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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직원이 화장실에 갇혔다.

그리고 화보가 탄생했다. '토일렛버튼'

[컬처]에서는 그레이라운드의 사내 소식을 공유합니다. 그레이라운드에서 함께하는 것은 어떤 풍경일지를 편하게 상상해 보시는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 글은 그레이라운드 신논현점에서 발생한 사건을 사건 당사자의 1인칭 시점으로 재기록한 것으로, 저희만 재밌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 정신이 아득해진다.

 

향기롭게 마주했던 디퓨저와 나프탈렌의 조화가 매서운 칼날처럼 날카롭게 코를 찌른다. 변기에 앉아있기를 한시간.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해보이던 타일 틈새 자리잡은 희미한 물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제 마감 근무 누구지. 기운이 빠져 덧없는 푸념이 머릿 속을 스친다. 나갈 수 있을까? 더 버틸 재간이 없다.  



사건의 발단


6시 40분의 금요일.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요일답게 붙는 수식어도 찬란해 마지않다. 이름하야 불금. 맞이한 요일 파워에 힘 입어 7시 정각과 동시에 발동될 내 신체 골격근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는 졸라퇴근으로 저 문을 박차고 나가리라. 


한신 포차에 들어서자마자 방금 막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마냥 위풍당당한 자태로 ‘오늘 논현동 술 다 가져와’ 를 외치리라. 


내 이름은 박민지. 조녜쓰라고도 하지


시덥잖은 생각이 꼬리를 물어 속으로 낄낄대며 퇴근의 설렘이 커져간다. 당연히 내 망상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아마 내 시크한 미모와 그것에 비밀스러움을 더해주는 마스크 때문이리라. 


다시금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 막 터져버린 날숨에 뱉어진 입김이 마스크에 부딪혀 반사적인 들숨이 들이닥쳤다. 


민지, 오늘 정말 열심히 일했구나. 스스로 다독여주고 싶게 만드는 내음새였다. 잠시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내 도도하게 일어나 비밀스레 가글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또각또각 한신포차를 가로질러 뭇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발걸음을 연구하며 걸었다. 


상상의 나래로 광대를 씰룩거리며 화장실에 다달았다 



전개


우글우글우글. 고로로로로록 어어어어어어얽…아아아앍…

이러다 삼키진 않을까 싶었지만 아랑곳 않고 입에 머금은 가글을 이리저리 굴려내다 뱉어냈다. 식도까지 헹궈낸 가글 탓에 눈물이 맺혔다. 그 탓에 살짝 번진 아이라인이 왠지 고혹적이게 보인다. 오늘 여럿의 마음을 훔치진 않을까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거울 속 미모의 여성과 유혹대결을 펼치듯 다채로운 표정을 지어보며 요목조목 생김새를 뜯어보았다. 역시.. 흡족하며 마스크를 고쳐썼다. 시원하게 퍼지는 익숙한 멘솔 아니 페퍼민트 향을 만끽하며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덜컥덜컥… 덜커덕..덜컥덜컥.. 어라?”


미동도 않는 문과 헛도는 문고리. 혹시 잘못 잠근건가? 애꿎은 잠금 장치와 문고리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그대로. 필시 누가 장난을 치는 것이리라. 시크하게 웃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만하세요. 저 약속있어요. 빨리 가야된단 말이에요~" 다그쳐도, 타일러도, 애절하게도 말해봤지만 묵묵부답.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어려서 혼자 집에 있는게 익숙치 않던 때, 생수병이 갑자기 터지는 소리를 듣고 ‘나와라, 다안다.’며 비장하게 전투 태세를 준비하던 그때 이후로 이런 모놀로그는 처음이었으니까. 



위기


썸바디 애니원 헲미!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일사분란하게 직원들이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헛소리가 가득한 사내 메신져였기에 다들 시덥잖은 소리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제기랄. 이건 진지한 일이니 읽었다면 물리적인 도움을 달란 말이다.



이윽고 몇명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오 세상에 민지님! 이게 무슨 일인가요?"


신논현의 프린스, 건수팀장님이었다.


"화장실 문이 도무지 열리질 않네요. 아.. 정신을 잃을것만 같아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에요. 괜찮으신가요?"


제기랄. 안부는 되었으니 이 문을 좀 열어달란 말이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네 저는 괜찮으니 서둘러 이 문을 열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아 민지님 저라면 정신을 잃었을거에요. 다행히 안에 물은 종류별로 있으니 조금만 버티세요"


"어떻게 해.. 민지님 너무 걱정되네요. 저희가 함께 해드릴게요. 아! 곧 문이 열려 이따 약속에 가실 준비가 필요하시다면 안에 샴푸와 린스가 있을거에요!"


목소리를 듣자하니 수민님과 나연님이었다. 잔뜩 상기된 목소리에 작위적인 수심을 덧칠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굳게 닫힌 철문 너머 불규칙적인 리듬감으로 들썩이는 그녀들의 광대뼈를. 


거기에 더해진 분주한 손가락 소리도 들려왔다. 나의 불행을 홍익인간 정신으로 널리 알리려는 인스타 업뎃 소리들. 




"제가 곧 구출 해 드리겠습니다."


비장한 멋짐을 잔뜩 치장한 건수님이 말 끝나기 무섭게 거칠게 문을 철그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건수님이라면 날 구해줄 수 있을거야.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쿵쾅거리기를 10분. 요란한 소리가 연속되었으나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강인한 손길로 문을 굴복시키려던 그의 전완근에 점차 맥이 풀려가기 시작했다.


