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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n 28. 2023

각박한 이 사회에 사랑이라도 있어야

Eature 시리즈 여섯 번째, 드라마 [멜로가 체질]

INTRO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면 알바나 일을 해서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고, 여행도 마음대로 다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를 가게 되니 고등학교 뺨치게 공부할 것도 많고, 남의 돈 버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걸 깨닫습니다. 부모님 용돈 타서 쓰는 시절이 참 좋은 거더라고요.


그래도 좀 더 자라 직장인이 되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는 것과 같이 소위 말하는 '어른'의 삶을 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탄탄한 커리어, 든든한 주변인들,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전제 하의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어요. 네, 실상은 나이 30이 다 되어가도록 저는 아직 집을 나오지 못했으며, 물경력에, 친구도 없는 황량한 삶을 살고 있네요.


그리고 저처럼 나이 30을 걱정하는, 웃고 슬픈 세 여성의 삶을 그린 드라마가 있는데요, 사실 이 작품을 할까 말까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인생 드라마라고도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이긴 했는데 시청한 지 오래되어 내용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다시 보자니 넘쳐나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볼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도 짧게라도 어째서 이 드라마가 인생 드라마가 되었던 것인지를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서른 살의 세 여자의 현실적인 삶을 그린 드라마, <멜로가 체질>입니다.




STORY

서른, 견디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서른 살 이기에 아직 꿈을 꾸는 그들.
일과 연애에 대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으며 한 걸음씩 성장하는 서른 살 그녀들의 판타지.
비록 현재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을지라도!
이룬 것이 단 하나도 없을지라도!

그래도 꿋꿋하게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모든 서른 들에게 이 드라마를 바친다.


<멜로가 체질>에는 서른 살을 맞이한 세 명의 여자들이 한 집에서 살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 번째 주인공 임진주(배우 천우희).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의 보조작가로 일하지만 만만치 않은 성격으로 인해 해고당합니다. 그러다 손범수(배우 안재홍) 드라마 감독의 눈에 띄게 되어 드라마 메인 작가로 데뷔, 일련의 사건 사고들이 터집니다.


두 번째 주인공 황한주(배우 한지은). 드라마 제작사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는 워킹맘입니다. 대학생 때 만난 남자친구와 단 하룻밤만에 아이가 생기게 되었는데, 아이의 아버지란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며 한주와 아이 모두를 버리고 떠납니다.


세 번째 주인공 이은정(배우 전여빈).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다큐를 찍으면서 만난 투자자와 연인이 되었지만, 병으로 일찍 죽고 이를 같이 따라가려 합니다. 뒤늦게 진주와 한주가 이를 알고 은정의 집으로 들어와 셋이 같이 살게 됩니다.


이들의 앞을 기다리고 있는 좌충우돌 우당탕탕(..) 일상&연애 스토리. 드라마이면서도 현실과 별반 다를 거 없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마치 친구와 야식 먹으면서 나누는 것만 같은 그런 드라마입니다.




COMMENT


굶으면 허기가 오고 채우면 외로움이 오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여자들은 그런 말 많이 듣잖아요?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다', '서른 넘어가면 꺾인 거다' 뭐 대충 그런 말들. 이런 말들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대학교를 다닐 땐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 게 좀 두려웠습니다. 나이 먹고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으면 어쩌지? 늙었다고 어디 가서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에요. 나이 앞자리의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던 와중 보게 된 드라마가 바로 이 <멜로가 체질>이었어요. 29살에서 한 살 더 먹어 30살이 된 세 여자의 동고동락하는 삶.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결국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는 게 느껴집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어른들의 말도 생각나고요.


드라마 속 세 주인공은 앞자리 나이가 3이 되었지만 삶이 달라진 건 없어요. 그들은 여전히 친구이고, 회사 사람들은 하나 같이 거지 같고, 집에서 모여서 치맥하는 이 휴식이 너무 달콤하다고 느낍니다. 물론 지내는 와중에 새로운 인연이 생기기도, 끊기기도 하고, 거주지가 바뀐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순 있지만 그건 인간사에서 당연한 일인 거지, 당장 '나'라는 사람이 사라져 버린다거나 갑자기 인종이 바뀌어버린다든가 하여튼 그렇게 격변하게 된다는 건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그저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는 게 그런 건데 좋았던 시간, 기억 약간을 가지고 힘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시간을 버텨내는 것



다소 철학적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드라마에서는 연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또, 드라마이기 때문에 연출된 장면이겠지만서도 세 사람의 자연스러운 연애가 현실에서도 있을 법해서 몰입도가 높았어요.


