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ure 시리즈 다섯 번째, 일드 [MIU404]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주로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수사, 의학 쪽입니다. 뭐랄까 로코물이나 멜로물은 정말 열심히 한다면(?) 직접 경험해볼 수 있겠지만, 미스터리나 스릴러는 몸소 체험하기에 무섭고 어렵거든요. 곤지암 영화를 무서운 맛으로 재밌게 봤는데, 그렇다고 곤지암 정신병원에 들어갈 수도 없고요. 의학물은 제가 의사가 될 만큼의 좋은 머리를 가지지 못해서 진즉 포기한 분야고요.
그래서 제 기억에 강하게 남은 작품들을 나열해보자면 타짜, 결백, 괴물(드라마), 빙과 등이 생각나네요. 언젠가 브런치에 소개할 작품들인데 이렇게 스포일러를 해버리다니. 그러다가 또 다른 걸 발견해버렸습니다, 정말정말 재미있는 범죄 수사물을요.
노래로 시작했다가 드라마에 입덕 해버린, 두 남자의 티키타카 캐미스트리가 돋보이지만 그 와중에 교훈은 놓치지 않은 일본 드라마 <MIU404>입니다.
사건의 초동 수사를 담당하는 경시청 '기동 수사대'의 두 형사가 24시간이라는 시간제한 안에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네이버에서 설명해주는 드라마의 시놉시스나 간단한 스토리 설명은 저게 다입니다. 약축을 해도 너무 줄여버린 느낌이 강한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필요한 정보는 또 다 들어가 있더라고요. 다만 설명에는 24시간이라고 한정되어 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24시간을 넘어 밤샘도 하고 그러기도 합니다. 마지막 보스를 잡는 데에는 며칠 씩이나 걸리기도 하니까요.
Mobile Investigative Unit, 통칭 MIU는 기동수사대로 사건이 일어날 시 누구보다도 빠르게 현장에 도착하여 사건의 초동 수사를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말 그대로 초동이기 때문에 현장이 훼손되기 전에 가장 먼저 현장을 조사해야 해요. 피해 상황이 어떠한지, 피해자는 어떤 상태인지, 목격자는 없는지 등을 조사합니다. 이후 제대로 된 수사는 형사과 등에서 진행을 하게 되고요.
주인공 시마 카즈미(배우 : 호시노 겐)는 본디 경찰청 수사 1과에 있었지만 사정으로 인해 기수 대장 키쿄의 운전수로 지내다 이후 MIU 4기수 설립과 함께 부서로 복귀합니다. 형사들은 2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자신과 함께하게 될 파트너 '이부키 아이'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묻고 다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어... 발은 빨라..." 뿐. 그렇게 처음 마주하게 된 자신의 파트너 이부키 아이를 본 시마의 소감은... 네, 발이 빠르네요.
시마는 관찰력과 사고력이 뛰어난 캐릭터로 현장을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편입니다. MBTI로 치자면.. 한 줄 요약에는 틀딱이라고 되어있는 ISTP 같달까요. 대강 그런 성격입니다.
다음은 시마의 파트너 이부키 아이(배우 : 아야노 고)입니다. 이부키는 여러 부서를 전전하다 MIU의 4기수로 들어오게 됩니다. 4기수로 들어오기 이전에는 오쿠타마 파출소에서 8년 가까이 근무했다고.. 4기수가 되어 처음 맡게 된 일이, 초동 수사만 진행하고 범인을 직접적으로 잡으러 가지 않는 기수가 시시하다 생각했지만 본인(과 시마)의 수사로 범인을 특정 짓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니 기수를 천직이라 느낍니다.
시마 : 기수는 좋네. 누군가가 최악의 사태가 되기 전에 막을 수 있잖아 엄청 좋은 일이잖아
바보지만 쓸데없이 감이 좋아 시마로부터 '야생 바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 시마와는 정반대로 머리보단 몸이 먼저 움직이는 타입으로, 약간 잘 큰 짱구 같은 느낌이랄까요.
둘의 성향은 지극히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종종 커뮤니케이션에 충돌이 일어나고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해요. 원칙주의자인 시마의 판단은 오히려 너무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켜 일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부키의 추진력, 돌진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 이부키도 너무 저돌적인 성격급발진 탓에 자제가 필요한 타이밍에는 시마가 목줄이 되어주고요. 정반대인 각자의 성격이, 오히려 상호보완적이 되었달까요. 그래서 둘의 케미가 더 돋보이는 드라마였습니다. 둘이 해결해 나가는 에피소드들도 하나 같이 보석 같았고요.
그리고 같은 기수의 경찰청 형사국장 아들 코코노에 요히토, 4기수 반장 진바 코헤이, 1/4기수 대장 키쿄 등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세간에 이런 밈이 있습니다.
