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더라? 고등학교 체육관에 모여서 친구들이랑 콘서트를 봤던 것 같은데,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보통은 꿈을 꾸었다는 자각이 없을 정도로 꿈의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대학교 1학년 때, ‘간밤에 꾼 꿈’이라는 과소모임에 가입했다. 말 그대로, 간밤에 꾸었던 꿈을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덤으로 술도 마시는 그런 모임이었다. 그때의 난 잠에서 깨면 꿈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쯤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꿈의 한 자락을 부풀려서 소설을 쓰곤 했다. 함께 소모임에 가입했던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러나 소모임을 만든 선배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 선배는 하루치 꿈의 내용이 A4용지 두 장을 채 못 미칠 정도로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꿈을 기억했으며 또 다른 선배는 자각몽을 꾸면서 마음대로 꿈을 통제하기도 했다. 마치 영화의 줄거리처럼 선배들이 꾸는 꿈은 다채로웠고,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꽤나 본능에 충실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을까,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꾼 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에서 깨자마자 사라지는 꿈의 끝을 잡고 부랴부랴 눈을 감고 메모장에 이를 적었다. 그러다가 타자속도가 꿈의 내용이 사라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녹음기를 켜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메모장과 음성녹음을 훑어보면 수많은 오타와 뭉개진 발음이 대부분이지만 해리포터에서 지팡이를 관자놀이에 대고 은빛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펜시브에 쏟아 붓는 것처럼, 꿈의 내용이 머릿속에 점점 시연되기 시작한다.
꿈은 내 일상에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매일 꿈에서 깨고 나서 짧게는 10분, 길게는 하루 종일 꿈에 대한 생각을 한다. 자연스레 꿈의 메커니즘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책도, 꿈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나를 만족시켜주지는 못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꿈은 아직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매일 밤 방문하는 꿈나라의 모습은 무척이나 다채롭다. 어제 스치듯 인사했던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러브 액츄얼리’를 찍는가하면, 갑자기 건물 옥상에서 깨어 파쿠르를 하면서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생존하는 ‘워킹데드’를 찍기도 한다. 산 속에서 지프차를 타고가면서 야생의 동물들의 습격을 피하는 ‘쥬라기월드’의 한 장면이 시작되기도 하고 생전 보지도 못한 심해어가 가득 들어찬 수조가 깨지면서 고등학교를 탈출하는 ‘지금 우리학교는’을 찍기도 한다. 내게 꿈을 꾸는 것은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잠에서 깨고 나면, 그 뒷부분이 궁금해 다시금 잠에 드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얼마 전 본 영화에서 말하길, 꿈은 평행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내 모습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또 다른 우주의 나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결심했다. 이 우주의 내 모습을 꿈에서 만날 또 다른 나를 위해 매일을 환상적이고 짜릿한 일로 채워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