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 blue dot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는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부른다. 그렇게나 광활한 우주에서 내가 사는 지구는 그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작은 점 안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학부시절, 종교철학 수업에서 한 학기 내내 교수님이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열띤 논증을 하시는 동안, 내 관심은 오로지 하나였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얼마나 운명론적이고 필연적인 존재인가.’ 교수님은 절대자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는 인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물리법칙의 확률은 너무나도 희박하다고 말씀하셨다. 분명, 유신론의 근거로서 제시된 바였지만, 이상하게 내 초점은 그 희박한 가능성이야말로 내가 존재해야 하는 그 필연적인 근거가 아닐까. 하는 것으로 흘러갔다.
그러므로 더욱 ‘잘’ 살아야겠다고, 0에 수렴하는 그 가능성을 품고 존재하는 만큼 ‘잘’ 존재하자고 생각했다.
일상생활에서 우연이 곧 필연이 되는 경우는 꽤나 흔하다. 그저 이름의 가나다 순서대로 초등학교 옆 자리에 앉았던 짝꿍이 평생의 친구가 될 수도 있으며,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이 학창시절 내내 장래희망 칸을 채우는데 기여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삶은 우연이 운명으로 매순간 둔갑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라던데, 실은 온 우주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개척할 수 있는 수많은 우연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