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클럽 4월호
사월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영업하기 딱 좋은 달입니다. 일단 첫째, 장국영이 나옵니다. 아, 물론 진짜는 아니고 가짜로요(?). 찬실이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배우 김영민 님이 연기로 승화해주었습니다.
둘째, 찬실은 집주인 할머니(윤여정 분)의 집에 세들어 사는데요, 할머니가 툭 던지는 명대사가 봄과 관련있기 때문이죠. 할머니는 딸이 죽은 후 마당의 화분을 방치해 둬 식물이 말라 죽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듬해 봄이 오자 놀랍게도 화분에서 새순이 돋아나죠. 글을 쓸 줄 모르던 할머니는 찬실이가 가르쳐준 덕분에 처음으로 이러한 문장을 씁니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계절을 돌아 찬란하게 꽃 피는 봄이 오면 이 문장이 가슴에 콕 박힙니다. 떠난 사람은 결코 돌아오지 못하지만, 꽃은 해마다 돌아오니 한철을 즐기세요. 떠난 사람의 몫까지 보겠다는 마음으로요. 여기까지만 보면 굉장히 슬픈 영화 같아 보이지만, 제가 저 대사에 꽂혀버려서 장황하게 썼을 뿐 영화 자체는 매우 해사하고 귀엽습니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꼽는 명대사도 “저 10년만에 남자 처음 안아봐요! 더 꽉 안아줘요! …… 아, 그렇게 안으면 아파요.”일 정도로, 매우 밝고 귀여운 영화죠. 전체적인 주제도 죽음보다는 꿈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찬실이는 유명 감독과 10년째 페어로 일한 프로듀서인데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감독이 돌연사 합니다. (불륜 논란으로 업계에서 훅 가버린 홍상수를 이렇게 극적으로 표현한 것마저 이 영화의 매력이죠.) 별안간 실직자가 되어버린 찬실이는 일감을 찾아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붕 떠버린 시간의 틈으로 걱정과 불안과 고민과 우울이 이때다 싶어 끼어들어 오죠. 찬실이는 ‘영화가 정말 내 꿈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상상 속 장국영과 깊은 대화를 나눈 결과, 찬실이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 보기로 합니다.
내 꿈은 뭔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찬실이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에도 보기 좋은 영화예요.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라는 할머니의 무심한 대사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힌트를 얻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어디든 가뿐히 걷기 좋은 날씨예요. 버리고 싶은 게 있다면 훌훌 버리고, 찬실이처럼 잠시 발을 헛디디더라도 원하는 길을 찾아 걸어요. 새로운 길을 걷는 모든 이에게 행☘이 10,000기를.
*본 글은 뉴스레터 '노가리클럽'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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