진주는 범수와 만나 로맨스코미디 같은 연애를 하고, 워킹맘 한주에게도 다가오는 남자가 있지만 그녀는 현실을 택합니다. 또,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을 꾹 닫은 은정에게도 그 문을 조금씩 여는 남자(이 남자가 손석구 배우인 것은 굉장히 뒤늦게 알았습니다..)를 만나게 되었고요. 특히 진주x범수 커플은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유쾌하고 재밌어서, 저도 저렇게 연애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존쎄 두 명이 만나면 저렇게 노나보다 싶었습니다.


사실 이 셋은 "반드시 연애를 해야만 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에 벅찼고, 일 하고 집에 와서 그냥 셋이서만 놀아도 재밌거든요. 그럼에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는 걸 보면 천상 멜로가 체질이었나 봅니다.


또 그들이 얘기하는 사랑이란 건, 아주 위대하고,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멜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헤어졌다 극적으로 다시 만나고, 서로 없으면 죽고 못 살 것만 같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살아가는 일상 중 한 부분일 뿐이에요. 물론 상대방이 너무 좋아서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내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고, 생각보다 사랑 자체는 단순하고 담백한 것이에요. 서로가 좋으니 연애를 시작하고, 서로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 헤어집니다. 잘해주고 싶어서 잘해주고, 보고 싶으니 만나러 오고,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툽니다. 그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감정과 표현 중 일부분들일뿐이에요.


사랑이란 내 일생에 있어 큰 부분으로 자리 잡을 순 있겠지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닌 것. 오로지 사랑만을 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또 다른 행복으로 사랑을 경험하는 것. 저는 드라마를 통해 그렇게 느꼈어요.



괜찮아. 사랑했던 사람은 원래 평생 신경 쓰이는 사람으로 남는 거니까.




OUTRO

인기 있는 드라마여도 제 기준에 조금 흥미가 떨어진다 싶으면 보는 텀이 굉장히 길어지게 되는데, <멜로가 체질> 드라마는 쉼 없이 시청한 작품이었어요. 주말에는 누워서 하루 종일 그냥 아이패드만 붙잡고 있었을 정도로요. 그때 당시 재택근무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 데 옆에 틀어놓고 일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알았는데 <멜로가 체질> 연출/극본을 맡으신 분이 영화 <극한 직업>과 <스물>을 만든 이병헌 감독분이더라고요. 어쩐지 드라마가 유쾌하고 재밌더라니. 저는 이런 개그코드가 취향인 듯싶습니다. 영화 <극한 직업>을 굉장히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이 드라마도 정말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30이라는 숫자가 아직 두려운 20대 여자라면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바뀔지 모를 앞날이 걱정되고 무서운 건 모두들 그렇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체를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더라고요. 20대에 비해 체력이 떨어지는 것 이외에는..





'취향을 공유합니다' 시리즈의 글을 마지막으로 작성했던 것이 작년 12월 말이더라고요. 반년 동안 이런저런 드라마, 영화, 만화, 웹툰 등 많은 것을 보긴 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을 글로 옮길 만큼 구미를 당기는 작품이 많지 않았기도 했고, 몇 가지 생각해 둔 작품들은 내용이 너무 길어 축약하거나 글로 옮기기가 어렵네요. 1~2시간만으로 모든 것을 담으(려고 노력하)ㄴ '영화'라는 매체가 글을 쓰기에 제격이긴 한데, 영화 속 미장센을 모두 느끼거나 그 안에 숨겨진 감독의 의도들을 알아차리기에는 무언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더라고요. 세상 사는 게 힘드니 생각 없이 보는 걸 더 선호하는 성향으로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더라고요. 자꾸 그렇게 생각 없이 봐도 되는 것만 보면 제가 정말로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운 느낌이 듭니다. 요새 영상 트렌드인 쇼츠가 사람들의 생각하는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다시 한번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멜로가 체질 포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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