깊은 우울을 우습게 치워버릴 수도 있다는 건 말이 되나 생각하는 밤이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으면서도 딱 이렇게만 살아도 괜찮겠다는 양가적인 감정. 잔디 같은 모순이 발등을 덮는다. 이렇든 저렇든. 어떤 날에도 삶은 계속되고. 다음날도, 또 그다음 날에도 우리의 산책은 계속돼야 하므로. 훼손됐지만, 훼손된 채로 더 살아보고 싶게 하는 장면들을 어둠 속에서 더듬는다. 보름달에 비추어 본 장면들을 가져다가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는다. 이어서 오늘 책에서 만난 문장 하나 끌어다 그 옆에 살포시 눕힌다. “어둠을 선물하여 빛을 확인하도록 도우는 것.”*
그러니까 이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소야곡.
(24.05.24)
*이혜미, 영원과 하루, <흔적과 자취가 되어 나아가기>, 9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