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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 Sep 30. 2021

어린이의 주파수

어릴 때는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게 어려웠다.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좋거나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하는 것, 그리고 사과하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 친해진 어른들과는 그나마 대화할 수 있었지만 초면인 어른 앞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었던 말들은 항상 나오려다 말고 입안에 고여 흐르지 않았다.      


여섯 살 때, 유치원 체험학습으로 다도를 배우러 간 적이 있다. 다실은 시골 한적한 곳에 있던 걸로 기억한다. 도시의 소음이 없었고, 새와 유치원생들이 짹짹대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채웠다. 다실 안으로 들어가니 처음 보는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 마시는 법을 가르쳐줄 선생님들이었다. 광활한 다실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고요함을 깨고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참아보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열을 맞추어 앉았다. 다실 앞쪽에는 무대 같은 공간에는 다기가 놓인 책상들이 있었다. 순서대로 세 명 씩 올라와 차 마시는 법을 배울 예정이라고 했다.

첫 번째 순서의 아이들이 먼저 올라갔다. 나머지의 기다리는 아이들은 떠들 법도 했지만, 우리는 그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도 떠들지 않고 정자세로 앉아 숨도 죽이고 있었다. 다실에 깔린 숙연함에 나는 더욱 화장실 가겠다고 손을 들지 못했다.

하필 내 순서는 꽤나 뒤쪽이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상태로 상체를 기울였다가, 웅크렸다가, 다리를 달달 떨면서 내 순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을 때는, 미칠 듯한 배뇨감에 살짝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유치원생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무대로 올라갔다.

선생님은 차를 마시는 법에 대해 설명하며 아주 천천히 차를 우렸다. 울고 싶었다. 내 심정도 모르고 고상하고 우아하게 차를 우리는 선생님을 보니 원망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찻잎을 버리고, 찻물을 조금 버리는 등의 퍼포먼스가 다 끝나고 나서야 선생님은 주전자를 들고 와 우리의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분명 멀리서 봤을 때는 찻잔이 작아 보였는데, 다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바가지 채 푼 약수 물 같았다.

차라리 한입에 차를 털어 넣고 당장이라도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차는 천천히 세 번에 나누어 먹는 게 원칙이었다. 선생님의 신호와 함께 아이들은 차를 한입 마셔보았다. 나는 막상 먹으려고 하니, 이걸 마셨다가는 진짜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첫입에는 거의 입술만 갖다 댔다. 곧이어 두 번째 모금을 마실 때는, 왠지 선생님께 밑장 빼기(?)를 들킨 것 같아 조금 더 마셨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입. 선생님은 남은 차를 다 마시면 된다고 했다. 내 찻잔에는 정말 많은 양의 차가 남아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남은 차를 다 마셨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는 걷는 것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상태였다. 다실 뒤쪽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반 선생님께 다가가 선생님을 콕 찔렀다. 선생님이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다리만 배배 꼬았다. 선생님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귓속말로 물었다. “화장실 가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웃거나 화내는 대신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다실을 빠져나왔다. 밖에 나오니 확실히 다실 안 만큼 적막하지는 않았다. 그제야 나는 선생님한테 급하다고 고백했다. 선생님은 조금 더 넓은 보폭으로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 보폭에 맞춰 거의 뛰다시피 했다. 다행스럽게도 가는 도중 지려버리는 사고는 없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주말마다 여러 공원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고는 했다. 그날도 우리 가족은 친구의 가족과 함께 안 쓰는 물건들을 챙겨 벼룩시장에 갔다. 돗자리를 펴놓고 한참 물건을 팔고 있는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다가왔다. “방송국에서 온 아저씨들인데, 물건 파는 거 찍어도 돼요?” 산적처럼 턱수염이 난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땅만 보며 아직 팔리지 않은 병원놀이 세트만 만지작거렸다. 아저씨는 본인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내며 다시 물었다. “아까 보니까 잘하던데, 아저씨한테 물건 한번 팔아볼래요?” 나는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결국 나무 뒤로 도망갔다.