미국 의학 드라마 : 환자를 치료한다.
미국 수사 드라마 :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를 한다.
일본 의학 드라마 : 환자를 치료하면서 교훈을 준다.
일본 수사 드라마 : 수사하면서 교훈을 준다.
한국 의학 드라마 : 병원에서 연애를 한다.
한국 수사 드라마 : 수사하면서 연애를 한다.
그런데 이게 진짜인 게 일본 드라마는 교훈을 넣는 경우가 정말정말 많아요. 제가 시청했던 일본 드라마에 교훈이 없는 경우가 거의 없었거든요. MIU404도 에피소드마다 머리를 띵 하게 울리면서 무언가를 깨닫는 사람들이 한 명씩은 있어요. 그리고 그 교훈은 그걸 보는 우리들에게도 하는 말일 거고요.
MIU404를 보기 이전에 <3학년 A반 - 지금부터 여러분은 인질입니다>를 먼저 시청했습니다. 재미있게 보다가 후반부에서 과한 교육적 장면들 때문에 집중도가 좀 떨어지더라고요. 드라마를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건지 대놓고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알려주기도 하고,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이 몸까지 내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 같더라고요. 각설하고, MIU404도 똑같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표현에 있어 부담스럽지가 않았어요.
<3학년 A반>에서는 익명으로 활동하는 SNS 사회 현상에 대해서 비판하는 내용이 주입니다. MIU404도 비슷한 노선을 탔고요. MIU404에서도 공중전화기를 통한 고등학생들의 익명의 장난전화 신고, 실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SNS로 퍼뜨려 사람을 고역에 빠트리게 하는 등의 사건을 통해 익명성을 강하게 비판해요. 일본도 인터넷을 통한 사회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느끼는 듯합니다. 하기야 일본은 저희보다 인구수도 훨씬 많으니까요.
특파원 REC* : 내가 아닌데.. 본명까지!!
시마 : 지금까지 당신이 밝혀 온 사람들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 인터넷에서 발견한 소재나 뉴스의 해설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나우튜버
또 MIU404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 주인공의 우두머리, 즉 기수의 대장(키쿄)이 바로 여성이라는 거요. 키쿄는 정말 유능한 대장입니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일부를 제외하곤, 모두 키쿄의 능력을 의심치 않습니다. 당장에 유능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시마도 키쿄를 동경하니까요. 그만큼 키쿄는 대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업적부터 열정까지 그 자리에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성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희한하게 구설수에 더 잘 휘말려요. 얼굴 예쁘다부터 미녀 대장이라는 외모 평가부터, 키쿄가 노력한 것에 대한 내용은 없고 일단 외적인 면모부터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번 실수를 하게 되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네티즌의 먹잇감이 되고요.
MIU 4기수는 비공식적인 부서입니다. 그래서 경찰청 홈페이지에 기수에 대한 설명에 나오지 않아요. 그러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4기수의 존재가 밝혀지게 되고, 왜 4기수에 대한 설명이 홈페이지에 없냐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웹/개발 쪽에 대해서 잘 모르는 키쿄는, 관련 부서 측에서 실수로 잘 못 알려준 내용을 읊었다가 바로 물어 뜯깁니다. 404 not found 뜨는 이유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프로그래밍 쪽은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알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기도 하고, 모든 일반인이 이 분야까지 섭렵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경찰이 컴퓨터를 쓴다 하더라도 웹이 어떻고 코딩이 어떻고까지 다 알리는 없고요. 그런데도 키쿄는 그렇게 모니터 속 사람들로부터 무수한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키쿄 : 난 말이야, 얼굴로 대장이 됐다는 거 다음엔 간부와 자서 출세해서 대장이 되었대. 유타카의 아빠도 그 간부래. 누구냐고?
시마 : 바보 천지네요.
키쿄 : 웃기지 말라 그래. 난 일 하고 있다고. 케케묵은 남자 사회 속에서 기죽지 않고 제대로 해 온 사람의 노력을 말이야.
왜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댓글창을 막아놓았는지, 왜 댓글에 익명성을 폐지하고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려오는지 일드를 통해서도 보여주네요.
