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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 Jan 17. 2023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vol.7

'그날의 온도, 조명, 습도'가 사악 하고 산들바람처럼 불어오는 영화가 있습니다. (오글거리는 멘트로 뭇 여성들의 경악을 자아낸 멘트지만 이만한 표현이 없네요.) 구체적으로 뭐라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분을 느낀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특정 무드가 있죠. 종종 영화에서 그런 무드가 느껴질 때면,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이 무드를 어떻게 영상에 담아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와요.


이렇듯 잘 만들어진 영화들은 어떠한 레이어가 느껴지는데, 겹겹이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라 살짝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일단 영화를 보면 가장 먼저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보이죠. '다른 영화들과 비슷해보이는데 이 영화는 왜 이렇게 과몰입하게 되지?'하고 궁금해하며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면 종합예술의 결정체인 영화의 매력이 빛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미술감독은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커다란 벽지나 가구부터,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소품들까지 신경써서 그 자체로 미장센을 만듭니다.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 더 자세히 보면, 스타일리스트가 영화의 무드와 캐릭터의 성격을 촘촘하게 분석해 배우에게 딱 맞는 옷을 입히죠. 헤어&메이크업 스탭은 여러 스타일 후보 중, 배우 본체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실제 인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최고의 안을 골라 캐릭터를 탄생시키죠. 누구 하나 이 작품에 허투루 임하는 사람이 없어요. 프로페셔널의 정수같은 느낌이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화의 때깔이 좋으면 감독의 연출력이나 배우의 연기력만 칭찬하는 선에서 그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감독으로 이름 석자 크게 알린 류성희 감독이 더 대단하다고 느껴요.

감독의 가장 최근 작품인 <헤어질 결심(2022)>으로 얘기를 해볼까요? 저는 서래 집의 초록색 같아 보이기도 파란색같아 보이기도 하는 벽지가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장면을 보는 순간, '아, 역시!'라고 속으로 외쳤어요. 벽지의 무늬는 언뜻보면 겹겹이 둘러싼 산 같아 보이기도, 몰아치는 파도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요. 산과 바다로 크게 나뉘는 영화의 공간적 특성과 메시지를 잘 담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영화의 전체적인 무드는 또 어떻고요. '이포'라는 도시는 영화 속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도시지만, 두시간 내내 안개끼고 축축한 이포의 거리를 종일 배회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완벽한 무드를 만들어내서 순식간에 과몰입하게 만들었죠. 처음 봤을 땐 감독의 연출 실력이 좋아서 이렇게 미감이 뛰어난 영화가 탄생하는 줄 알았는데 겹겹이 보니 미술감독을 포함한 숨겨진 스탭들의 공이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인터뷰를 찾아 읽다보니, 역시나 성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느꼈어요. 프로 의식이 어마어마하더군요.


“프로덕션 디자인은 무드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무드란 물리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의 공기나 정서까지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극장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경험이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고유의 파장을 지닌

소리와 감정에 형태를 부여했다."

-'씨네21' 인터뷰 중 발췌 및 편집



이렇게 뛰어난 커리어와 프로 의식을 갖춘 여성이 레이어의 안쪽보다는 레이어의 앞쪽에서 박수갈채를 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달의 좋여사로 소개합니다. <헤어질 결심>을 보지 못해 아쉽거나, 보고난 후 류성희만의 세계가 궁금해졌다면 마지막 코너에서 소개하는 영화들로 8월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 제목은 오은 작가의 동명의 시집 제목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본 글은 뉴스레터 좋은 (여자)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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