끄응.. 이거 불가항력이군요. 최선을 다했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이거 유감입니다. 저는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 이만.. 대신 실장님을 호출해드렸습니다.

프린스의 변소 라푼젤 (이하 변푼젤) 구출 대작전 : 실패


과연 CX 팀장님 다운 친절함과 단호함이 적절히 섞인 톤앤매너였다. 최선을 다한 그는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미련없이 퇴장했다.



킬킬거리는 소리가 뒤섞인 화장실 문앞 직원들의 웅성거리던 소리가 이내 잦아 들었다. 어처구니없이 그의 비장한 도전이 막을 내렸다. 그렇다. 퇴근 시간이 지난것이다. 특출난 졸라퇴근의 골격근은 나만 가진게 아니었다. 


실낱 같은 희망의 불씨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와 상반되게 요란하게 울려대는 인스타 스토리 답장 메시지. 작용과 반작용은 비례한다고 하였던가. 탈출하고 싶은 욕심 만큼이나, 받고있는 이 관심을 즐기는 지경에 이르기 시작했다.


남의_불행은_나의_즐거움.jyp  Feat. 나는 실장이다



절정 


지난 한 시간 가량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현재. 이제는 반 포기 상태다. 실소가 터져나온다. 어떻게든 약속시간에 늦지 않는게 목표였지만 이제는 탈출 자체가 목표다. 


서서 전전긍긍 하기를 10분. 변기 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가 된지 한시간이 넘었다. 지친 탓인지 산소가 부족한 탓인지 미세한 두통이 느껴졌다. 잠시 머리를 휴지 디스펜서에 대보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머리를 튕겨냈다. 


제목: 관종의미학. 짜증나지만 이것 또한 놓칠 수 없는 관심의 영역 = 인스타 스토리 업로드



화장실 갇힌 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화목한 그레이라운드 식구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내 인생 레전드. 이 모든 상황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구나. 의미심장하게 가슴이 뛰었다. 화장실과 함께 관심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애달프다. 그렇지만 웃기다.를 표현하는 표정


"민지님!"


실장님이었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오 실장님, 저를 좀 구해주세요


비장하게 직원 구출 대작전. 업무에 시달리다 온 탓에 후방으로 발사중인 흉추가 눈에 띄는 모습이다.


그는 말없이 열쇠꾸러미 소리를 내며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열쇠구멍에 체결시켜 개방을 도모하였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약한 탄식 후에 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민지님 뒤로 물러서세요!"


쾅쾅! 엄청난 굉음이었다. 그렇다. 그는 문고리를 부수고 있었다. 영화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 이제 탈출하는거야! 나는 여주인공? 그렇다면 실장님이 내 히어로인가? 그렇다면?!! 싫어!! 근데 나가야 돼!!


그때였다.


우지끈!


됐다!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에 환희에 가득 차 문고리를 세차게 잡아당겼지만 문은 그대로였다.


"..실장님..?"


그는 말이 없었다.


"실장님 무슨 일인가요?"


"…망치가 부러졌네요."


사내 물품이 파손되었습니다. -1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는 희망을 잃었다. 사내 메신저는 불이 났다.


다들 남의 불행에 신이 난 모습이다.


허니잼 공유가 늦는다고 서로 질책하는 모습이다.


변소 생존법을 공유중인 그레이라운드 식구들


변푼젤이 탈수할까 염려되어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종류별 화장실 물 섭취를 권장중이다.



결말 


전문 수리공께서 30분가량 진땀을 동반하시며 요란하게 문을 열어 내셨다. 최악의 고장 케이스라며 장황하게 설명하셨지만 들을 새도 없이 게걸스럽게 후레시한 공기를 냅다 들이켰다. 나프탈렌과 디퓨저 범벅의 산소를 벗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더 할 나위 없이 흡족했다. 킁카킁카. 


레전드로 두고두고 회자된 변푼젤사건. 각 지점의 탕비실을 며칠간 뜨겁게 달궜던 에피소드 하나가 서서히 사라지려는 찰나- 나 조녜쓰는 이 관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탄생했다. 토일렛버튼


밸런스버튼은 본 사진과 1도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재능있는 병맛 돌아이들이 추진력과 실행력을 갖추면 생기는 일


대표님의 작품 분석: 원사건에 패션적 의미를 부여하곤하는 스티븐 마이젤류의 작품


그리고 그 날 이후 신논현점 현장운영실에 추가된 업무.


그레이라운드 현장운영실 신논현점 업무 추가: 토일렛버튼 어시스턴트


그리고 이 사건이 잊혀질 즈음..




*본 글은 절대 본인의 동의없이 작성되지 않았으며, 본인의 확인을 거친 뒤에 올라간 글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좋은 사진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종합 사진 브랜드 기업 그레이라운드 Grayround

프로페셔널 프로필/가족 사진 전문 스튜디오 Graygraphy

증명 사진 전문 스튜디오 CrayonCraft

바디 프로필 전문 스튜디오 BalanceButton

흑백 바디 프로필 전문 스튜디오 NoirDeBlanc

흑백 사진 전문 스튜디오 Graylog

웨딩 사진 전문 스튜디오 BloomBride

화장실 화보 전문 스튜디오 ToiletButton  아, 아니다. 이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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