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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Jun 12. 2024

양평에는 구둔역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오래된 폐역이죠.

영화 세트장으로 많이 쓰이는 곳입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늦은 봄에 아이들과 다녀온 곳입니다.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지만 역이라는 곳이 참 운치 있는 곳입니다.


큰길에서 한참 들어가야 하지만 찾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역이라는 곳이 어떤 정서를 가지줄 잘 모릅니다. 영화에서 연기 뿜으며 잠시 정차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겠죠. 저도 연기 뿜는 열차를 타본 적은 없습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때 완행열차를 타고 시골 갔던 때가 떠오릅니다.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느라 역마다 정차했으니 참 느리고도 쉬엄쉬엄 가는 운행수단이었죠.  지금은 고속도로가 많아져서 굳이 열차를 이용할 필요가 없지만, 그때는 열차 타고, 버스 타고, 택시를 타야 시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산골 중에 산골이었나 봅니다.


두꺼운 작은 종이 티켓에 펀칭을 해야 했습니다. 역무원이 지나가면서 티켓 검사를 했거든요. 지금이야 디지털로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때는 잃어버리면 낭패였습니다. 무임승차도 많았으니 잘  보관해야 했죠. 가끔 역에 정차하면 10분 만에 가락국수를 먹고 타기도 했어요.


초록 병에 든 사이다에 삶은 달걀을 먹으며 가던 어린 시절 제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시골 동네마다 역이 있었고, 반복되는 비슷한 산과 들의 풍경이지만 흘러가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기차역이란 이런 특별한 정서가 담긴 곳이죠. 


구둔역은 관리를 잘해놓아서 금방이라도 기차가 지날 것 같습니다. 많은 드라마와 광고를 여기서 찍는 이유가 있죠. 주변에 큰 건물도 없으니 어디를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옵니다.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예전에는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파주 어딘가로 놀러 갔었죠. 노량진에서 기차 타고 춘천으로 넘어간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전철이라고 해야죠.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고서는 그 정도 거리는 차로 다니고 있어 잘 모르겠네요. 대구나 부산 정도나 되어야 ktx 가끔 타는 정도입니다. 


이제는 기차역보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익숙한 시절입니다. 아이들은 폐역에 왜 오는지 잘 모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지금도 협괴 열차 길이 있습니다. 물론 기차는 다니지 않지만 갈대숲 사이로 난 좁은 기찻길은 누군가의 추억이 가득 담긴 곳이죠.


드라마 홍보물들이 안 보이면 더 좋겠지만, 덕분에 구둔역, 아니 역사가 뭐 하던 곳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도 요즘은 70, 80년대 영화들이 나오면서 옛 정서를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주어 다행입니다. 


철길과 플랫폼, 하얀 벤치에 앉아 있으면 오래전 친구들도 떠오릅니다. 어떤 광고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헤드폰을 차고 플랫폼에 서 있으면 그냥 한 편의 80년대 광고가 되는 곳입니다. 하얀 벤치에 앉아 초콜릿을 베어 물면 뭔가 떠오르는 곳이죠. 물론 인물이 따라주지는 않지만요.



그때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려봅니다. 시간 되면 한번 가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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