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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Jul 04. 2021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늦은 점심을 먹기 전 들린 소품샵에서 나는 풍경을 보며 이런 건 참 예쁘고 무용하구나, 하고 말했다. 유진이는 보고 있던 에코백에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대답했다. 그럴 수 있지, 그런 편이지, 같은 말들은 유진이와 나의 말버릇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반기를 들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것보다 수긍하는 편이 삶에 더 이롭다는 일종의 삶의 지혜였다.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 있지, 라는 한 마디를 던지면 대화는 곧장 끝이 나고 이만 일어날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따위의 무용한 핑퐁을 주고받게 되니까. 이것이 이타적인 체하는 이기심의 촉발임을 나와 유진이 외에는 알 리가 없다.

지난 5월에 만난 남자는 예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입에 발린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배가 고파 무지막지하게 초밥을 먹는 모습이 예뻐 보일 리가 없지 않느냐고 생각했지만 그의 진심을 알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유난히 밝게 비쳤던 강변을 달리고 집에 돌아온 날, 그는 메신저로 운전하느라 내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오빠는 내가 왜 좋아, 물으면 예뻐서 좋다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맥주 두 잔을 음료수처럼 들이키며 내가 본인에게 질문하지 않는 모습이 신기해서, 첫인상과는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예뻐서 나랑 사귀고 싶다는 말을 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잔뜩 상기된 채로 고백하던 그에게, 온도차를 견디지 못하고 맺힌 맥주잔의 물방울을 왼손으로 쓸며 그럴 수 있지, 라고 대답했다. 되지도 않는 자랑 따위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예쁘다'는 말은 우리 연애의 조건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무용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예쁘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쁜 대교와, 예쁜 책상과 결혼한 사람도 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지만, 그런 반려자는 불변하므로 나와는 다름에 틀림없다. 변치않는 아름다움을 손에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언제까지고 젊고, 예쁠 수는 없다는 무거운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그런 건 조건부 사랑이라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걸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본인은 나이가 많아 결혼을 해야 하므로 나와 헤어져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는 아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내게 없는 그의 그런 모습이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은 아주 지독했다. 그를 애타게 사랑했던 것도,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어떤 현실감각 같은 것이 나를 밀쳐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수용해야 했다. 여느 때와 같이 그럴 수 있지, 라고 답하며 나는 내가 다시금 무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내게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짧은 연애가 쫑나는 것, 다시 혼자 된다는 것,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의 번호를 차단하면서 결혼이 다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결혼은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사랑은 무용한 것이니 둘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한강대교나 책걸상처럼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과 결혼하는 것은 신문에 날 만큼 이상한 것이구나. 그런 건 사랑으로 그쳐야만 하니까.

얼굴조차 희미해져 가지만 누군가에게 내가 아름답고 무용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가끔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런 것들은 아주 쉽게 버려진다.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에 버려져야 할 것이 나라는 것이, 나는 변화와 함께 내팽겨쳐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속상해서 무릎을 웅크리고 앉았다.

누군가를 채근하고 싶어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데에는 남보다 못하지 않으니까. 나는 이상한 사람이라 무용한 것들도 쉬이 버리지 못한다. 이런 사랑도 있다고, 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 그럴 수 있지, 그런 것도 있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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