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클럽 9월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종영한 후 한동안 볼 콘텐츠가 없어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노가리클럽 내에서도 “드라마 기근이다, 기근이야. 볼 게 없네.”라는 곡소리가 들렸더랬죠. 그때 구원자의 얼굴을 한 세 자매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드라마 <작은아씨들> 1화를 보고, '이건 된다!'는 걸 딱 느꼈어요. 물론 방영한 지 4화밖에 안 된 드라마를 선뜻 추천하기가 조금 망설여집니다. 노가리클럽 5화에서 에디터 슬이 드라마 <클리닝 업>을 추천하기 전, 열심히 밑밥을 깐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죠. 그렇지만 저도 뚝심 있게 세 가지 매력 포인트를 앞세워 영업해보겠습니다.
첫째, 웰메이드 여성 서사 드라마입니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인공도 세 자매고, 이들이 맞서 싸우고자 하는 빌런도 재벌가 여성이죠. 빌런의 오른팔도 강인한 성격의 여성이고, 세 자매를 돕는 조력자 친척도 여성이에요. 첫째 오인주(김고은 분)에게 700억을 안겨주면서 이 모든 스토리의 시작점이 된 주요한 인물도 여성이고요. 여자들이 다 해 먹는 드라마라니. 보는 내내 짜릿하고 재밌습니다. 사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영업 포인트가 되지만, 두 가지 이유를 더 들어 볼게요.
둘째, 세 자매의 연기가 너무 쟁쟁해서 단번에 몰입하게 됩니다. 김고은의 연기는 1화 엔딩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한 언니의 죽음이 매우 슬프지만, 눈앞의 일확천금에 기쁘고, 순간적으로 기쁨을 느낀 스스로에 대한 자책 등 복합적인 감정을 소름 끼치도록 잘 표현했기 때문이죠. 배우 남지현이 연기한 둘째 오인경은 극 중 기자로 나오는데요, 뉴스 브리핑 장면에서 실제 기자인 줄 알고 두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글 통에 테킬라를 넣어 근무 시간 중 홀짝거리는 모습마저 너무나 현생에 찌든 직장인 그 자체였고요. 막내 오인혜 역은 박지후 배우가 맡았는데요. 영화 <벌새>에서 보여준 것처럼, 어딘가 불안정하고 결핍됐지만 애써 이를 숨기는 10대를 잘 표현했습니다. 주먹을 너무 꼭 쥐고 살아서 톡 건들면 금세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인물을 연기로 잘 승화했죠.
셋째, 연출이 기막힙니다. 웬만한 영화보다 훌륭해요. 특히 첫째 오인주가 친한 언니인 진화영(추자현 분)의 집에 들르는 시퀀스가 인상적입니다. 인주는 여행 간 화영의 부탁대로 물고기에게 밥을 주다가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껴 어항 옆 전신 거울을 바라보는데요. 거울에는 인주의 등 뒤편에 놓인 옷장이 비치고, 옷장 안에 빼곡히 걸린 옷 아래로 공중에 매달린 빨간 하이힐이 보입니다. 하이힐 주인의 발목에는 난꽃 타투가 파리하게 남아있고요. 이 장면을 보고, 마치 국밥 먹는 아저씨마냥 “으어, 연출 죽인다”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또, 아름다운 미장센이 연출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박찬욱 감독과 함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함께한 류성희 미술감독이 미술을 담당했습니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소품인 파란 난꽃과 푸른 색감 연출이 만나, 푸른 아름다움을 추구해요. 거대하고 치열하게 돌아가는 서울 한복판에서 세 자매의 모습이 시리도록 푸르게 담깁니다.
스틸컷을 오만 장 첨부해지고 싶어지니,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물론 10화쯤 되어서 스토리가 산으로 갈 수도, 믿었던 캐릭터가 붕괴될 수도, 갑자기 가히 밤이 침투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용두용미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달려봅니다. 같이 정주행 달리실 분?
*<작은 아씨들>은 현재 tvN에서 방영 중이며, 넷플릭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본 글은 뉴스레터 '노가리클럽'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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