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자)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 vol.10
미세한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이게 무슨 크로와상같은 소리냐 할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본 이는 압니다. 어떤 것에 웃고 어떤 것에 울고, 또 어떤 것에 분노하는지에서 '어떤'이 일치하는 사람은 정말 귀하다는 걸. 그런 사람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것도 쉽지 않기에, 책을 읽다가 저자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훨씬 반가워요. 모든 문장을 뜯어 나노단위로 맛보고(?), 밑줄을 북북 그어대면서도, 줄어드는 분량이 아쉬워 야금야금 소중히 읽게 되죠. 정세랑의 책 『옥상에서 만나요』를 처음 읽었을 때 그랬어요.
『옥상에서 만나요』는 총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된 단편소설집입니다. 그중에서도 책과 동명의 단편소설을 읽을 때, 나만의 크로와상 작가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옥상에서 만나요」는 고충을 겪은 사회초년생 여성이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해결법을 체득해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같은 길을 먼저 걸었던 여성 선배들과의 연대가 드러나는데, 자연스레 주변 언니들의 얼굴이 책 위로 둥실둥실 떠올랐어요.
"회사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어.
우리가 더러운 관행이지만
아무도 바꿀 의지가 없어
계속되는 일을 하며 돈만 까먹을 뿐,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는 걸.
(중략)
언니들이 아니었으면
난 정말 뛰어내리고 말았을거야."
『옥상에서 만나요』 94 - 95p
이 부분에 밑줄을 그은 후 옆에 이렇게 메모를 해두었어요. '떠오른 이름들에게 잘 해야지'. 사실 페미니즘의 F만 꺼내도 공격의 타겟이 되기 쉬운 요즘, 여성연대에 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더구나 정세랑 작가는 인권, 동물권, 채식, 지구 환경 등 혐오를 쉽게 내비치는 족속들이 서슴없이 혐오하는 것들을 지켜내고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어떻게 매번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그 궁금증은 책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를 읽고 감탄으로 변했죠.
"막힌 벽. 제한선.
‘너는 여기까지만 해’ 하고
가로막는 손이 나타나면
함께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더 나빴던 과거에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았던 여성들처럼요.
(중략)
혼자 걸을 때에도 함께라는 걸 알고 나자
벽들이 투명해져요.
벽을 짓는 사람들보다 멀리 걸어가기로 해요."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14 - 15p
한국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정세랑이라는 인물을 새삼스레 좋은(여자)사람으로 소개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정세랑의 글을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벽에 부딪히는 듯한 무력감을 느껴봤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봅니다. 그 모든 여성들이 벽을 짓는 사람보다 멀리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더이상 무력감과 답답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면, 옥상에서 만납시다, 시스터.*
* 『옥상에서 만나요』 116p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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