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재생에너지, 에너지원 이야기
대학교 진학을 위해 과를 선택할 때 나는 쓸 수 있는 6개의 원서를 모두 전기 공학과에 넣었다. 원서를 쓸 땐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대학에 진학하여 내가 선택한 학과에 흥미로움을 느끼고 재미있게 공부한 기억이 있다. 전기 공학을 전공했기에 에너지, 특히 전기 에너지는 내게 친숙한 용어이지만 돌이켜보면 이론적 내용에만 관심을 가졌지 에너지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사실 관심이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를 읽어보고 싶었다. 에너지는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각국은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상호 간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듣고 싶었다. 이는 나의 업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0. Prologue
에너지원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에너지 자원이 부의 크기와 힘의 방향을 결정해 왔기 때문에 에너지는 "숨어 있는 최고 권력자"라고 표현을 한다. 18세기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석탄이라는 에너지원을 통해 압도적인 생산을 이루어 냈기 때문이고, 20세기 초반 압도적인 석유 생산량과 활용으로 산업화를 이루어 낸 미국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석유는 20세기 이후 국제 관계에서 이해관계의 근원이자 세계 경제의 기반이었다. 우리의 일상과 경제는 현재 상상 이상으로 석유에 기대고 있다. 저자는 "만약 애덤 스미스가 오늘날에 '국부론'을 쓴다면, 부의 원천은 석유 혹은 석탄과 같은 에너지이고 부의 증진은 에너지원의 확보와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서 이루어진다고 쓸 것"이라는 말을 한다.
나는 에너지원이 가진 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의 초반 부분을 통해 에너지원은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각국의 입장과 태도, 그리고 국제 이해관계의 근원적 이유의 중심에 에너지가 있다는 점이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1. 석유
암석에서 나오는 기름인 석유는 그 활용도가 정말 어마어마하며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가. 석유 - 제품유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의 연료)
나. 석유 - 석유화학 원료 - 플라스틱 등의 합성수지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 가전제품, 주택과 차량 내장재, 세제, 샴푸, 옷, 화장품 등등
이렇게 보니, 석유를 단순히 에너지원으로만 이해한다면 잘못이라는 저자의 말이 체감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것들의 대부분은 석유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한 나라의 정치적 방향성, 경제를 포함한 모든 것이 석유를 둘러싼 이해관계에서 시작한다는 말은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본 세계사는 흥미로웠다. 예로 미국과 이란 간의 끊임없는 대리전(戰) 등, 미국이 중동에 개입하는 근원적 이유 역시 중동의 석유 때문이라고 한다. 글로벌 석유 공급자인 사우디가 달러의 거래를 허락함으로써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가 유지되는데, 이로 인해 미국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중심에 서서 패권 국가로서의 정치력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석유 수요는 갈수록 증가할 요인이 많다. 인구 증가에 따른 수요의 증가, 개도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석유 소비, 석유 외 운송용 에너지원의 부재 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석유 회사들은 석유 공급량을 유지하거나 점차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이유로는 환경 문제로 인한 투자자와 정부의 ESG 강화 요구, 그에 따라 자원과 인력이 모이지 않는다는 점, 자원 매장량의 한계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점점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떨어뜨려야 함을 의미하는데, 석유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는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2. 신재생 에너지
20세기를 지배했던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신재생에너지가 주목을 받는다. 재생에너지는 탄소 배출이 없다는 점, 재생 가능한(고갈의 걱정이 없는) 에너지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비재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필연적인 흐름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잘 인지하고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은 유럽이다. 유럽의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재생에너지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탄소 중립에 앞장서는 속셈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꽤 흥미로웠다. 책은 EU가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앞장서는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유럽 산업계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은 유리한 자연환경적 여건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사업 경험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 열릴 엄청난 규모의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눈앞의 이익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여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는 유럽의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각 나라가 내리는 결정, 정치의 방향성 안에는 에너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특히 나는 재생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ESS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에 이러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에너지와 관련하여 국제정세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비례한 석유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 역시 인상 깊게 읽은 것 같다. 저자는 재생에너지와 석유는 쓰임이 달라서 서로의 대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재생에너지는 발전용 에너지로서의 비중을 늘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지, 석유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환경오염이 심각한 상황에서 우리는 가릴 수 있는 것이 없다. 탄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역시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이 재생에너지에 불리한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에너지 분야의 자주성 확보를 위해 향후 엄청난 규모로 성장할 재생에너지 시장이 한국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되기 위해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많은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 한국이 에너지 분야에서 어떤 성장을 이루어 나갈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겠다. 그리고 그 성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관련되어 있는 나의 업무에도 열심히 임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