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wurf Sep 02. 2021

HAPPY NEW YEAR!

붕어빵과 호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고는 옷장에 넣어두었던 롱패딩을 꺼내 입는다. 겨울이 왔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있는 겨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지난해 겨울은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행복하게 보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더욱이 작년의 기억들이 그리워진다.


12월 초 교환학생으로서 파견교의 종강과 함께 한 달간의 미국 여행을 시작했다. 출발 전, 혼자 하는 여행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동반자를 찾아 헤맸고 마침 절친한 동기 역시 교환학생을 마치고 미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여 일사천리로 예약을 진행했다. 시카고와 플로리다에서의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 12월 23일, 뉴욕에 도착했다.


12일 동안 뉴욕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뉴욕을 즐기기에는 12일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먹고, 놀라고, 이야기하고, 웃고, 울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지만 그중 지금까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는 것은 바로 2019년 12월 31일, 새해 전 날의 기억이다.


2019년 12월 31일, 뉴욕 타임스퀘어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그리 특별할까 싶지만, 세계적으로 뉴욕 타임스퀘어의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는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친구의 버킷리스트였다. 나 역시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엄청난 인파와 몇 시간 동안의 기다림 때문에 조금은 망설이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와 친해지면서 새해맞이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일행과 함께 단둘이 타임스퀘어에 갈 예정이었는데, 장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니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이왕이면 사람들을 더 모아서 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고민했던 나는, 어느새 눈을 떠보니 12월 31일 오전 8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숙소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기다림 넘어 기다림, 2020년 1월 1일


타임스퀘어 볼 드롭 행사를 자정까지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몇 가지 고비가 존재했다. 첫째, 타임스퀘어에 최소한 13시간 전부터는 자리를 잡아야 한다. 둘째, 따로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서있거나 신문지를 가지고 가서 잠깐씩만 앉아야 한다. 셋째,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절대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 따라서 거의 13시간을 영하의 온도에서 서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누군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기저귀를 준비한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전날 저녁부터 식사를 하지 않고 조그만 간식만을 먹으면서 물을 조금씩 마시는 등 결연하게 의지를 다졌다.


2020년 타임스퀘어 새해맞이를 함께 보러 가기로 한 사람들은 모두 5명이었다. 나, 내 친구, 룸메이트, 룸메이트의 일행, 그리고 룸메이트의 일행의 룸메이트. 타임스퀘어 행사는 오후 8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자정을 넘겨서 끝난다. 원래 이전의 후기들에 따르면 보통 오후 1시나 3시쯤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올해의 변수는 바로 방탄소년단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축하공연이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예상했고, 따라서 일찍 도착하기로 계획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타임스퀘어에 도착했다.


13시간을 버티기 위한 간식


일찍 간 덕분인지 무대와 볼 드롭 모두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그때부터 기나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다리가 아파서 잠깐 맨바닥에 앉기도 하고,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일행들과 온갖 종류의 게임을 하기도 하고, 방탄소년단의 리허설 무대를 구경하기도 하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이 남자,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묻고 어설픈 스페인어 실력을 뽐내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 8시부터는 정각마다 카운트다운 예행연습이 시작되었다. 10부터 1까지 카운트다운을 하고 하늘에서는 꽃가루가 내려왔다. 주변에서는 풍선과 모자를 나눠주기도 했다.


사랑을 가득, 최고의 연말선물


뉴욕 타임스퀘어 새해 볼 드롭 카운트다운 행사


결국 11시 59분이 되고 기나긴 기다림 끝에 타임스퀘어에서 볼 드롭을 보며 새해를 맞이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꽃가루는 마치 눈이 오는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과 함께 한목소리로, 한마음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던 기억은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짜릿하다. 카운트다운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하나같이 설렘과 행복, 즐거움이 가득했다. 지금도 눈을 감고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당장 가슴이 뛰면서 나도 모르게 싱긋 웃게 된다.


새해의 타임스퀘어에는 오직 사랑만이 존재했다. 각기 다른 인종, 성별, 정체성,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두가 설렘을 안고 사랑을 했다. 함께 온 가족, 연인, 친구는 물론이고 함께 카운트다운을 기다렸던 낯선 이들과 함께 새해를 축하하는 모습에서도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2020년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며 저마다 무언가를 다짐하고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한마음으로 내년엔 사랑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길 바랐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날,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서 2020년을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함과 사랑을 얻었다. 혹시나 다가오는 새해에 벌써부터 지쳐 한숨을 내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12월의 마지막 날 뉴욕의 타임스퀘어로 떠나보는 것은 어떠할까.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그 시간, 그곳에서 사랑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하루만 시차를 변경해보자. 방구석에서 타임스퀘어 볼 드롭 행사의 생중계를 보면서 새해를 맞는 것도 분명 따뜻한 경험일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도 주지 못하는, 상상 그 이상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니. 

작가의 이전글 그녀는 쿨한 여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