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의 일상이나 생각을 우리는 얼마나 기록할까?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금방 휘발해 버리는 생각들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모두 적을 수 있다면 아마 도서관 몇 개쯤은 되지 않을까? 모두 적을 수 없음을 어쩌면 감사해야 할까? 그래도 꼭 남겨야 할 것들은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아마 스쳐가는 생각들에 100 분의 일 정도 겨우 적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열심히 적는다면 말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휘발성이 너무 강해 때를 놓치면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만나.
그렇다고 매번 녹음기를 들고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녹음을 한다 해도 그걸 듣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가끔 생각나는 것들을 보이스 레코더에 녹음해 보지만, 그저 그냥 디바이스에 들어있을 뿐, 조금만 지나면 녹음했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가 느꼈던 삶의 핵심을 요약하고 정리해서 기록해 놓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텍스트로 표현된 것들만 내 일상과 생각의 정수로 자리 잡는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다. 책을 정리한 것과 사고를 붙잡아 둔 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어떤 누구의 텍스트보다도 내 삶이 보석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작가들만이 글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수백수천만 원어치의 책을 산다고 해서 그만큼의 지혜가 생긴 것도 아니다. 내가 행동하는 생각한 것들은 누군가로부터 이어받은 환경 속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퇴색했을지언정 그 당시에는 최선을 생각을 끄집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후회와 반성, 희망과 갈망에서 뭔가를 고민하고 피드백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걸 정리해서 글로 만들고 책을 만든다. 우리는 그걸 놓치고 있을 뿐이다.
잘 정리만 해줘도 웬만한 책에 가치를 가지리라 여겨진다. 오래전 일기를 꺼내보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지금 보면 마냥 어린 시절 일 것만 같은 그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놀랄 때가 있다. 수 십 년 전의 내 생각의 자락이 그대로 텍스트로 남아 있다는 것이 반갑다. 나름 고민하고 걱정했으며, 새로운 결단과 희망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우리는 지금도 타인의 생각, 행동의 피드백, 독서, 배움 등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한다. 하지만 무엇을 통해 그리되지는 인지하지 못한다. 특히 중년의 나이가 되면 삶의 경험과 더불어 생각은 최고의 수준까지 다다른다. 우리는 그걸 놓치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가장 좋은 책은 내 책이다.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남기고 기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미래의 나에게 주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어설프게 써온 일기를 보면서도 그럴진대, 매일 써 내려가는 삶의 기록이 미래의 결정에 있어서 얼마나 큰 도움을 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블로그 글쓰기도 열흘 후면 1400일에 다다른다. 1400개 글 중에 그래도 1000개는 생각을 더하지 않았겠는가? 써왔던 생각을 따라가는 일도 나름 재미있다. 내 글의 독자가 되는 시간이다. 블로그는 남들에게 보이는 글이라 약간의 허세를 떨기도 했겠지만, 나름 글과 생각을 맞출 수 있게 되었나 보다. 글처럼 산다는 말이 아니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익숙해졌다는 말이다.
매일 일기처럼 쓰고 남기는 노트가 있다. 그리고 블로그에 생각만 정리한다. 간단한 제품 리뷰도 눈에 보이는 현상과 함께 그때의 감정과 상태를 남기려고 한다. 영화를 보고도 뭔가 느껴지는 생각의 단상을 잡아두려고 한다. 자꾸 쓰다 보니 카테고리가 많아지고 분주해지는 것 같지만, 생각이 펼쳐지는 걸 어찌하겠는가?
쓰려고 했던 것이 기억나지 않으면 괴롭다. 잡아두지 못해 머리를 찧으며 한참을 다시 내려가 본다. 결국 건져내지 못한 그 무엇이 뭔가 더 대단해 보인다. 잃어버린 물건이 소중한 이유는 생각도 예외가 아니다. 잃어버린 것들을 모으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이것저것 써본다.