나무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어보니 아저씨들이 이번에는 내 동생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동생은 TV에 나온다는 말을 듣더니 갑자기 신이 난 것 같았다. 평소에는 낯을 가리던 동생이 카메라 앞에서 물건을 팔아 보이며 넉살을 떨었다. 동생이 하는 걸 보니, 카메라에 찍힌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왜 저걸 못 했을까, 내가 미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그때 등 뒤로 다가온 친구의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 쥐었다.

괜찮아.

간결하고 담백한 다독임에 스스로를 질책하던 마음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조금 더 커서, 학원 정도는 혼자 오갈 수 있을 나이가 됐을 때에도 어른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밤에 학원이 끝나고 정류장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는데, 소나기가 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혼자 버스를 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 불안했다. 나는 그냥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거센 비를 맞고 서있는 나를 주변 사람들이 힐긋대며 지나쳤다. 슬슬 추워지기도 했지만, 추위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멎은 것 같았다. 이렇게 갑자기 비가 멎는다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더니 우산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언니가 뒤에서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이럴 때는 감사하다는 말부터 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지만, 내가 비 맞는 모습을 다 봤을 거라고 생각하니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감사합니다, 한 마디가 나오지 않아서 안절부절했다. 그러다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제 버스…”라고 웅얼대곤 버스로 얼른 올라탔다. 창가에 앉았는데 그 언니가 자기 우산 밖으로 손을 뻗어 비를 맞아보고 있었다. 선의에 대한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성인이 되고난 후에도 그 어른들의 몸짓과 목소리가 이따금 떠오른다. 어린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고, 가끔은 그들을 배려하는 게 귀찮은 기분이 들어도, ‘받은 게 있는데 이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롯데월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보호자 없이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남매 손님을 본 적이 있다. ‘신밧드의 모험’은 체구가 작은 어린아이가 탑승할 경우 보호자의 동반을 권장하는 놀이기구였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엄마나 아빠랑 같이 왔냐고 물었다. 누나로 보이던 여자아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랑…”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어디 가셨냐고 묻자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시 후 남매가 놀이기구에 탑승할 때가 되었는데도,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엄마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릴까요?”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들을 탑승장 한켠에 대기시켰다. 놀이기구를 타지 않고 서있는 남매를 다른 승객들이 힐끔거렸다. 그 시선을 받으며 아이들이 점점 기가 죽는 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가 어설프게나마 대화를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몇 살이에요? 다리는 안 아파요? 엄마는 언제 오시는지 알아요? 배 안 고파요?

아이들은 내가 퍼붓는 질문 공세에 대답을   같다가도 결국 입술만 달싹일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끝으로 땅바닥을 치던 여자아이가 고개를 들어  얼굴을 쳐다봤고 눈을 떼지  했다.  눈가에 덕지덕지 붙여둔  스티커를 보는  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서 물었다.

“별 스티커 예뻐요? 얼굴에 붙여줄까요?”

여자아이는 다시 눈을 피했다가, 보일 듯 말 듯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쁜 마음으로 주머니에 넣어둔 별 스티커를 꺼냈다. 어떤 색깔을 좋아하냐고 묻자 손가락으로 초록색 별을 가리켰다. 여러 개 골라도 된다고 하니까 그럼 다 붙여도 되냐고 물어왔다. 나는 분홍, 노랑, 초록, 파랑, 흰색 별 스티커를 아이의 눈가와 뺨에 붙여주었다. 남자아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나도…”라고 작게 의사 표현을 해왔다.

잠시 후 아이의 어머니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이들은 언제 기가 죽었냐는 듯 엄마에게 달려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웬 별이야? 너무 예쁘네! 엄마의 말에 신이 났는지 아이들은 자기가 붙여달라고 했다며 앞다퉈 자랑했다. 어머니는 두리번대다가 같은 별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나를 보고 웃으며 눈짓으로 인사를 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직접 설명하거나 부탁하지 않아도 어떤 곤경에 처했는지 알아주고 함께 해결해주는 어른들이 있었다.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도 배려를 건넨 어른들의 마음이 내게 남았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도와줄 것이 있냐고 묻는 건 상대방이 어린이어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돕고 생색도 내지 않았던 그 어른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하다. 용기를 내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면, 아이들의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음성이 잡음 없이 뚜렷하게 들려오기도 한다. 아이들과 무언가를 해내고, 그 모든 공을 아이들에게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도 많이 찾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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