여담으로 드라마에는 달리는 장면이 정말 많습니다. 차 타다가도 내려서 뛰고, 지나가다 보이면 뛰고, 급하면 일단 그냥 뛰고.. 그래서 그렇게들 말랐나 봐요. 달리는 내용은 이부키의 특성으로 넣어 놓은 컨셉이었을겁니다. 아야노 고 배우분께서 실제로 육상 선수인 경험도 있었기에 찰떡이구나 싶어서 추가되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힘차게 달리면서, 숨차면서 결국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에 성취감을 느꼈어요. 차를 타고 추격전을 펼치는 것보다 더 극적이고, 그들이 범인을 체포하는 것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더 높여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마 : ㅅ.. 살려줘..)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캐릭터가 한 명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 쿠즈미(배우 : 스다 마사키)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잠깐 등장합니다. 앞서 살짝 언급했던 익명의 장난전화를 했던 고등학생 중 한 명(나리카와 가쿠)이 404기수에게서 도망치는데요,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바로 쿠즈미입니다.(나~리~카~와~군~) 나리카와는 쿠즈미를 만나 어렵지 않게 가출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렇게 보면 쿠즈미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려운 사람들, 혹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을 이용해 마약을 유통하는 듯 본인의 이득을 취하는 악질 범죄자입니다. 본인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감추고서 타인에 대한 내용은 모두 캐내는 지능적이고 악랄한 사람이죠. MIU404의 최종 보스입니다.
'쿠즈 クズ'는 쓰레기란 뜻으로, 단순히 trash를 넘어 사람에게 사용할 시 욕이 되는 단어예요. 부모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절대 지을 수 없는 이름일 테니 본명이 아닙니다. 작중 후반에 '쓰레기(クズ-쿠즈)를 버리다(みすてた-미스테타)'를 줄인 의미라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쓰레기를 버린다면서 정작 하는 짓은 본인이 더 쓰레기인.. 본인을 버리려는 생각..?) 쿠즈미는 시마와 이부키와의 집요한 추격전 끝에 잡히게 되지만 이런 대사와 함께 묵비권을 행사합니다.
쿠즈미 : 뭐가 좋아? 불행한 성장? 비뚤어진 유소년기의 추억? 괴롭힘 당한 과거? 응? 어떻게 좋아? 나는, 너희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 거야.
쿠즈미의 마지막 대사는 지금까지 MIU404를 재밌게 보던 저에게 얼얼한 뒤통수를 안겨줬습니다. "드디어 라스트 보스 잡았다!"라고 생각했는데, 저 대사를 듣고 나서 쿠즈미는 그동안 보아온 범죄자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동안에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을 되짚어보면, MIU404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의 가해자/범죄자는 사실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숨기지 않고 보여줘요. 이걸 보는 우리들이 가해자들을 이해할 수 있게끔요.
제가 보는 네이버 웹툰 <제로게임>에서도 항상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사 없는 가해자는 없다"라고. MIU404도 그래요. 돈을 훔치고 도망갔던 사람은 과거의 일을 모두 청산했지만 결국 꼬리를 무는 전과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삶이 고달팠습니다. 살인자를 체포하는 일을 하던, 전 경찰관이었던 이부키의 은사는 자신의 아내를 뺑소니로 사망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 똑같이 살인자가 됐고요. 그들의 이야기엔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공감을 일으키기도 하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존재해요.
그렇다고 그들을 옹호해줘야 한다는 의미로 이를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이 사람들을 보고 "그래, 불쌍하니 봐줄게."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엔 주인공 페어에게 검거됩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이미 자각하고 있고, 대부분 참회하려 해요. 직장 상사를 살해하고 도망치다 노부부를 인질로 잡은 범인을 체포하면서 이부키는 "그래도 죽이면 네가 지는 거야.", "네가 범인이 아니길 바랐는데..."라고 얘기합니다. 역시나 이 범인도 과거에 참 안 좋은 일이 있었고요.
MIU404는, 과거에 무엇을 겪었든 간에 그것이 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과거를 감추려든 쿠즈미의 모습을 통해 이를 더 잘 보여줬고요.
MIU404는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드라마가 끝이 납니다. 그래도 저는 이 드라마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쿠즈미 한 명을 잡았다고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모든 범죄가 종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도 어딘가 다른 곳에서 범죄자가 피해를 저지르고 있을 겁니다. 또, 범죄자란 사람이 체포된다 해서 모두 교화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사이코패스처럼 정신이 온전치 못 해 자신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도 행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까요.
드라마를 보기 전에 별점과 후기를 먼저 보는 습관이 있는데요, '호시노 겐한테 입덕한다'는 리뷰가 정말 많았습니다. 표지나 썸네일 등에서 본 첫인상은 그냥 그랬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니까 왜 다들 리뷰를 그렇게 썼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여기다 쓰려고요. MIU404 보고 나니 이번엔 호시노 겐 필모그래피를 쭉 다 봐야겠습니다.
끝으로는 드라마 <언내추럴>의 Lemon만큼이나 BGM의 중요성이 돋보이는, MIU404 OST - 요네즈 켄시의 <감전感電>을 놓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감전이 좀 더 좋더라고요. lemon 노래는 드라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면, 감전은 일상에서도 신나게 듣기 좋달까요. 영상의 썸네일이 조금 가까이하기 어렵단 느낌이 들긴 하지만 노래만큼은 꼭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QEttrn6C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